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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까지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관해 이야기한 바울은, 새로운 주제로 들어선다. 새로운 주제는 바로 '교회'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복음 앞에 하나가 되었다면, 그 하나 된 공동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바울은 구약의 제사 대신 우리 몸을 드리는 제사를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이다(1절). 혹여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바울은 바로 이어 몸으로 드리는 제사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것이다(2절). 바울의 논점은 간단하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이 세대..
지난 본문까지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을 설파한 바울은 찬양을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의 불순종을 인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되게 하셨고, 이를 보고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복음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이 놀라운 경륜을 바울은 어떻게 묘사하는가?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풍성한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다고 고백하며 인간이 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33절).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도, 하나님께 조언을 드릴 수 있는 자도 존재하지 않는다(34절). 이어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을 찬양한다. 누가 하나님께 보답을 받았다고 할 수 있..
바울은 본문에서 "신비"를 이야기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일부가 우둔하게 되었고, 결국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다(25-26절).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로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인용한다(26-27절). 인용된 구절은 이사야 59:20로, 바울이 인용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 59:20) 하지만 대의는 같다. 결국 언젠가 이스라엘에 구원이 임할 것이라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방인 독자들에게 유대인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상기시킨다. 복음에 관한 태도만 보면 "원수"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조상 때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병치시킨다. 이 두 가지 속성은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계시다. 바울은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고,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인자하심이 있다고 말한다(22절). 본문은 바울이 하나님의 섭리가 숙명론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덧붙인 설명으로 보인다.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조차 믿음을 가진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접붙이실 것이다(23-24절). 이는 접붙이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은 믿음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에서 지금은 인자하심에 놓인 우리가 언제든 믿음을 잃고 하나님을 떠난다면 하나님의 준엄하심에 직면하게 될 것이..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로마서의 독자는 이방인이었다(롬 11:13). 따라서 로마서 11장을 잘못 읽으면 유대인들은 버림 받았고 이방인들이 선택 받았으니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무시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바울은 이런 자세를 방지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곡식이 거룩하기에 그로 만든 떡덩이가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하기에 가지가 거룩하다(16절). 우리의 거룩함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첫 곡식", "뿌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는 누구인가? 바로 그리스도 우리 주를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다. 뿌리가 우리를 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18절). 바울은 가지와 뿌리의 비유를 계속해서 사용한다. 본디 하나님으로부터 진액을 받던 일부 가지들..
연휴를 즐기다보니 큐티를 소홀히 했다. 반성. 밀리면 한꺼번에 하기로 한 것이 도리어 면죄부를 준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는 토요일에도 빠지지 않고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스라엘의 회복'이 재림의 선행조건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많은 이 때에, 과연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바울은 다른 이야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고 선포한다(1절). 이는 10장을 잘못 읽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예 버림 받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은혜를 입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일부 "남은 자"를 택하셨다(5절).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엘리야 때에 오바댜를 비롯한 칠천 명의 선지자들이 살아남은 이야기다(2-..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지난 본문에서 말한 "믿음의 말씀"이 무엇인지 선포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9-10절) 믿고 시인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바울은 앞서(롬 9:33) 인용한 사 28:16을 다시 한 번 인용하여(11절) 믿고 시인하기만 하면 누구나 차별 없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한다(12-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3절) 그 구원의 수혜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 이제 바울은 복음 전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전파하고, 그 전파한 것을..
바울은 9장 서두에서 밝힌 "큰 근심"과 "고통"이 무엇인지 좀 더 분명하게 밝힌다. 바로 "이스라엘의 구원"이다(1절). 바울이 그들을 보며 안타까웠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었지만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고(2절) 자기 의를 세우려고 집착하다가 하나님의 의를 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3절).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4절).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다. 바울은 여기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구약을 인용하여 설명한다(5-8절).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 행함으로 인해 구원을 받는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8:5) 하지만..
지금까지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되돌아보자.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로 인해 근심이 많다(1-3절).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임했지만(4-5절), 혈통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6절). 이는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의 전적인 뜻대로 선택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7-13절). 하나님은 뜻대로 선택하시는 분이며(14-18절), 그 앞에서 우리는 항변할 수 없다(19-23절). 하나님께서는 이미 선지자들의 글 속에서 이방인들이 구원받을 것을 계시해 두셨다(24-29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30절)라는 표현과 함께, 바울은 구원의 핵심 원리로 돌아온다. 이방인들은 율법으로 오는 의를 따르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오는 의를 얻었다(30절). 반면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오는 의를..
지난 본문에서 하나님이 그 뜻대로 선택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 뜻대로 선택한 자를 완악하게 만드신다는 것을 논한 바울은, 예상되는 반론을 제시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19절) 하나님이 그 뜻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면, 악역을 맡은 사람의 죄 역시 하나님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어려운 질문에 직면한 바울은 그 답을 하나님의 주권에서 찾는다. 토기장이가 마음대로 그릇을 만들듯이(21절), 하나님 역시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을 마음대로 지으실 권한이 있다(20, 22-23절).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어라 항변하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이런 논변을 전개하는 이유를 잘 살펴야 한다. 바울은 진노의 그릇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지난 본문에서 당신의 뜻대로 사람을 선택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한 바울은 자명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4절) 하나님은 인간의 소원,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게 당신의 뜻대로 사람을 고르신다(16절). 이를 보이기 위해 바울은 모세와 바로의 예를 제시한다(15, 17절). 출애굽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은총을 베푸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신다.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 바로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신다. "내가 이번에는 모..
