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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총독 부임 이후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다고 고백한다(14절). 그는 이전 총독들의 가렴주구를 이야기하며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한다(15절). 그는 성벽 공사에 집중했고, 부하들까지 전부 그 일에 투입하였다(16절). 그는 식객들을 대접하기 위해 식료품을 소진했지만 그 외에는 불의를 행하지 않았다(17-18절). 그는 하나님께 이 일을 탄원한다(19절). 오늘 본문은 다소 특이한 자전적 어조로 기록되어 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청원하는 형태를 빌어(19절)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한다. 이는 어쩌면 느헤미야가 부정한 총독이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전임자들의 행태를 고발하며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15절)...
백성들은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며(1절) 먹을 것이 없어(2절) 모든 것을 팔아야 할 지경임을 토로했다(3-5절).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분노하여(6절)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었다(7-8절). 그리고 모든 이자를 없애자고 제안하였다(9-11절). 그들은 제사장들 앞에서 그렇게 행하기로 맹세했다(12-13절).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가 부딪힌 두 번째 난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백성 간의 빈부 격차로,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사이다. 본문 1절은 흥미롭게도 "백성들"과 "유다 사람들"을 구분한다. 8절에서 유다 사람들이 "도로 찾"은 대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 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의 점령 이후 그 땅에 남아 살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마리아 군대의 위협 앞에,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격려하여 성벽 뒤에서 무기를 들고 지키라고 했다(13-14절). 사마리아 군대는 즉각적인 공격을 포기했고,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다시 공사를 재개했다(15절). 하지만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파수하는 식으로 공격에 대비했고(16, 21-22절), 심지어 공사하는 자들도 무장한 채 공사를 진행했다(17-18절). 공사 면적을 고려해, 나팔을 통한 비상 경보 체제도 갖추었다(19-20절). 느헤미야는 이 모든 일에 앞장 서서 모범을 보였다(23절). 처음으로 부딪힌 심각한 문제에서, 느헤미야는 지난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도하는 한편 파수꾼을 두어 공사 현장을 지키기로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침입의 위협이 있었고(느 4:7, ..
산발랏과 도비야는 예루살렘 성을 중건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며 비웃었다(1-3절).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편(4-5절), 성 건축을 독려하여 절반 가량 완성하였다(6절). 그러자 산발랏 무리는 예루살렘을 쳐들어 올 계획을 세웠고(7-8절), 이 이야기를 들은 느헤미야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파수꾼을 세웠다(9절). 하지만 유다 사람들의 사기는 꺾였고(10절),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세등등했으며(11절), 사마리아에 붙은 유다 사람들마저 생겼다(12절). 이제 느헤미야가 봉착한 첫 번째 어려움이 등장한다.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의 견제였다. 본문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12절) 이들은 유다 사람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는 것을 경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들은 예루살렘이 건축된다는 소식을 듣..
오늘 본문은 다소 지루하게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 건축에 기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수록하고 있다. 몇 가지 흥미로운 관찰 사실을 정리해 본다. 먼저 본문에 기록된 문은 양문(1절), 어문(3절), 옛 문(6절), 골짜기 문(13절), 분문(14절), 샘문(15절)의 여섯 개로,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들보를 얹고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쪽 수문(26절), 마문(28절), 함밉갓 문(31절)은 언급은 되어 있지만 재건이 되었는지 여부는 나와있지 않다. 다음으로, 성벽 중수에 참여한 사람들의 직업을 살펴보자. 먼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있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그 형제 제사장들"(1절),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22절), "제사장들"(28절), "레..
느헤미야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산발랏과 도비야는 근심했다(10절). 느헤미야는 도착한 지 3일 후에(11절) 일어나 밤에 예루살렘을 시찰한다(12-15절). 이는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다(16절). 그는 이후에 방백들을 격려하여 예루살렘 성을 다시 재건하자고 했고(17절), 방백들도 그에 호응하였다(18절). 다만 산발랏 무리는 그들을 조롱하였고(19절) 느헤미야는 그들을 단호히 물리쳤다(20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성벽의 실태를 확인하러 잠행한다(11-12절). 이는 그가 재빠르게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음을 나타낸다. 그가 확인한 예루살렘 성의 모습은 참혹했다. 그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으며(13절)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을 정도로 폐허가..
느헤미야는 술 관원으로서 왕에게 술을 따랐는데(1절) 그 때 그의 얼굴에 근심이 있는 것을 왕이 알아차렸다(2절). 느헤미야는 근심의 이유를 밝혔고(3절), 왕은 그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다(4절). 느헤미야는 기도 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5절). 왕은 구체적인 것을 물어본 후(6절) 느헤미야가 원하는 것들을 포함하여 그가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허락하였다(7-9절).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땅에 도착해 왕의 조서를 전달했다(9절). 지난 본문에서 예루살렘이 훼파된 것을 들은 느헤미야는 이 일로 근심하며 기도했다. 오늘 본문은 그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왕 앞에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는데(1절), 그 때 얼굴에 수심이 있는 것을 아닥사스다 왕이 눈치챈다(2절). 왕은 그 연..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본디 히브리 성경에서 한 권의 책이다. 우리가 쓰는 성경에서는 나뉘어 있지만, 주제를 비롯해 통하는 면이 많으므로 계속해서 느헤미야를 묵상하고자 한다. 왕의 술 관원(11절)이던 느헤미야는 수산 궁에서 일했는데(1절), 유다에서 온 하나니로부터(2절) 예루살렘이 허물어지고 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는다(3절).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울며 기도했다(4절). 그는 기도에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회개하며(5-7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했다(8-11절). 본문에는 에스라서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시점이 기록되어 있다. 아닥사스다 20년이다(1절). 에스라의 귀환이 아닥사스다 7년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스 7:8), 그 이후 13년이 흐른 것이다. 그는 친동생 ..
