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약 2:14-26 본문

큐티

약 2:14-26

로보스 2015. 11. 21. 04:44

지난 본문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 것을 강조한 야고보는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말로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함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14, 17, 20, 26절). 야고보는 여기서 가난한 형제자매를 돌보지 않는 것을 예로 든다(15-16절). 그는 이어 행함 없는 믿음이 얼마나 헛된지 설명하기 위해 신학적인 논증(18-19절)과 아브라함(21-24절) 및 라합(25절)의 예를 제시한다.


야고보는 반복적으로 행함 없는 믿음의 무가치함을 역설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행함 없는 믿음"이 바울의 이신칭의 신학에 꼭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바울이 율법주의를 배격하지만, 동시에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권면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는 자(14절)는, 바울 입장에서는 애초에 참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닌 것이다.


말로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다 못해 악한 영들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믿기 때문이다(19절). 문제는 그 믿음을 보이는 일이다(18절).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그 믿음을 인정 받은 때는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였다고 주장한다(21절). 라합 역시 정탐꾼들을 숨겨주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 편입되었다(25절). 따라서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22절).


신학적으로 칭의와 믿음, 그리고 행위의 관계를 엄밀하게 고민해 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겠지만, 사실 본문에서 야고보가 말하고 싶어하는 바는 그런 복잡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그 삶이 비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하다면, 과연 그를 살아 있는 성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가난한 이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면서 그들에게 아무 것도 제공해주지 않는다면(15-16절), 과연 그것이 신앙의 자세인가? 이 쟁쟁한 사도의 음성에 나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내 삶을 돌아보고 "구별된" 자로서 살아가기를 다시 한 번 결심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