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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본문에서 "복음"에 대해 말한 바울은 그 복음의 필요성에 대해 기나긴 논증을 시작한다. 바울의 이야기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18절). 이들은 아마 로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교도들이었을 것이다. 본문에 따르면 그들은 이방 신을 섬기는 사람들(23절)로 비윤리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24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을 계시하셨다(19절).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20절). 하나님은 원래 보이지 않는 분이고, 그 분의 능력과 신성은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를 인간에게 계시하기로 작정하셨고, 특별히 창조를 통하여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셨다. 본회퍼의 표현대로 "성숙한 세계"를 살아가는 과..
바울은 스스로를 "빚진 자"로 규정한다(14절). 이는 복음 전파의 의무를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그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대상은 헬라인, 야만인,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등 인간의 분류를 뛰어넘는다(14절). 따라서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15절). 복음은 무엇인가? 복음의 목적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것(16절)으로, 그 내용은 "믿음"과 "의"이다(17절). 바울이 여기서 복음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하자. 지난 큐티와 이어서 생각해 볼 때, 이 본문은 상당히 흥미롭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복음"을 전하고 싶어한다. "교회"가 "복음"을 몰랐던 것인가? 날샘은 로마 교회가 처음엔 복음을 받았지만 핍박 때문에 확신을 잃었기에 다시 복..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 교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바울은 먼저 로마 성도들의 믿음을 인해 감사한다(8절). 바울은 이들을 위해 항상 기도했다(9절). 그는 그 증인으로 하나님을 내세울 정도로 떳떳했다. 이로부터 바울이 아직 로마 교회를 방문하지 않았음에도 항상 로마 교회를 마음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로마 교회를 직접 방문하길 원했다(10절). 이는 그가 "어떤 신령한 은사"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함이었는데(11절), 바울은 자신이 방문하여 은사를 나누어 주면 그들이 "견고하게" 되며(11절) "열매를 맺게" 될 것(13절)이라고 말한다. 또한, 바울의 믿음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만큼 그들의 믿음이 바울 자신에게도 안위함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
4월에는 로마서를 묵상한다. 본문은 편지의 서두로서 수신인과 발신인을 밝히고 있다. 발신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다(1절).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사람으로 소개한다(1절). 즉, '복음'을 위해 '사도'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어 이 각각에 대해 부연한다. 그는 먼저 복음에 대해 부연하기를 "그의 아들"에 관해 성경에 약속된 것이라 말하는데(2절), 그 아들은 다윗의 혈통(3절)이자 하나님의 아들(4절)로서 "우리 주"(4절)이시다. 그렇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다. 그렇다면 '사도'란 무엇인가? 바울은 자신의 직분을 일컬어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는 직분이라고 말한..
오늘 본문은 다니엘서의 마지막 부분으로, 계시를 받은 다니엘이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결론을 묻고 그 답을 듣는다.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할 것인가(8절)? 이 마지막 때에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사람들도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10절). "지혜 있는 자"는 깨달을 것이고 "악한 자"는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10절). 그리고 본문은 '기다릴 것'을 권면한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12절). 다니엘 역시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명을 받는다(13절). 본문에 따르면, 말세에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고난을 묵묵히 감내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는 것이고, 또다른 한 가지는 고난을 견디지 못해 악의 편에 서는 ..
본문에서는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이 다루어진다(40절). 하지만 이 본문은 어떠한 교훈을 주기보다는 때를 읽을 수 있는 지식을 주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북방 왕이 장막 궁전을 세우면 그의 종말이 이를 것이다(45절)! 하나님께서 장래 일에 대한 계시를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때를 알고 그에 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도 이 같이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막 13:28-29) 우리는 '말세'를 살아가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신호는 이미 우리 곁에 찾아왔다. 언제 세상 끝이 도래할지 모른다. 종말론적 신앙으..
