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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는 새로운 "헛된 것"을 보고한다(7절). 홀로 사는 사람이 수고하는 것이 불행하다는 것이다(8절). 전도자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고 말한다(9절). 한 사람이 넘어져도 다른 사람이 그를 일으킬 수 있고(10절), 서로 체온을 나누며 따뜻하게 있을 수 있으며(11절), 전투에서도 둘이 맞서는 것이 홀로 맞서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12절). 이 땅에서 하는 수고 자체가 헛되지만, 그 중 더 헛된 것은 혼자서 하는 수고이다.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8절) 본문은 수고의 열매를 나누는 것보다도 수고 자체를 함께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10-12절). 전도서는 계속해서 매일매일의 수고를 달게 받으라고 권하는데, 그것도..
이제 전도자는 공의와 재주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인간사를 살펴보고 다시 한 번 헛됨을 깨닫는다. 세상의 권세자들은 약자들을 학대하나, 약자들은 위로를 받지 못한다(1절). 그래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고(2절), 죽는 것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3절). 재주가 많은 사람은 이웃의 시기를 받고(4절), 재주가 없는 사람은 혼자 고생하고 만다(5절). 따라서 재주가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6절). 오늘 본문은 다분히 역설적이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고(2절), 죽는 것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은가(3절)? 그렇다면 본문은 자살을 조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재주와 지혜는 정녕 없는 것이 나은가(6절)? 이는 잠언의 가르침과 상충되지 않는가? 이러한 수사법들은 저자의 진의를 표현한다기보다 본래 하려..
전도자는 인간의 판결이 불완전할 수 밖에 없음을 직시하며(16절), 언젠가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소망을 둔다(17절). 인간과 짐승은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로(18절), 동일하게 죽음을 맛본다(19-20절). 어떤 이들은 두 존재의 운명이 다르다고 하나 이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21절). 따라서 사람은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낫다(22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과 사후 세계에 대해 다룬다. 사람의 판결에는 악이 끼어들 수 밖에 없다(16절). 이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공의를 베풀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이 의롭다(17절). 따라서 사람의 판결에 실망하더라도 의로운 재판관이 언젠가 심판하실 것을 기대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전도자는 사후 세계에 대해 불가..
일하는 자의 수고는 헛되다(9절). 하지만 그 수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10절). 다만 그 수고의 결과는 인간에게 감춰져 있기에(11절), 사는 동안에 할 수 있는 것은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12절), 그리고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즐거움(13절)이다. 계속 세대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 같지만(15절), 결국 이 모든 일의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하시는 것이다(14절). 이제서야 변죽만 울리던 본문이 본색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선포는 결국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면서 행복을 누리라는 권고로 귀결된다. 수고의 열매 때문에 수고한다면 그는 후회할 것이다(9절). 왜냐하면 그 결과는 인간의 손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11절). 수고는 그 자체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10..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베푸신대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이 기쁜 일이라고 고백한다(24-25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결국은 사랑하는 자에게 상을 주시고 죄인을 벌하실 것이라고 선포한다(26절). 하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기에(1-8절) 이것 또한 헛되이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26절). 본문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 기쁨을 주셨다(24-25절). 이는 지금까지 그가 탄식하고 있던 헛된 수고에 의미를 부여한다. 25절은 개역개정과 대부분의 영어 성경 번역이 다른데, 이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비교의 대상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NIV, NLT 등은 이를 "하나님 없이 누가 먹고 즐길 수 있겠는가?"와 같이 번역해 놓았다...
이제 전도자는 노력의 무상함을 뒷사람이 누가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찾는다. 인간의 모든 수고는 그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될 것이고(18절), 그 수고의 결과는 "그가 다 관리"할 것이다(19절). 수고하지 않은 자가 열매를 얻을 것이요(21절), 수고한 자는 아무런 소득 없이 죽고 말 것이다(22절). 그의 소득은 그저 "슬픔" 뿐이다(23절). 이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인과응보 개념이 현세에서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혜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전도자의 말처럼 사실 그 노력의 성과를 다른 이가 가져가는 일은 허다하다. 내가 평생을 노력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죽고 나면 내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열매는 다른 사람이 가져갈 것이다. 그래서 전..
