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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한 여자가 예수의 어머니를 부러워 하는 말을 던졌다(27절). 예수께서는 담담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더 큰 복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28절). 이 짤막한 말씀은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세상에서는 핏줄이 중요하다. 내가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의 부모인지 그것을 내세우며 자랑한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런 '주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의 행실로 평가 받을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켰는가? 당신 부모나 당신 자식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해보라. 예수께서는 이어 무리에게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보여줄 것은 요나의 표적 밖에 없다고 하신다(29절). 이 말씀은 사람들이 표적을 구했다는 눅 11:16을 배경으로 ..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께 질문을 드린다. 누가는 그 이유를 예수를 시험하기 위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25절). 그의 질문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느냐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에 기록된 바를 되물으셨고(26절), 율법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되어 있다고 답한다(27절). 예수께서는 그렇게 행하면 살 수 있다고 답하신다(28절).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영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누가복음에는 이 "영생"이라는 단어가 단 두 번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과 눅 18:18-30이 그것이다. 두 본문 모두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흔히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동일시하는데, 최소한 누가복음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은 듯 하다. (특히 눅 18장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각 동네에서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씀을 증거하셨다(4절). 첫 번째 말씀은 유명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다(5-15절). 이 비유와 해석은 초대 교회에서 꽤나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는지, 마태복음(마 13:3-23)과 마가복음(막 4:2-20)에도 거의 동일하게 실려있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는데, 길가에 떨어진 씨는 밟히거나 새에게 먹혔고(5절), 바위 위에 떨어진 씨는 습기가 없어 말랐고(6절),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가시에 막혀서 자라지 못했고(7절),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결실을 맺었다는 말씀이다(8절). 예수께서는 비유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제자들에게만 알리고 다른 이들은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비유를 풀어주신다(10절).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
평지 설교의 마지막 부분이다. 먼저 39-40절에서 예수께서는 인도자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듯(39절) 거짓 선생이 제자를 인도하면 둘 다 멸망할 뿐이다. 따라서 제자는 그 스승을 본받는 것이고, 스승이 가는 방향대로 따라간다(40절). 이 말씀에는 예수의 가르침이 "맹인"들의 가르침과 다르며 그 가르침을 따를 때 최소한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이 암시되어 있다. 그리고 41-42절은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눈 안에 들보를 넣어둔 채 다른 이의 티를 지적함을 말씀하신다(41절). 즉 자신의 행실이 크게 그릇되어 있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 다른 이의 작은 잘못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티베리우스 15년(1절), 즉 서기 29년경에 세례 요한이 활동을 시작했다(2절). 누가복음의 한 가지 특징은 기사에 구체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오늘 본문에도, 그 당시 유대와 갈릴리 지방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누구였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1-2절). 흥미로운 것 하나는 안나스와 가야바가 둘 다 대제사장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인데, 이들은 장인-사위 관계로(요 18:13) 율법상 한 명만 존재해야 하는 대제사장 자리를 번갈아가며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요한은 요단 강에 와서 "세례"를 전파하였다(3절). 누가는 요한을 이사야에 나오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 예언의 성취로 보고 있다(4-6절). 즉 요한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오실 길이 예비되며 그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오늘 점심에 식사를 하러 학교 근처 식당가에 나갔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거리를 걷고 있는데, 문득 앞을 보니 어느 흑인 분이 휠체어에 앉은 채 길 한가운데 버티고 있다. 눈을 안 마주치고 재빨리 곁을 지나쳐 가려는데 그 분이 말을 거신다. "Excuse me." 못 들은 척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Excuse me, sir? Sir!" 그 분의 목소리가 내 뒤로 점점 멀어진다. 마음은 복잡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바쁜 하루를 보내며 그 일을 잊은 채, 저녁에는 습관대로 수요예배에 나와 앉았다. 찬양을 부르며 "지금 이 자리에서 주가 영광 받으시도록" 가사에 울컥했다. 예배 후 개인 기도 시간에 그 가사를 묵상하며 입을 열었다. "하나님,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해요." ..
