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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어느 바리새인의 식사 초대를 받아 가셨다(37절). 그런데 식사 전에 예수께서 손을 씻지 않으므로 바리새인이 이상하게 여겼다(38절). 이는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는 문제였다(마 15:2, 막 7:3-4). 아마 이 바리새인은 랍비라 불리는 예수가 장로들이 정한 규칙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신다. 바리새인들은 겉의 깨끗함은 따지지만 속의 깨끗함은 신경쓰지 않는다(39절). 하나님께서는 속까지 들여다보시는 분이다(40절). 그렇다면 속을 깨끗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41절). 즉 "탐욕"과 "악독"을 버리고(39절) 내게 있는 것을 다른 이들..
유다는 성도들에게 문안을 전하며 편지를 시작한다(1-2절). 그는 구원에 관해 편지를 쓰려 했지만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다(3절). 이는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 때문이었다(4절). 유다는 출애굽 때 반역한 자들(5절), 타락한 천사들(6절), 소돔과 고모라(7절)의 죄악을 예로 들며 이 사람들 또한 동일한 죄를 짓고 있다고 고발한다(8절). 미가엘이 마귀에게조차 비방을 하지 못했건만(9절)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 비방하고 있다(10절). 유다는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로 소개하고 있는데(1절), 아마도 야고보가 초대 교회의 핵심 인물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근거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수신자는 "부르심을 받은 자"(1절)로 되어 있어 일반적인 성도들을 염두..
예수께서는 권능을 많이 보이신 도시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을 두고 책망하셨다(20절). 고라신과 벳새다(21절)를 두로와 시돈에(22절), 가버나움(23절)을 소돔에(24절) 비교하셨다. 또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셨고(25-27절), 쉼이 필요한 자들에게 당신에게 나오라는 말씀을 하셨다(28-30절). 오늘 본문은 크게 책망, 기도, 초청의 세 덩어리로 나누어 본다. 그리고 그 핵심은 중간 덩어리, 즉 예수의 기도가 아닐까 싶다. 예수께서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과 "어린 아이들"을 대조한다(25절). 어린 아이들만 알게 된 "이것"이 무언지가 조금 불분명하지만, 27절을 참고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
전도자는 본문에서 여러 가지 비유와 격언을 사용하여 미래를 알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먼저 그는 떡을 물에 던지면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하며(1절), 먹을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권한다(2절). 우리는 흔히 구름을 보면 비를 예측할 수 있고 나무는 쓰러진 자리에 그대로 머무른다고 생각하지만(3절),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기에(5절) 우리의 예측을 믿어선 안 된다(4절). 그러므로 아침에도 저녁에도 쉬지 않고 수고하여 위험 부담을 낮추라(6절).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본문은 구름과 비의 관계, 그리고 바람에 의해 쓰러진 나무의 방향을 예로 들어 우리의 예측을 묘사한다(3절). 하지만 우리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5절). 본문은 당시 지식의 한계를 반영하..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뉜다. 불의한 세상에 대한 잠언(8-9절)과 물욕에 대한 가르침(10-17절)이다. 불의한 세상에 대해, 전도자는 불의한 자들을 판단하는 분이 계시다며(8절) 최종적인 심판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인간이 먹을 것 앞에서 평등하다(9절)는 주제를 징검다리 삼아 물욕 이야기로 넘어간다. 물욕을 가진 자는 자족하지 못한다(10-13절).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하는 재물로 인해 평생 고생만 하게 될 것이다(14-17절). 전반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지난 본문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인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세상의 불의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다. "빈민을 학대"하고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자들은 결국 그들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기 때..
전도자는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에 관한 교훈을 남긴다(12절). 지혜와 우매의 관계는 빛과 어둠의 관계와 같으나(13-14절), 지혜자나 우매자나 결국 같은 일을 당한다(14-15절). 그 일이란 죽음이고, 죽은 뒤에는 둘 다 잊혀질 것이다(16절). 따라서 사는 것은 헛된 일이다(17절). 오늘 본문은 지혜에 관한 통찰을 다루고 있다. 전도자는 후세인들이 지혜에 관해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왕으로서 겪은 경험보다 새로운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12절) 자신의 교훈에 권위를 둔다. 비록 지혜가 사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맞지만(13-14절), 죽고 난 뒤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16절).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16절) 따라서 지혜를 추구하는 것도 헛된 일이다. 전도..
전도자는 인간의 능력과 지혜의 허무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힘을 다해 세상만사를 연구해 보니 인생들이 하는 모든 일은 다 괴롭고 헛된 것이었다(13-14절). 인간의 힘은 그 한계가 너무도 분명했다(15절). 그는 자신의 지혜를 뽐내며(16절) 지혜와 우매에 대해 연구해 보았지만 그것도 헛된 것이었다(17절). 지혜가 많으면 번뇌가 많을 뿐이었다(18절). 인간의 노력은 헛되다. 왜냐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15절). 많은 이들이 지혜를 좋은 것으로 여기지만, 지혜를 추구하는 노력 또한 헛되다(17절). 지혜가 많으면 번뇌가 많고, 지식이 많으면 근심이 많을 뿐이기 때문이다(18절). 여기서 전도자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12절), 또 지혜로운 자로서(16절)..
지난 본문에서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언급한 바울은, 우리가 그들에 비해 나을 것이 없음을 논증한다. 우리 역시 죄인이었지만(3절)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얻었다(4-5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고(6절)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7절).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게 우월감을 가질 것이 전혀 없다(딛 3:2). 오늘 본문은 다시 한 번 교만의 문제를 친다. 어쩌면 그레데 교인들은 자신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의롭다고 믿으며 그들을 비방하고 정죄했는지도 모르겠다. 바울은 그런 이들에게 우리도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음을 일깨워준다(3절). 하나님은 그런 우..