전도자는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에 관한 교훈을 남긴다(12절). 지혜와 우매의 관계는 빛과 어둠의 관계와 같으나(13-14절), 지혜자나 우매자나 결국 같은 일을 당한다(14-15절). 그 일이란 죽음이고, 죽은 뒤에는 둘 다 잊혀질 것이다(16절). 따라서 사는 것은 헛된 일이다(17절). 오늘 본문은 지혜에 관한 통찰을 다루고 있다. 전도자는 후세인들이 지혜에 관해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왕으로서 겪은 경험보다 새로운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12절) 자신의 교훈에 권위를 둔다. 비록 지혜가 사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맞지만(13-14절), 죽고 난 뒤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16절).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16절) 따라서 지혜를 추구하는 것도 헛된 일이다. 전도..
전도자는 즐거움와 웃음 역시 헛된 것임을 고백한다(1-2절). 그는 지혜롭고 풍요롭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사업을 크게 벌이기도 했고(3-8절), 그 결과로 자신의 욕망을 원하는 대로 충족시켰지만(9-10절), 그 역시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다(11절). 오늘 본문은 '행복'의 헛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의 행복이 최고로 추구할 가치라는 세상의 메시지 앞에서, 전도자는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되묻는다(2절). 이는 결과적으로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기 때문이다(11절). 그는 행복하기 위해 사업을 크게 해보았다(3-4절). 그 결과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싶어하는 부를 누릴 수 있었다(9절). 본문의 구체적인 묘사(4-8절)는 그 '부'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전도자는 인간의 능력과 지혜의 허무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힘을 다해 세상만사를 연구해 보니 인생들이 하는 모든 일은 다 괴롭고 헛된 것이었다(13-14절). 인간의 힘은 그 한계가 너무도 분명했다(15절). 그는 자신의 지혜를 뽐내며(16절) 지혜와 우매에 대해 연구해 보았지만 그것도 헛된 것이었다(17절). 지혜가 많으면 번뇌가 많을 뿐이었다(18절). 인간의 노력은 헛되다. 왜냐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15절). 많은 이들이 지혜를 좋은 것으로 여기지만, 지혜를 추구하는 노력 또한 헛되다(17절). 지혜가 많으면 번뇌가 많고, 지식이 많으면 근심이 많을 뿐이기 때문이다(18절). 여기서 전도자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12절), 또 지혜로운 자로서(16절)..
오늘부터 전도서를 묵상한다. 전도서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1절)가 쓴 책으로, 이 묘사에 들어맞는 사람은 솔로몬 밖에 없다. 잘 알려진 대로 그가 누렸던 부와 권세, 지혜가 그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지 살펴보면서, 이 청년의 때에 삶의 방향을 다시 조정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2절) 전도서는 강렬한 구절로 시작된다. 우리가 하는 수고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3절)? 해도 떴던 곳으로 돌아가고(5절), 바람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6절),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른다(7절).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9절).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다 과거에 있던 것들이다(9, 10절). 다만 기억되지 않을 뿐이다(11절). 우리는 ..
로마서 3:10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시편 14편과 53편의 인용이다. 2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2-3) 2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시 53:2-3) 그런데 오늘 전도서를 읽다가 비슷한 지혜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15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
입다가 승전 후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무남독녀가 그를 맞이하였다(34절). 입다는 서원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고(35절), 딸은 그 서원을 이행하라고 말한다(36절). 다만 친구들과 함께 애곡하는 기간을 줄 것을 요청한다(37절). 두 달 동안 애곡을 마친 그 딸(38절)은 결국 입다의 서원대로 하나님께 바쳐졌고(39절), 이후 그 딸을 위한 애곡이 관습이 되었다(40절). 오늘 본문은 교훈을 끌어내기 어려운 본문이다. 성경이 입다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은 객관적인 필체로 입다의 행동과 그 결과로 만들어진 관습에 대해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날샘의 묵상처럼 "만약 입다가 율법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이 사건은 이런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