본문은 세상의 권력자가 사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할 것이다(36절). 그는 "어떤 신도 돌아보지 아니"할 것(37절)이지만 그렇다 하여 그가 아무 신도 모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강한 신", 즉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신"을 숭배할 것이다(38절). 그 신 덕분에 그는 "크게 견고한 산성들을 점령할 것"이고, 형통한 삶을 누릴 것이다(39절). 기존의 신들을 부인하는 세상 왕도 새로운 신을 섬긴다. '신'이라는 존재가 내가 신뢰하고 의지하는 존재라고 본다면, 누구나 신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설령 무신론자라 하더라도 그가 신뢰하고 의지하는 존재는 있지 않겠는가? (그게 자기..
계속해서 세상사에 대한 예언이 주어지나, 이번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에 조금 더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다. "북방 왕"은 "거룩한 언약"을 거스른다(28절). 그는 자신의 패배(29-30절)를 "거룩한 언약"의 탓으로 돌리며(30절)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31절)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킬 것이다(32절). 비록 이 본문이 역사적으로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가리킬지라도, 악을 따르는 이 세상의 권력자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미워할 것이다. 예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
계속해서 구체적인 정치 상황들이 예언된다. 세상 권세끼리 서로 세력을 더 얻고자 하여 벌이는 전투와 계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날샘의 바람과는 달리, 본문이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도리어 본문은 그저 담담하게 일어날 일들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단순한 뉴스와는 달리, 본문은 이 역사가 그저 인간의 욕망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문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꾸민 일이 실패하는 이유로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27절). 이는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인간의 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나의 계획을 겸손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내가 되길 소원한다. 사람의 마..
본문은 계속해서 역사 가운데 일어날 일을 계시한다. "남방 왕"과 "북방 왕"의 전쟁이 계속해서 묘사된다(7-14절). 하지만 그 구체적인 기술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본문이 원하는 바가 아닌 것 같다. 본문은 다니엘에게 어지러운 세상사를 미리 알려주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세상사가 어지럽게 흘러가는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닐까? 본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세상의 권세들은 각자의 욕심을 따라 이리 충돌하고 저리 충돌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 손바닥 안'에 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을 미리 아실 뿐더러, 당신의 뜻대로 세상의 역사를 이끄신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일들에 부평초처럼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우직하게 있는 자..
오늘 본문은 지난 본문에 나왔던 영적 존재가 다니엘에게 미래에 대한 계시를 주는 부분이다. 이 계시는 "참된 것"(2절)으로, 이후 벌어질 역사를 매우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바사 왕국에 세 명의 왕이 일어난 이후 네 번째 왕이 일어나 그리스를 공격할 것이다(3절). 이는 아마도 다리오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 세계를 지배할 것인데(4절), 그의 강성기에 그의 나라가 그의 뜻에 맞지 않게 갈라질 것이다(5절). 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뒤를 잇는 디아도코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 후계자 중 "남방의 왕"이 강해질 것이고(6절), 그는 자신의 딸을 "북방 왕"에게 시집 보내어 화친을 도모한다. 하지만 공주의 힘이 쇠하면서 그 화친은 깨지게 될 것이다..
환상을 본 다니엘은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다(15절).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말한다는 것에 큰 압박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17절). 날샘은 환상의 내용이 그를 힘들게 했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에 본문이 가리키는 "이 환상"(16절)은 그저 신적인 존재를 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뵙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외쳤던 것(사 6:5)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엄위하신 임재 앞에 부정한 인간이 노출되면서 몸에 힘이 빠진 것이다. 하지만 이 신적 존재들은 다니엘에게 힘을 준다. "인자와 같은 이"가 입술을 만지자 다니엘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16절), "사..