바울은 이스라엘 자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록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게 되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은 아니다(6절). 그 이유는 이스라엘, 즉 야곱의 자손이라고 전부 이스라엘 자손이 아니기 때문이다(6절). 바울은 이를 위해 독자들이 친숙할 만한 예를 든다. 먼저 아브라함을 보라. 그의 후손이라고 전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불리는가? 아니다.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만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7절). 이는 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8-9절). 마찬가지로 이삭을 보라(10절). 그의 자식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 자식들에 대한 약속을 주신다(11-13절). 바울이 이 예를 들어 하고자 하는 말은 명백하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자들은 누가 뭐라..
바울은 새로운 주제로 들어선다. 그는 큰 근심과 고통 중에 있었다(1-2절). 이것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자신과 자신의 양심을 율법이 요구하는 두 명의 증인으로 내세운다(1-2절). 무엇 때문에 바울은 그리도 괴로워하였는가? 바로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한 것이었다(3절). 그는 심지어 그들을 위해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말한다(3절). 그들은 누구인가? "이스라엘 사람"이다(4절). 바울은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특권을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주셨다. 양자 됨, 영광, 언약들, 율법을 세우신 것, 예배, 약속, 조상들이 다 유대인들에게 속했고, 심지어 그리스도마저 그들의 혈통에서 나셨다(4-5절). (여기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
아아 로마서의 진수! 내 생일에 이런 뜻깊은 말씀을 묵상하게 되어 너무도 기쁘다. 잠시 지금까지의 맥락을 살펴보자. 7장에서 죄에 끌리는 연약한 육신을 고백한 바울은, 8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칭의된 자임을 선포한다(롬 8:1-4). 육신은 연약하여 하나님을 따를 수 없지만,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을 따를 수 있다(롬 8:5-11). 따라서 더 이상 육신을 따르지 말고 영을 따르라(롬 8:12-17). 고난 중에 있더라도 장차 받을 영광을 기대하며 참고(롬 8:18-25),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성령을 기억하며 참으라(롬 8:26-27).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부르셨다(롬 8:28-30).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31절)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라면..
지난 본문에서 육신의 사람과 영의 사람을 구분하여 영의 사람이 받아야 하는 "고난"에 관해 이야기한 바울은, 이번 본문에서 그 고난의 이유와 보상을 설명하려고 한다. 바울은 먼저 고난과 영광을 대비시켜 선포한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18절) 고난의 이유는 무엇인가? 알 수 없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이 허락하셨기에 우리에게 고난이 주어졌다고 확신한다(20절). 모든 피조물 역시 다 고통을 겪으며(22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19절)까지 허무한 데 굴복하고 있다(20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그 날 모두 피조물도 영광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21절). 뿐만 아니라 영의 사람..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이야기한다. 비록 우리가 "빚진 자"일지라도 육신을 따르면 안 된다(12절). 육신대로 살면 죽을 것이고 영을 따라 살면 살 것이기 때문이다(13절). 여기서 "빚진 자"(ὀφειλέται)라는 표현이 무슨 의미일지 고민을 좀 해보았는데, "의무를 가진 자" 정도(갈 5:3)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육신으로는 이것을 이룰 수 없다. 바울은 여기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13절)는 말을 부연한다. 영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다(14절). 이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15절),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17절). 그 증거는 무엇인가? 율법에서 두 사람의 증언을 참되다고 한 ..
큐티를 빼먹으면 그냥 넘어가곤 했는데, 생각해 보니 학습지도 아니고 그냥 그 다음날 한꺼번에 묵상하면 될 것 같다. 수요일 큐티를 빼먹었으니 오늘 그 날 본문까지 함께 묵상한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기 전에 맥락을 다시 살펴보자. 롬 8:1-4에서 바울은 육신은 율법의 요구를 따를 수 없다고 선포한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 대신 죄값을 치르셨기에 이제 우리는 영을 따르게 되었다. 이 맥락 속에서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자"와 "영을 따르는 자"를 구분한다(5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의 법, 즉 율법을 따를 수가 없기에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7-8절). 그 생각은 "사망"이다(6절). 그렇다면 영을 따르는 자는 어떠한가? 바울은 9-11절에서 그런 사람에 대해 논한다. 이는 하..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슨 말을 하겠는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 속에 메아리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다. 나는 해방되었다. 내겐 결코 정죄함이 없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다스린다. 율법의 요구는 이루어졌다. 나 십자가 대할 때에그 일이 고마와..
바울은 계명을 통해 '선'을 깨달은 인간에게 '악'에 대한 욕구가 넘실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인간 안에 선과 악은 함께 있다(21절).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 즉 선한 길을 따르고자 하나(22절) 겉사람은 "죄의 법"을 주장하여 인간을 사로잡는다(23절). 바울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25절) 이 얼마나 비참한 처지인가. 바울은 탄식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그리고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건지신다(25절). 바울은 이 이야기를 8장에서 이어나갈 것이다. 내가 하루하루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이 바울의 고백..
바울이 좋아하는 표현이 또 나왔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7절) 바울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속에서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이런 표현을 즐겨 쓴다. 무슨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율법이 죄냐?" 바울이 율법과 죄가 같은 결과를 내는 것처럼 묘사했기 때문에, 어쩌면 독자들이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바울은 단호히 말한다.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의 역할은 죄를 알게 하는 것이다(7절). 하지만 그것 때문에 도리어 죄가 살아났다(9절). 율법이 없다면 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8절). 죄를 자각하게 된 인간은 그 죄를 쫓게 된다. 이를 가리켜 바울은 죄가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고 말한다(11절). 그렇기 때문에 거룩하고 선한 율법(12절)이 도리어 우리를 사망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