새해부터는 날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진도를 정해서 큐티를 하고자 한다. 성경을 흐름에 따라서 읽는 것이 좋은데, 큐티 책을 따라가다 보면 긴 기간 빠질 때 아무래도 해당 본문들을 건너 뛰게 되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미국에 돌아왔고, 오늘부터 다시 일상이다. 디도서로 새해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본문은 편지의 서두 부분이다. 바울은 스스로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사도직을 설명하고(1-3절), 수신인인 디도를 축복한다(4절). 바울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종"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소개한다(1절). 헬라어 원문과 NIV 번역을 참고해서 본문을 읽어 보면, 바울의 사도직은 "영생의 소망"(2절) 안에 있는 "믿음"과 "지식"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1절). 영생은 하나님이 약속하셨다가(2절) 때가 되어..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1절). 바울의 노력은 가장 귀한 지혜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2-3절). 바울은 성도들이 교묘한 말에 빠지지 않기를 원했다(4절). 골로새 교인들은 행함과 믿음을 잘 지키고 있었지만(5절), 바울은 그 신앙을 굳게 지키라고 재차 권면한다(6-7절). 철학과 헛된 속임수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8절). 이제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쓴 목적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도 바울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깨닫게 함"에 맞춰져 있었다(2절). 하지만 사도 바울이 떠난 후(1, 5절) 성도들 주위에 "교묘한 말"로 주의를 돌리려는 자들이 생겨났고(4절), 그들의 본질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에 맞춰져 있었다(8절). 바울은 이 어려운 상황..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고, 입다는 암몬 자손에게 나아간다(29절). 전쟁 직전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하여(30절)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면 집에 돌아올 때 자기를 맞이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겠다고 맹세한다(31절). 입다는 암몬 자손과 전쟁을 벌이고(32절) 큰 승리를 거둔다(33절). 날샘은 입다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기에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승리를 주셨다고 말하고 있지만, 본문에서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나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는 "일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성경은 입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고(29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다(32절)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입다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음식 그 자체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먹지 않는다고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다(8절). 이로부터 소위 "믿음 좋은" 자들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으며 자신의 지식과 신앙을 뽐내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바울은 이들에게 경고한다. 그들이 누리는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이것이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림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9절). 믿음이 약한 자들이 믿음 좋은 자들의 행동을 보고 죄를 저지르게 된다면(10절), 예수께서 핏값으로 사신 형제가 멸망하는 것이다(11절). 이는 결국 믿음 좋은 자들의 죄악이다(12절). 바울은 단호하게 말한다.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그것을 영원히 행하지 않겠노라고(13절). 오늘 ..
바울은 이제 화제를 전환하여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한다(1절). 하지만 그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한 가지를 강조한다. 우리가 다 지식이 있지만 지식보다 사랑을 추구하라(1절). 지식을 쫓으면 결국 무지에 빠지고(2절), 사랑을 쫓으면 하나님께서 알아주신다(3절). 이는 아마 우상의 제물에 대해 고린도 교회에서 갑론을박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로 각자가 옳다고 하며 목소리를 높이니 사랑이 사라진 것일게다. 바울은 대전제를 깐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세상에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다(4절)! 어떤 이들은 다양한 신들을 말하지만(5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만을 믿는다(6절). 따라서 이를 잘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혼합주의적 신앙을 갖고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7절). 즉, ..
11월부터는 고린도전서를 묵상한다. 바울 서신의 기본적인 형태를 따라, 고린도전서는 인삿말(1-3절)과 기도(4-9절)로 시작한다. 먼저 인삿말에서는, 편지의 발신인과 수신인이 언급되며, 간단한 축복 인사가 뒤따라온다. 우선 발신인이 단순히 바울이 아니라 바울과 소스데네로 등장하는 것(1절)에 주목하자. 이 소스데네가 행 18:17의 회당장 소스데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고린도의 회당장이었던 그가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자신이 잘 알고 지내던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함께 쓰고 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이어 수신인으로 고린도 교회와 더불어 "각처에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 언급되는 것(2절)을 볼 때, 바울은 자신의 편지가 회람되기를 기대했던 것 ..
지난 본문까지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을 설파한 바울은 찬양을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의 불순종을 인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되게 하셨고, 이를 보고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복음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이 놀라운 경륜을 바울은 어떻게 묘사하는가?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풍성한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다고 고백하며 인간이 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33절).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도, 하나님께 조언을 드릴 수 있는 자도 존재하지 않는다(34절). 이어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을 찬양한다. 누가 하나님께 보답을 받았다고 할 수 있..
요새 IVP 조직신학시리즈 중 제럴드 브레이의 을 읽고 있다. 벌코프, 그루뎀 등의 일반적인 조직신학 개론서들에 비해 넓고 깊게 신론을 다루고 있어 좀 더 머리쓰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책에 등장한 한 가지 주제,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짤막하게 다루어보고자 한다. 이 책 74-77쪽을 참조한다. 고대-중세 시대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지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책의 표현을 인용한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용어로 알려질 수도 정의될 수도 없으며,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지성의 언어를 넘어서 비존재(즉 개념을 넘어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일이 필요했다. 그 영역은 오직 황홀경 속에 있는 신비주의자에게..
8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 13:8-10) "사랑장"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사랑의 우월함을 설명하면서 예언, 방언, 지식과 비교한다. 물론 바울이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 우월하다는 것인데, 이 구절을 근거로 어떤 신학자들은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 사도 시대 이후로 중단되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특히 이들은 "온전한 것"을 신약성경이 완성된 것으로 보아 신약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예언, 방언, 지식이 멈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본문이 이들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을까? "온전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다음 구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