에스라는 종족별로 족장을 세워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은 사람을 조사하게 했고(16절), 석 달이 걸려 이 일은 모두 마무리되었다(17절). 본문은 대부분 그 사람들의 명단으로 이루어져 있다(18-44절). 명단에서 인상적인 것은 "제사장의 무리"(18절), "레위 사람"(23절), "노래하는 자", "문지기"(24절)와 같이 성전을 섬기는 직무를 맡은 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24절까지의 명단은 스 2:36-41의 명단과 동일한 순서(예수아 자손, 임멜 자손, 바스훌 자손, 하림 자손, 레위 사람, 노래하는 자, 문지기)로 이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가문이 빼놓지 않고 죄를 범했으면 보여주는 장치가 아닐까 싶다. 25절부터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백성들의 명단을 소개한다...
에스라는 성전 앞에서 울며 회개했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기 합세했다(1절). 스가냐는 에스라에게 아직 소망이 있다며(2절) 혼합된 자들을 이스라엘에서 쫓아내자고 말한다(3-4절). 에스라는 일어나 이들에게 맹세를 받고(5절) 여호하난의 방에 들어간 뒤(6절) 모든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았다(7-8절). 백성들이 모이자(9절) 에스라는 이방인들을 끊어 버리라고 명하고(10-11절), 백성은 기한을 정해 일을 하자고 답한다(12-14절). 그 와중에 반대하는 자들도 있었다(15절). 에스라가 다섯째 달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는데(스 7:9) 아홉째 달에 이 죄악을 발견했다는 것(9절)은, 이 죄가 에스라가 도착한 이후 벌어진 것이 아니라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1차 귀환자들부터 점차 퍼져나간 범죄임을..
순조롭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잘 정착한 에스라에게 방백들이 나아왔다(1절).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현지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죄를 범했다고 보고했다(2절). 에스라는 옷을 찢으며 극심한 슬픔을 표현했고(3절), 이 죄를 우려하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에스라에게 나왔다(4절). 에스라는 그들 앞에서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했다(5-15절). 오늘 본문의 핵심은 "혼합"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면서 현지인들과 통혼하지 말라고 명하셨다(11-12절; cf. 신 7:1-4).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여호와 신앙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cf. 왕상 11:2). 하지만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1절) 그들과 통혼하여 "거룩한 자손이..
에스라는 제사장의 우두머리들을 따로 세워(24절) 예물로 받은 물품들을 맡긴다(25, 30절). 이는 매우 귀한 것들로(26-27절), 에스라는 그들에게 이 물품들을 예루살렘까지 무사히 가지고 올 것을 명한다(28-29절). 이제 에스라와 그를 따르는 무리는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했고(31절) 무사히 도착했다(32절). 예물 역시 잘 도착하였다(33-34절). 이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35절) 조서를 유다 땅의 총독들에게 전달했다(36절). 지난 본문까지 유다로 돌아갈 채비를 차리던 에스라는 이제 본격적으로 귀향길에 오른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일에 종사하던 "거룩한" 사람들(28절)인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30절) 하나님의 일에 사용될 것들을 맡긴다(25, 30절..
에스라는 사람들을 아하와 강가에 모은 후 레위인을 찾았지만 무리 중에서 찾을 수 없었다(15절). 그는 족장들을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 느디님 사람들의 족장 잇도에게 사정을 설명하게 했다(16-17절). 그들은 성공적으로 레위인들을 여럿 데려올 수 있었다(18-20절). 이 첫 번째 이야기는 에스라가 맞닥뜨린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율법대로 성전을 재건하려면 레위인들이 필수적이었지만, 함께 떠날 무리 중에는 레위인이 없었다. 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전부 예루살렘으로 향한 것이 아님을 말하는 동시에,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에스라는 "족장"들(16절), 즉 높은 사람들을 보내 느디님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흥미롭게도, 이 족장 명단..
지난 본문에서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소개한 에스라는 갑자기 3인칭에서 1인칭으로 주어를 바꾸어 자신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찬양한다(27절).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의 마음에 성전을 향한 뜻을 주셨고(27절) 에스라가 그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셨기 때문이다(28절). 여기서 에스라는 이 모든 일이 결국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실행하신 것임을 분명히 한다. 에스라는 "하나님 여호와의 손"을 의지하여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를 모아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했다(27절). 그리고 본문은 그 우두머리의 명단을 수록하고 있다(1절). 2절은 유명한 가문인 비느하스, 이다말, 다윗 가문의 우두머리를 소개하고 있고, 3절부터 14절까지는 각 가문의 우두머리와 함께 돌아온 사람의 수를 기록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뜻을 모아 에스..