지난 본문까지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응당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한다는 권면을 썼다. 이제 요한은 이어 사랑은 심판 날의 "담대함"을 준다는 근거를 제시한다(17절). 앞서 요일 2:28과 3:21에서도 요한은 동일한 표현(παρρησίαν)을 썼는데, 특히 2:28의 경우에는 맥락도 비슷하다. 오늘 본문은 이제 이 말을 부연한다. 우리가 주님처럼 담대할 수 있는 것(17절)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18절). 즉 참된 사랑을 안 사람이라면 더이상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심판 날"에도 담대할 수 있다. 요한은 이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재차 던진다(19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사도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선언한다(14절). 따라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직 사망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14절), 심지어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것과 같다(15절). 살인자 안에서 영생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14절은 다소 해석이 필요한데, 요한일서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cf. 요일 5:13). 도리어 이 구절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자가 나타낼 모습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 하다. 즉,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는 자연스레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인용하여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아는 자라면 마찬가지로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게 된다고까지 말한다(16절). 이는 요 15..
지난 본문에서 적그리스도를 경계한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붙들라고 권면한다(24절). 즉,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처음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가르침을 견지하라는 의미이다.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이 사람 안에 거하면 그는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4절). 그리고 그것은 곧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이다(25절). 이 언어는 다소 요한복음의 언어를 연상시키는데, 특히 예수의 고별 설교(14-16장)가 떠오른다. 거기서도 예수의 "말"이 제자들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이 구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요 15:7)이 나온다. 요한이 이것을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쓰는 이유는 그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26절). 지난 본문의 "적그리스도"들을 가리킨다. 요한은 "기..
반정이 일어나자 아달랴가 성전으로 달려온다(12절). 그는 반역이라 외쳤지만(13절) 결국 끌려나가 죽고 말았다(14-15, 21절). 여호야다는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며(16절) 바알 신전을 부수고 바알 제사장을 죽였다(17절). 그리고 성전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다시 세웠다(18-19절). 이제 요아스를 인도하여 왕좌에 앉히자(20절) 모든 백성이 즐거워 하였다(21절). 본문은 왕하 11:13-20에 해당하는데, 지난 본문과 달리 두 본문 간에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오늘 묵상은 좀 더 본문의 내용에 집중해서 해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은 크게 아달랴의 실각을 다룬 전반부(12-15절)와 여호야다의 개혁을 다룬 후반부(16-21절)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전반부에서는 요아스와 아달랴의 희비가..
이제 마지막 때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다. 예수께서는 최후 심판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는 보좌에 앉아(31절) 모든 민족을 앞에 모으고(32절) 구분하여 "양"과 "염소"를 나눌 것이다(33절). 여기서 예수는 숨기지 않고 당신이 심판주로서 심판을 내리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는 천사들을 대동하고 이 땅에 영광스럽게 임하여 통치하실 것이다(31절). 오른쪽에 있던 "양"들은 "복 받을 자들"로서,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다(34절). 이 나라는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이 세상과 분리된 천상의 나라라기보다는 온전하게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게 될 이 땅 위의 나라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다른 말로 "영생"으로 칭해진다(46절). "양"들이 칭찬을 들은 이유는..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데리고 온 어린 아이들에게 기꺼이 안수해 주셨다(13-15절). 어느 청년이 예수께 나아와 영생을 얻는 길을 여쭙자(16절) 예수께서는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시고(17-19절) 그 계명을 다 지켰다 자부하는 청년(20절)에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명하신다(21절). 그러자 청년은 떠나갔다(22절). 예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시며(23-26절) 제자들에게 상급을 약속하셨다(27-29절). 오늘 본문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짧은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13-15절). 마 18:1-5에서 이미 예수께서 어린 아이에 관한 가르침을 베푸셨음에도,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어린 아이들을 배격했다(..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이다. 예수께서는 반석 위에 지은 집(24-25절)과 모래 위에 지은 집(26-27절)을 비유로 들어 예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않는 자의 결국을 설명하신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 가운데 권위가 있었기에(29절) 가르치심에 크게 놀랐다(28절). 오늘은 뒤에서부터 살펴보자. 예수의 말씀을 듣던 "무리들"은 예수의 말씀에 놀랐다(28절). 서기관들과 달리 "권위 있는 자"로서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29절). 여기서 말하는 "권위"(ἐξουσία)는 마태복음의 다른 곳에서는 "권능"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는데(9:6; 10:1), 맥락으로부터 볼 때 신적인 권위/권능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당시 서기관들에게는 신적인 권위가 없었지만 예수께는 신적..
