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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계를 내린다. 여기서 "적그리스도"는 흔히 생각하는 마왕이 아니라 잘못된 가르침을 베푸는 교사들을 가리킨다. 18절은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다고 말하고, 이들이 발흥하는 것을 보면 마지막 때가 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19절은 그 적그리스도들이 결국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임을 증언한다. 사도 요한은 이들이 나간 것을 보면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21절에 걸쳐 사도 요한은 독자들을 권면한다. 독자들은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알게 된 자들로서(20절), 진리를 알고 있다(21절). 이 "기름 부음"은 요일 2:27를 참조할 때,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계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요한 사도는 여기서 갑자기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하나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세상"은 요한일서에서 처음 나오는 것인데(cf. 요일 2:2),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7절부터 묵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7절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는 앞선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계명 준수와 맞닿아 있는 표현으로, 요한은 그와 대조하여 "이 세상", "그 정욕"을 제시한다(17절). 이제 15-16절로 눈을 돌려 보자.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15절). 그 이유는 세상에 있는 것들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16절). 즉, 요한은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도 요한은 "자녀들", "아비들", "청년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각각 말을 전한다. 12절에 사용된 "자녀들"이라는 단어(τεκνία)는 이미 2장 1절에서 사용한 단어로, 그 후에도 2:28; 3:7, 18; 4:4; 5:21에서 사용된다. 이로부터 볼 때, 물리적으로 어린 사람들을 가리킨다기보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싶다. 즉, 요한은 수신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기에 이러한 내용을 전달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반면 13절에 나오는 "아비들"(πατέρες)과 "청년들"(νεανίσκοι)은 정확히 이 본문과 14절에서만 사용되는 단어들이다. 요한은 아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청년들은 악한 자를 이..
사도 요한은 독자들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그리스도의 계명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이 계명은 새 계명이 아니면서(7절) 새 계명이다(8절). 이 아이러니컬한 표현을 통해 요한은 계명의 두 가지 측면을 환기한다. 먼저, 이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 즉 율법에 담긴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다(7절). 반면 이 계명은 "참빛"이 비칠 때 주어진 계명이기도 하다(8절). 이를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요한에게 있어 이 계명은 이미 율법 안에 내포되어 있는 계명이었다. 따라서 율법을 아는 독자들이라면 이 계명에 대해서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계명이 율법과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계명은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8절)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
사도 요한은 "이것"을 너희에게 쓴다는 표현을 한 번 더 한다(1절). 여기서 "이것"은 아무래도 그 앞, 즉 1:5-10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듯 싶다. 해당 구절에서 요한은 빛과 어둠이라는 언어를 사용해 죄를 떠날 것을 권면했는데, 1절에서는 그것을 조금 더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지만 우리가 완전한 것이 아니기에 죄를 범할 수도 있다. 요한은 죄를 범하여도 우리에게는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며(1절) 그는 우리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화목 제물로 드려지셨다고 증언한다(2절). 이 내용 역시 지난 본문에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쳐야 하지만, 그럼에도 육신이 약하여 죄를 범하게 된다. 그 때 성도들은 그리스도..
요한은 "그"에게서 직접 들은 것을 전한다(5절). 여기서 "그"는 성육신하신 생명의 말씀을 가리킨다(요일 1:1-2). 그가 가르치신 것은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었다(5절). 요한복음은 "빛"을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시키는데(요 1:4, 9; 3:19; 8:12; 9:5; 12:35, 46), 동일한 이미지가 여기서는 하나님께 연결된다. 그렇다면 이 빛과 어둠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후 이어지는 다섯 절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빛-어둠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6-7절과, 그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8-10절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각 절은 모두 조건-결과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비슷한 결과를 주는 내용들로, 6, 8, 10절끼리, 그리고 7, 9절끼리 묶을..
오늘부터 요한일서를 묵상한다. 요한은 생명의 말씀을 직접 경험했다고 말한다(1절). 그리고 그는 그 드러난 생명을 보고 증언하여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했다고 말한다(2절). 이는 결국 그들이 함께 성부, 성자와 사귐을 누리기 위함이었고(3절), 요한은 이를 씀으로써 자신의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한다(4절). 요한일서의 서두는 다른 서신서들의 서두와 사뭇 다르다. 보통 발신인과 수신인을 밝혀 쓰는데(cf. 요이 1, 요삼 1), 요한일서는 그런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서신이 어디로 보내졌는지는 알 수 없고, 발신인이 요한이라는 것도 내적 증거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요한복음, 요한이서와 메시지가 유사한 부분이 있고, 교회의 전승에서 본 서신서의 저작권을 요한에게 돌리고 있으므로 나 역시 그렇..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일하며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었고(15절), 동시에 이방인들이 드나들며 장사하는 것도 엄히 금하였다(16-18절). 그는 안식일 내내 예루살렘 성문을 닫고 짐이 드나들지 못하게 했다(19절). 성 밖에서 자는 장사꾼들도 다 내쫓아 버렸다(20-21절). 그리고 레위인들을 세워 안식일에 성문을 지키게 했다(22절). 한편, 이방인들과 혼합된 사람들을 보고(23-24절) 그들을 책망하였으며(25-27절), 특히 제사장 가문에서 이방인과 혼인한 자를 내쫓았다(28절). 그는 하나님 앞에 탄원함으로 자신의 열심을 증명한다(29-31절). 드디어 에스라-느헤미야의 대장정이 끝이 난다. 2017년 12월 초에 시작하여 4개월이 지난 3월 말에 끝을 맺는 셈이다. 중간에 여행 때문에 한 달..
