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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특히 13절은 개인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바울이 "다", "하나가 되어" 등의 표현을 쓴 것을 보면, 이는 결국 앞 절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적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점이 NIV 성경에는 조금 더 잘 나와있다.)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셔서(엡 4:11)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실 때(엡 4:12), 이를 통해 모두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신다(13절). 풀어 살펴보자면, 은사로 교회를 섬기는 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성도의 성장'에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인 "온전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울은 이에 대한 대조로 "어린아이"를 제시한다(14절). 그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
이전 본문에서 하나 되게 하심을 역설한 바울은 바로 이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에 대해 이야기한다(7절). 어쩌면 에베소 교회는 서로 자신의 은사가 더 낫다고 하면서 다투는 사람들이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바울은 이들에게 은사는 "선물"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그리스도의 선물"을 쓰다가 문득 시 68:18을 떠올렸는지, 바울은 8-10절에서 시편을 인용하고 이 예언을 설명한다. 바울은 시편의 "그"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응시켜 "위로 올라가"신 것이 부활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부활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다. 이 표현은 엡 1:23에서도 나오는 표현인데, "온전하게 하심"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것들을 온전하게 하시려는..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에베소서의 논리 연쇄가 계속 몰아친다. 다시 바울은 "그러므로"로 문단을 시작한다. 무엇에 대한 순접인가? "주 안에서 갇힌" 나(1절)라는 표현이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엡 3:1-13에서 자신이 갇힌 것에 대한 변증을 한다. 자신이 갇힌 것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하기 위함이므로 수치가 아니라 "영광"(엡 3:13)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역에 헌신한 바울이 이제 권고를 시작한다. 1b-3절에서 바울은 본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서로 용납"하고(2절)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절)는 말이다. 이를 볼 때 에베소 교회에는 분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쫓아온 바울의 논리에 따르면, 분열은 단순히 윤리적으로 안 좋은 것이 아..
본문은 바울의 기도를 다루고 있다. 이 기도는 "이러므로"로 시작하는데, 이는 앞서 이야기한 "낙심하지 말라"(엡 3:13)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즉 본문의 구조는 "너희는 낙심하지 말라. 너희가 낙심하지 않도록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러이러하게 기도한다."와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기도를 시작한다(14-15절).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있음을 상징한다(cf. 창 2:19). 즉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의 주인이 되신다는 신앙고백인 것이다. 그런 위대한 하나님께 바울은 무엇을 구하는가? 16-19절이 기도의 본문에 해당하는데, 사실 이 부분은 문장 구조가 복잡하여 이해가 썩 쉽지는 않다(개역개정이든 NIV이..
본문은 엡 3:7의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표현을 받아 "이 은혜"를 주신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은혜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8절)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9절)인지 드러내려는 목적으로 바울에게 주어졌다. 풀어서 생각해보면, 이는 바울이 이방 선교를 하도록, 그리고 그 이방 선교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구별을 없애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드러내도록 하셨다는 의미이다. 10-12절은 9절에 대한 부연이다. 이 비밀은 "영원부터" "예정"된 것(11절)으로 "하나님의 각종 지혜"(10절)가 담겨 있는 놀라운 비밀이다. 또한 이 비밀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11절) 예정되었는데,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나..
본문은 개역성경에서 줄임표(…)가 등장하는 드문 본문이다. 이는 1절에서 바울이 주어만 쓰고 동사 없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때문인데, 개역개정에서는 이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개정이 되었다. (NIV에서는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나는 이 동사 없는 주어가 7절의 "내가"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즉, 2-6절은 일종의 부연 설명인 것이다. 먼저 큰 그림을 살펴보자. 바울은 "이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본문을 시작한다. 이 앞까지 계속된 에베소서 본문에서 바울이 이야기하던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가 되었다(1절). 바울은 7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선언한다. "..
바울은 어제 본문의 주제를 이어 받아 에베소 교인들에게 교회의 일치를 설파한다. 어제 본문에 따르면 화평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먼 데 있는" 에베소 이방인들과 "가까운 데 있는" 유대인들이 하나가 되었고(엡 2:17),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교회를 이루게 되었다(엡 2:18). 그 결과로 신분의 차이가 없어졌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방인들도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선포한다(19절). 그렇게 이루어진 교회는 무엇인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이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신 것이다(20절). 이로써 바울은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곳인지, 교회의 기초가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어 바울은 보편 교회와 지역 ..
