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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8:1-12 본문
출장과 휴가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약 한 달간 큐티를 하지 못했다. 멈춘 곳에서부터 재개한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모여 율법을 배우고자 했다(1절). 에스라는 율법을 가지고 와(2절) 백성에게 읽어 주었다(3절). 백성은 율법책을 펼 때 일어섰고(5절) 에스라의 송축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하나님께 경배했다(6절). 일어선 채로 레위인들의 율법 강독을 들은 백성들은(7-8절) 그 말씀을 깨닫고 울었다(9절). 에스라와 레위인들은 울지 말고 기뻐하라고 명했고(9-11절), 그 명령을 받은 백성들은 크게 즐거워 하였다(12절).
오늘 본문의 1절은 지난 족보 본문의 마지막 절을 받는다. 즉, 백성들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다"라는 표현(느 7:73)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라는 표현(1절)으로 본문이 시작되고 있다. 이는 에스라 3:1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패턴인데, 흥미롭게도 두 본문은 모두 "일곱째 달", 특히 "일곱째 달 초하루"를 언급하고 있다(2절; 스 3:6). 우연의 일치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기자가 의도적으로 이 날짜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탈무드에 따르면 "일곱째 달 초하루"는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날이다(레 23:24에서는 특별한 부연 없이 이 날을 나팔절로 지키라는 명령을 소개한다). 따라서 본문을 읽는 독자들은 자연스레 해당 날짜와 그 날 일어난 사건을 연결지어 생각했을 것이다. 에스라는 이 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이 첫 번제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고(스 3:6), 느헤미야는 이 날 백성이 율법으로 일신되었다고 기록한다(2절). 서로 행한 일은 다르지만, 두 본문은 각기 '택한 백성의 새 창조'를 제례적인 차원과 정신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학사"(1절)이자 "제사장"(2절)이었던 에스라는 백성의 청함을 받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1절)을 가져왔다. "수문 앞 광장"(3절)에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4절) 위에서, 에스라는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의 말씀을 낭독하였다(3절). 에스라의 좌우에는 13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아래의 레위 사람 명단과 다른 것으로 볼 때("마아세야"가 겹치지만 동명이인일 듯) 이들은 유력한 방백들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일단의 레위인들 역시 율법책을 낭독하고 해석하는 일에 참여하였다(8절). 7절에는 그 중 특별히 13명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는데, 13이라는 숫자가 반복되어 나오는 것이 흥미롭다. 숫자에 대한 과잉 해석은 지양해야 하지만, 어쩌면 인간의 수 6과 신의 수 7의 만남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백성들은 율법에 대한 경외를 행동으로 표현했다. 에스라가 책을 펼 때 백성들은 일어났고(5절), 일어난 채로 율법 강독을 들었다(7절). 에스라가 하나님을 찬양하자 백성들은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했다(6절). 그리고 말씀을 들은 그들의 반응은 우는 것이었다(9절). 이는 율법책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의 반응(왕하 22:11; 대하 34:19)을 떠올리게 한다. 즉 그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회개한 것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그리고 레위 사람들은 그런 백성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명령한다(9-11절). 본문은 자그마치 세 번에 걸쳐 비슷한 명령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느헤미야는 총독으로서 백성들에게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거워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10절). 이 명령을 받은 백성들은 명령대로 준행하며 율법을 깨달은 즐거움을 누렸다(12절).
오늘 본문은 유다 공동체에 임한 말씀의 회복을 기록하고 있고, 특별히 그 주체를 "모든 백성"으로 언급하고 있다(1절). 에스라가 '위로부터의 개혁'을 이야기한다면, 느헤미야는 보다 백성 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백성은 말씀을 기꺼이 듣고자 했고(1, 3, 5절), 그 말씀을 깨달았을 때 우는 것으로 반응했으며(9절), 지도자들의 명령을 받고 그 날을 즐거워했다(12절). 이들 안에서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얼마나 큰지를 본다. 나의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