성벽 봉헌식 날, 율법에 따라 헌물들을 곳간에 쌓아 두기로 하였다(44절). 이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위한 것이었고(45-46절), 그들 자신도 헌물을 드렸다(47절). 그리고 같은 날 율법에 따라 암몬과 모압 사람들을 무리 중에서 분리하였다(1-3절). 한편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틈에(6절) 도비야가 성전 내에 방을 얻었고(4-5, 7절), 느헤미야는 돌아와 그를 쫓아냈다(8-9절). 그리고 레위인들에게 줄 몫이 돌아가지 않는 것을 깨닫고(10절) 이를 바로잡았다(11-13절). 오늘 본문은 시기적으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성벽 봉헌식 당일에 일어난 일들을 다루는 부분(44-47, 1-3절)과,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뒤에 일어난 일들을 다루는 부분(4-14절)이다. 이들 모두는 '율법..
드디어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한다(27절). 느헤미야는 봉헌식에서 노래를 하기 위해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모았다(28-29절). 제사장과 레위인들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봉헌식을 준비했다(30절). 봉헌식 당일, 나팔이 울리는 가운데(35-36절) 성벽 위에서 방백들을 둘로 나누어 오른쪽(31-37절)과 왼쪽(38-39절)으로 행진하여 성전 앞에서 모이게 했다(40절). 기쁜 찬송과 함께(41-42절) 제사가 드려졌다(43절).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을 다루고 있다. 성벽을 완성한 이야기는 7장에 등장하지만, 그 이후 근 다섯 장에 걸쳐 율법의 회복과 회개의 역사를 다룬 후에야 봉헌식이 등장한다. 이와 같은 편집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율법을 회복하고 그 율법에 비추어 스스로를 정결하게 해..
다시 한 번 기나긴 명단이 소개된다. 먼저 11장의 나머지 부분은 예루살렘 거주민들의 명단과 나머지 사람들이 거주한 지역을 다루고 있고, 12:1-26은 스룹바벨과 예수아 때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수록한다. 11장 1-2절에서 예루살렘에 거주할 사람들을 제비 뽑아 정했다는 언급을 한 후,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였"다고 증언한다(11:3). 여기서 제사장, 레위 사람들, 느디님 사람들, 솔로몬의 신하들을 따로 언급한 것은, 이들이 성전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예루살렘에 거주하지 않았음을 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과 대조를 이루는 자들로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을 언급한다(3절).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지도자들의 족보가 대략 소개되고 ..
백성의 대표들은 언약을 기록하고 인봉하였다(9:38). 본문은 인봉한 자의 명단을 수록한다(1-27절). 하나님을 따르기로 서약한 자들(28절)은 율법을 지키기로 맹세한다(29절). 이들은 이방인들과 통혼하지 않고(30절)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며(31절) 성전을 위한 헌물을 드리기로 하였고(32-33절), 율법대로 첫 열매와 십일조를 바치며(34-39절) 제비를 뽑아 예루살렘에 살기로 했다(11:1-2). 오늘 본문은 인봉한 사람들의 명단(1-27절)이 포함되어 다소 길어졌는데, 이 명단은 일종의 증거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즉, 후대의 연판장처럼 맹세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이들이 맹세를 어기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 명단을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나오는 다른 명단들과..
레위인들의 기도 마지막 부분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했고(23-24절) 그 안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렸다(25절).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반역하기에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대적을 보내셨다(26-28절).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등한시했고(29절)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열방에 붙이셨다(30절). 그럼에도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에 그들을 완전 멸하지 않으셨다(31절). 이제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는 동시에(33-35절) 탄원한다(32, 36-37절).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부터 사사기, 그리고 왕정 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하나님의 긍휼/축복과 이스라엘의 배역이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먼저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23절..
레위인들의 기도가 계속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받는 고난을 보시고(9절) 그들을 구원하셨고(10절) 홍해를 가르셨다(11절). 이어 그들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시며(12절) 율법을 내려 그들이 행할 바를 알게 하셨으며(13-14절) 양식과 물을 주셨다(15절). 비록 그들이 불순종하고(16-17절) 우상을 숭배했지만(18절),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고(19절) 부족함 없이 채우셨으며(20-21절) 땅까지 주셨다(22절). 지난 본문의 배경이 창세기였다면, 오늘 본문의 배경은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과 홍해에서 고통 받는 것을 보셨고(9절), 각각 애굽의 재앙(10절)과 홍해의 기적(11절)으로 도와주셨다. 본문은 그 하나님이 "오늘과..