오늘 본문은 "열매", 즉 행함에 관한 말씀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겉으로는 선하나 악한 열매를 맺는다(15-16절).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열매가 나무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비유를 제시하신다(17-20절). 악한 열매를 맺는 나무는 불에 던져질 것이다(19절).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이다(21-23절).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는 방법은 "열매"를 보는 것이다(16, 20절).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면(17-18절), 열매의 종류가 결국 나무가 어떠하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못된 나무, 즉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신다(19절).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은 열매를 맺으..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교훈이 등장한다. 소위 '황금률'(12절)과 '좁은 문의 교훈'(13-14절)이다. 우선 '황금률'은 내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역지사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12절). 흥미로운 것은, 예수께서 이 메시지로서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을 요약하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산상수훈 초반에 "율법과 선지자"를 언급하신 것을 생각해보면(마 5:17), 어쩌면 거기부터 12절까지가 하나의 덩어리로 예수께서 구약을 재해석하신 내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좁은 문의 교훈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좋아보이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좁은 문을 사모하라고 하신다(13-14절). 여기서 '좁은 길'과 '넓은 길'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
오늘 본문은 바울이 디도에게 장로(5-6절)와 감독(7-9절)의 기준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장로(πρεσβύτερος)와 감독(ἐπίσκοπος)이 어떻게 다른지가 조금 불명확한데,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해(행 20:17) 그들을 "감독"이라 부르는 것(행 20:28)을 보면 별개의 직분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용어의 구분은 확실히 있었던 것 같고, 디모데전서의 용례로부터 "장로"는 교회의 나이든 중진들을 가리키는 말(딤전 5:17-20), "감독"은 집사와 더불어 교회 조직을 관리하는 직분(딤전 3:1-7)으로 보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cf. 빌 1:1).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 두어 각 도시마다 장로들을 세우고자 했다..
지난 본문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 것을 강조한 야고보는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말로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함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14, 17, 20, 26절). 야고보는 여기서 가난한 형제자매를 돌보지 않는 것을 예로 든다(15-16절). 그는 이어 행함 없는 믿음이 얼마나 헛된지 설명하기 위해 신학적인 논증(18-19절)과 아브라함(21-24절) 및 라합(25절)의 예를 제시한다. 야고보는 반복적으로 행함 없는 믿음의 무가치함을 역설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행함 없는 믿음"이 바울의 이신칭의 신학에 꼭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바울이 율법주의를 배격하지만, 동시에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권면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로마서 3:10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시편 14편과 53편의 인용이다. 2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2-3) 2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시 53:2-3) 그런데 오늘 전도서를 읽다가 비슷한 지혜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15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느라 큐티를 놓쳤다. 이틀 분을 묶어서 묵상한다. 야고보서는 여러 소주제가 연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소주제 별으로 살펴보는 것이 편하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부의 허망함(9-11절), 시험을 참으라(12절), 시험은 어디에서 오는가(13-18절), 성내지 말라(19-21절), 말씀을 행하라(22-25절), 경건(26-27절). 야고보는 이전 본문에 이어 재차 시험을 참으라고 권면한다. 이는 그 결과가 생명의 면류관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12절). 하지만 시험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13절). 그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베푸시는 분이지 우리를 시험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17절). 시험은 자기 욕심에 미혹되는 것이다(14절). 즉, 유혹이 닥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