본문에서 바울은 반복하여 "둘"이 "하나"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14, 15, 16, 18절). 이 "둘"은 무엇인가? 본문에 따르면 "먼 데 있는 너희"와 "가까운 데 있는 자들"이다(17절). 이를 좀 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제 본문의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다. 엡 2:11에 따르면 "할례를 받은 무리"와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가 등장한다. 즉, 이 "둘"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둘 사이를 막고 있던 "원수 된 것"(14, 16절), "중간에 막힌 담"(14절),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15절)은 그리스도의 "육체"(14절), 즉 "십자가"(16절)로 소멸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 분명히 나타나는 바울 신학의 요체를 다시 한 번 발견한다. 유대인..
에베소서를 큐티하면서 계속 느껴지는 것이, 에베소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글들이 짜임새 있게 연결되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토막토막으로 읽으면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큐티를 하려면 할 수 없지...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은혜"에 대한 설명(8-9)이 나오고, 다시금 창조와 예정을 다룬 후(10절), "그때"와 "이제"를 비교하는 문단이 등장한다(11-13절). "은혜"에 대한 설명은 사실 앞선 절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엡 2:5) 통치권을 주신 것(엡 2:6)은 은혜를 드러내 보이기 위하심이다(엡 2:7). 이 은혜 덕분에 우리에게 구원이 임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선물"이다(8절). 바울은 이 표현을 ..
본문은 날샘의 해석처럼 우리의 과거 모습(1-3절)과 현재 모습(4-7절)을 비교하고 있다. 헬라어 원문을 참조해보니 1절은 NIV처럼 해석하여 과거 모습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가 살리셨다는 내용은 번역 과정에서 추가된 듯. (Barnes: The words "hath he quickened," or "made to live," are supplied, but not improperly, by our translators.)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고(1절)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며(2절)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던 자들이었다(3절). 이를 가리켜 바울은 한마디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3절)였다고 딱 잘라 말한다. ..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 기도는 크게 감사 기도와 중보 기도로 나뉘는데, 감사 기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으로 인한 것이며(15-16절), 중보 기도는 하나님과 그의 비밀을 더욱 알게 해달라는 기도였다(17-19절). 오늘은 이 중보 기도와 이에 딸린 바울의 부연 설명을 묵상해보고자 한다. 바울의 중보 기도 제목을 본문으로부터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을 알도록 (17절) 2) 그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도록 (18a절) 3)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도록 (18b절) 4)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도록 (19절) 하나님을 더욱 더 아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다(호 6:3, 요..
본문을 여러 번 읽은 후에야 그 의미가 조금 와닿는 것 같다. 본문을 크게 나누어 두 부분으로 본다면 전반부(7-10절)와 후반부(11-14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반부에서 바울은 우리가 예수의 피로 속량 받은 것(7절)이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난 것이요(9a절) 경륜을 따라 예정된 것이었다고 말한다(9b절). 속량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이루기 위함이다(10절). 여기에서 바울은 부드럽게 논지를 잇는다.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통치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기업이 되었다(11절). 우리를 기업 삼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그의 영광을 찬송하도록(12절)이다. 바울은 동일한 말을 인간의 관점에서 반복한다. (예정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자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고(13절), ..
본문은 바울의 인사(1-2절)와 찬미(3-6절)로 이루어져 있다. 여느 바울서신과 마찬가지로 인사 부분에서는 송신자와 수신자가 밝혀지고 축복이 이어진다. 따라서 오늘은 찬미 부분을 자세히 묵상해보길 원한다. 바울은 "찬송하리로다!"라며 기쁘게 본문을 시작한다(3절). 이 어순은 헬라어 성경에서도 마찬가진데, 흥미로운 것은 여기 사용된 동사 "Εὐλογητὸς"가 바로 뒤에 나오는 "복을 주셨다"(εὐλογήσας)와 같은 단어라는 것이다. 억지로 직역하자면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께 복이 있으라!"라는 느낌? 이어 나오는 글의 큰 구조를 보자.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3절)을 주셨는데, 이 복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그의 은혜를 찬송하게 하시려는 것이다(6절). 이..