율법을 들은 이스라엘은 모여 금식하며(1절)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2절). 이들은 이 날 율법책을 읽고 죄를 고백하며 경배하였다(3절). 레위 사람들은 단 위에 올라 하나님께 부르짖었고(4절), 또한 하나님을 찬양했다(5절). 이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심을(6절), 그리고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약속을 주신 후(7절) 그 약속을 이루심을(8절) 찬양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일곱째 달 24일에 다시 모였다(1절). 이는 초막절의 마지막 날인 22일로부터 이틀 뒤였는데, 특별한 전통과 연관되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날 이들은 금식하고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썼는데(1절), 이는 깊은 슬픔의 표현이었다. 게다가 이방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마도 그 날만) 끊고 죄를 자복하는 ..
에스라가 율법을 가르친 다음 날, 백성의 지도자들이 에스라에게 나와(13절) 함께 율법을 살펴 초막절 규정을 발견한다(14-15절). 백성은 이 명령에 순종하여 초막을 세우고(16절) 그 안에 거했으며(17절) 에스라는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성회를 열었다(18절). 오늘 본문은 초막절의 회복을 다루고 있다. 레위기에 따르면, 초막절은 일곱째 달 15일부터 7일간 지키는 절기로(레 23:34)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초막에서 살았던 것을 기념하여 그 기간 동안 초막에 나와 거하는 규정이 있었다(레 23:42-43). 첫 날과 여덟째 날은 안식하며 성회로 모여야 했다(레 23:35-36, 39). 신명기는 초막절 규정을 이 정도로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지만 초막절을 7일간 지켜야 한다는 명령은 전한다(..
출장과 휴가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약 한 달간 큐티를 하지 못했다. 멈춘 곳에서부터 재개한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모여 율법을 배우고자 했다(1절). 에스라는 율법을 가지고 와(2절) 백성에게 읽어 주었다(3절). 백성은 율법책을 펼 때 일어섰고(5절) 에스라의 송축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하나님께 경배했다(6절). 일어선 채로 레위인들의 율법 강독을 들은 백성들은(7-8절) 그 말씀을 깨닫고 울었다(9절). 에스라와 레위인들은 울지 말고 기뻐하라고 명했고(9-11절), 그 명령을 받은 백성들은 크게 즐거워 하였다(12절). 오늘 본문의 1절은 지난 족보 본문의 마지막 절을 받는다. 즉, 백성들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다"라는 표현(느 7:73)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
오늘 본문은 에스라 2장에 기록된 1차 귀환 포로들의 명단을 다시 한 번 수록하고 있다. 에스라 2장에서 본문을 가지고 묵상한 적이 있으니, 오늘은 이 명단과 에스라 2장의 명단 사이의 차이점을 찾아 보고, 한편 명단이 여기 수록된 의미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먼저 명단의 서두에서 "바벨론으로" 잡혀갔다는 말이 빠져 있고(6절; 스 2:1), 스룹바벨과 함께 나온 사람들의 수가 에스라는 11명(스 2:2), 느헤미야는 12명으로 다르다(7절). 그 이름 중에도 차이를 보이는 이름들이 있다. 그 이하로 등장하는 목록에서, 각 가문의 인구가 다르게 기록된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 그리고 숫자는 같은데 이름이 다른 가문들이 등장한다. 사소한 발음상의 차이는 제외하더라도 "요라 자손"(스 2:18)은 "하립 자..
성벽 공사가 끝났다(15절). 대적들은 이를 듣고 낙담했다(16절). 한편 도비야는 유다의 귀족들과 연결되어(17-18절) 느헤미야를 계속 협박하고 있었다(19절). 성벽이 완성된 후 느헤미야는 섬길 자들을 세웠다(1-2절). 그리고 성문 관리와 파수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공포했다(3-4절). 성벽은 엘룰월 25일에 완성되었다(15절). 엘룰월은 여섯번 째 달을 가리키며, 흥미롭게도 유대 전승에 따르면 엘룰월 25일은 천지창조의 제1일이라고 한다. 느헤미야서를 읽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두 사건을 병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52일이 걸렸다는 표현으로부터 성벽 공사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을 나타내기에, 유다의 대적들은 크게 낙담하였다(16절). 다소 생뚱맞..
산발랏 일당은 성벽 건축 소식을 듣고(1절) 느헤미야를 해하기 위해 그를 부른다(2절). 느헤미야는 거절하였고(3절), 이런 일이 네 번 일어난 후에(4절) 산발랏이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내(5절) 느헤미야가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헛소문을 낸다(6-7절). 느헤미야는 무고라고 당당히 말한다(8-9절). 이후 스마야가 칩거하여 느헤미야를 부른 후 함정에 빠뜨리려 했으나 느헤미야는 잘 빠져나갔다(10-14절). 시간이 흘러 성벽이 완성되었다. 다만 아직 성문에 문짝은 달지 못한 상황이었다(1절). 공사의 진척 상황을 알림으로써 느헤미야서의 기자는 시간이 꽤 흘렀음과, 대적들이 이로 인해 더 다급해졌음을 표현한다. 느헤미야의 주된 적이었던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1절; cf. 느 2:19)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