오늘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살펴 본다. 아닥사스다가 조서를 내렸다는 말이 따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맥락상 에스라의 요청에 따라(스 7:6) 아닥사스다가 성전 공사를 돕기 위해 쓴 것으로 보인다(11절). 조서는 먼저 발신인과 수신인을 밝히고 있는데, 발신인은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요, 수신인은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이다(12절). 수신인을 이처럼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이는 에스라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준다. 아닥사스다는 페르시아에 잡혀온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에스라와 함께 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함께 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한편(13절), 페르시아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에스라의 임무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는 것으로 규정한다(14절). 그런데 그 형편을..
아닥사스다 재위 중에(1절) 아론의 후손(2-5절)인 에스라라 하는 율법 학자가 바벨론에서 올라왔다(6절). 그는 아닥사스다 제7년에 이스라엘 자손 한 무리를 이끌고 다섯 달이 걸려(9절) 예루살렘에 도착했고(7-8절), 거기서 율법을 지키며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10절). 오늘 본문은 이후 7-10장의 전체 개관에 해당하는 본문이다. 에스라와 그를 따르는 무리가 예루살렘까지 오는 여정이 7-8장에 기록되어 있고, 그 이후 에스라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지키게 하는 내용이 9-10장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연구한다면, 이후 전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에스라의 족보(1-5절)를 길게 소개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
서신을 받은 다리오는 문서 창고를 뒤져(1절) 기록을 찾아낸다(2절). 고레스는 성전을 왕실 부담으로 짓게 명하였고(3-4절) 성전 그릇들도 돌려보내게 하였다(5절). 다리오는 유다 땅의 행정관들에게 성전 건축을 막지 말고(6-7절) 도리어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라고 명한다(8-10절). 이 명령은 무서운 처벌과 함께 전달되었고(11-12절), 유다 땅의 행정관들은 이를 신속히 집행하였다(13절). 성전이 곧 완성되고(14-15절), 유다 사람들은 성전 봉헌식을 행했다(16-18절). 그리고 유월절과 무교절이 적법하게 지켜졌다(19-22절). 오늘 본문은 흥미로운 흠들이 여럿 눈에 띈다. 우선 다리오 왕의 조서에 관한 기사(1-12절)가 자연스럽게 조서 내용으로 연결된다. 앞선 서신들은 인삿말로 시작했기 ..
학개와 스가랴의 격려 이후(1절)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했다(2절). 이 지역의 행정관들이 찾아와 성전 건축에 대해 묻고는(3-4절) 공사를 중단시키지 않은 채 다리오에게 문의 서신을 보낸다(5-6절). 그들이 보낸 글에는 성전 건축 상황(8절)과 더불어 그들이 물은 바(9-10절)에 대한 유다인들의 답변(12-16절)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다리오에게 그 답변이 사실인지 확인해 달라고 문의한다(17절). 오늘 본문의 시간적 배경은 다리오 왕 2년이다(스 4:24).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은 각각 학개서와 스가랴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역시 동일한 시간을 증언한다(학 1:1, 슥 1:1). 오랫동안 중단되어 있던 성전 공사가, 선지자들의 격려와 더불어 다시 재개되었다(2절). 그리고 ..
사마리아인들은 아하수에로 때 상소를 올려 유다인들의 공사를 방해했고(6절), 아닥사스다 때에도 비슷하게 고발문을 올렸다(7절). 고발문의 주체는 사마리아로 옮겨진 여러 이방인들(8-10절)로, 그 내용은 유다인들이 성곽을 수축함을 알리고(11-12절) 이로써 유다인들이 반역을 획책함을 고발하는 것(13-16절)이었다. 아닥사스다는 그들에게 답신을 보내(17절) 그들의 고발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고(18-20절) 공사를 금지시켰다(21-23절). 지난 큐티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 본문은 다소 시대착오적인 내용이 들어있다. 어떤 설교자는 이를 근거로 본문을 무시하고 넘어가는데, 나는 이 본문이 그 위치한 맥락 속에서 꽤나 부드럽게 삽입되어 있음에 주목한다. 즉, 기자 혹은 최종 편집자가 이 내용을 이 ..
성전을 건축한다는 소문을 들은 대적들이(1절) 찾아와 건축에 참여하기를 원했다(2절). 스룹바벨을 위시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했고(3절), 그 결과 대적들은 건축을 방해하기 시작했다(4절). 그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건축을 막았고(5절) 그 결과 성전 공사가 다리오 2년까지 중단되었다(24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1절)은 "그 땅 백성"(4절)으로도 불리는데, 스스로 "앗수르 왕 에살핫돈"에 의해 그 땅에 옮겨졌다고 말하는 것(2절)으로 보아 아마도 다른 곳에서 사마리아로 이주 당한 사람들(왕하 17:24)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그들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기에 성전 건축에 참여하겠다고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