다윗은 갓의 말을 듣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올라간다(18-19절). 아라우나가 다윗을 만나 행차의 연유를 묻자(20-21a절) 다윗은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라고 답하고(21b절), 아라우나는 타작 마당과 소, 땔 나무를 드리겠다고 말한다(22-23절). 다윗은 제 값을 주고 이들을 구입한 후(24절) 그 곳에서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한다(25절). 20-24절은 사실 없어도 되는 본문이다. "다윗이 ... 올라가니라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 이렇게 이어져도 이야기 진행 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 불필요해 보이는 구절이 존재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이유를 찾아보려 한다. 아라우나와 다윗의 대화를 잘 읽어보면 다윗은 처..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나아가나(10절), 하나님께서는 이미 심판을 예비하고 계셨다(11-13절). 다윗은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며 심판을 택하고(14절), 그 결과 백성 가운데 큰 심판이 임한다(15절). 예루살렘이 심판 받기 직전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멈추시고(16절) 다윗은 하나님께 긍휼을 구한다(17절). 나는 본문에서 다윗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그와 합일되는 하나님의 긍휼을 본다. 다윗은 회개 중에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그의 손에 자신을 맡겼다(14절).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셨지만, 완전히 다윗 왕국을 멸하시는 대신 "족하다"고 하시며 어느 순간 심판을 멈추셨다(16절). 다윗이 굳세게 믿었던 하나님의 긍휼이 결국은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그리스도인..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격동시키사 인구 조사를 시키셨다는 기록으로 시작한다(1절). 다윗은 요압에게 인구 조사를 명하고(2절) 요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3절) 이를 강행한다(4a절). 요압과 사령관들은 이스라엘과 유다 전역을 다니면서 인구를 조사하고(4b-7절) 예루살렘에 돌아와(8절) 이를 보고한다(9절). 성경은 다윗의 인구 조사가 죄라고 이야기한다(1절; cf. 삼하 24:10). 왜 그럴까? 우리는 그 이유의 단초를 요압의 대사(3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압은 눈에 보이는 백성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닌데 어째서 다윗이 그에 집착하는지 묻는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얼마든지 그러한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다윗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중요한 요소를 정확히 알고 싶어했다. 이는 하나님을 온..
본문에서는 두번째 세 용사 중 두 사람, 아비새(18-19절)와 브나야(20-23절)를 소개한 후, 다윗의 용사 명단을 제시한다(24-39절). 나는 여기에 다윗의 용사 명단이 등장한 것이 흥미롭다. 이들 대부분은 여기에 한 번 등장할 뿐 성경의 다른 곳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성경은 이들의 이름을 정성스레 16절이나 할애하여 기록하고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성경이 "이름을 기록"하는 것에 대해 큰 중요성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두고 기뻐하라고 하셨다(눅 10:20). 이는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뜻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본문은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몸을 다해 충성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이를 두고..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선 다윗의 뛰어난 세 용사인 요셉밧세벳(8절), 엘르아살(9-10절), 삼마(11-12절)에 대한 소개가 나오고, 여기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다윗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에 뛰어든 에피소드가 이어진다(13-17절).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세 용사와 "백성들" 사이의 대조가 눈에 띈다. 여기서 "백성들"의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그들은 싸움에서 도망쳤다가(9절) 엘르아살이 블레셋을 무찌르자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다(10절). 또한 삼마의 전승 기록에서도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는 역할로 등장한다(11절).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인데(10, 12절), 왜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 다른 모습..
계속해서 노래가 이어지고 있다... 만, 조금 생각해 볼 부분이 있어 이번에는 본문 분석을 시도한다. 본문은 다윗의 유언시(1절)로, 다음과 같이 나눠볼 수 있다. 시인의 소개(1절) -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시인(2-3절) - 하나님의 말씀(3-4절) - 말씀이 이루어진 다윗의 집(5절) - 이와 대조를 이루는 사악한 자의 운명(6-7절).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2-3절)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왕(3절)에게 임할 축복(4절)을 노래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의 집에 그러한 축복이 임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며 즐거워하며(5절), 동시에 "사악한 자", 즉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당장에 불살라질 것이라 저주한다(6-7절).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