다니엘이 두려움에 질려 잠이 든 이후, "한 손"이 와서 그를 어루만지고 일으켰다(10-11절). 이 존재가 지난 본문에 나왔던 존재와 동일한 존재인지는 알 수 없다. (날샘은 다른 존재로 보는 듯 하다.) 그는 다니엘에게 말을 시작한다. 그가 온 이유는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되었기 때문이다(12절). 또한 그는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라고 말한다(14절). 이로부터 다니엘의 기도는 9장의 기도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운명을 두고 드렸던 기도였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응답이 지연되었다는 것이다.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한 그 날로 기도는 응답되었다(12절). 하지만 이 존재가 오는 동안 "바사 왕국의 군주"가 그를 막았고,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
본문은 다니엘이 받은 새로운 환상을 소개한다. 이 환상은 "큰 전쟁에 관한 것"으로 고레스 제3년에 계시되었다(1절). 이 때 다니엘은 세 이레, 즉 21일 동안 슬퍼하며 즐거움을 금하고 있었다(2-3절). 이는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단 10:12), 그 이유가 명백히 본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9장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회개의 표시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세마포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나타났다(5절). 본문의 묘사(6절)는 그가 신적인 존재임을 암시한다. 혹자들은 이 묘사가 계 1:13-16의 묘사와 유사함을 들어 이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나, 근거는 희박해 보인다. 이 환상은 다니엘에게만 보였지만 다른 이들은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다(7절). 또한 다니..
다니엘이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때(20절), 가브리엘이 도착하여(21절) 하나님의 명령을 전한다(22-23절). 이 계시는 다소 난해하다. 우선 모든 불완전한 것이 그치고 완전한 것이 올 때까지 총 70 이레가 주어진다(24절). 그 때가 오면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을 것이다. 이는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등장하는 70년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보인다(단 9:2). 그런데 이 70 이레는 7 + 62 + 1 이레로 구성된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이래 왕이 다시 등장할 때까지 7 + 62 이레가 걸린다(25절). 마치 왕의 임재를 기다리는 신부처럼, 예루살렘은 스스로를 회복시키고 단장할 것이다. 그 왕은 등장하고 곧 사라질 것이며, 예루살렘은 이방 왕의 침공으로 ..
지난 본문에 이어 다니엘은 계속해서 회개의 기도를 올린다. 비록 날샘은 그 응답(20-22절)까지 본문에 포함시켰지만, 오늘 나는 기도문 자체에만 집중하기를 원한다. 응답에 관한 구절들은 내일 본문과 함께 보겠다. 오늘 기도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다. 눈에 띄는 것은 용서가 이스라엘의 의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지난 본문에서 살펴본 대로,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죄악은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면 이스라엘을 용서하실 수 있다(18절).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위하여"이다(17, 19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기 때문에, 그 백성의 "수치"는 ..
오늘 본문에서 다니엘은 나라와 민족의 죄를 짊어지고 회개한다. 이 기도 안에서 전반적으로 다니엘은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것과, 심판이 내린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니엘은 "수치"(8절), "저주"(11절), "재앙"(12-14절)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여 심판을 묘사한다. 이러한 심판이 임한 것은 "온 이스라엘"이 율법을 범하였기 때문이다(10-11절). 하나님은 그저 율법에 약속하신대로 심판을 내리셨다(11-14절).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모세의 율법"(11, 13절)이라는 표현과 "애굽 땅"이라는 표현(15절)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출애굽 경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그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면서 언약을 맺었..
다니엘은 다리오 원년(1절) 예레미야의 예언을 읽다가 깨달음을 얻고(2절)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한다(3절). 현재 성경의 예레미야서에서 70년을 언급하는 대목은 두 번 나오는데, 첫 번째는 아직 바벨론이 유다를 치기 전에 주어진 예언으로 바벨론이 유다를 멸망시킬 것이고 이후 70년 동안 유다는 바벨론을 섬길 것이라는 예언(렘 25:9-14)에서 나오고, 두 번째는 바벨론 유수 이후에 주어진 예언으로 바벨론에 정착하여 살면 70년 후에 하나님이 원래 땅으로 돌려보내실 거라는 예언(렘 29:1-10)에서 나온다. 두 가지 예언 모두 공히 유다의 회복을 약속한다. 여기서 잠시 한 가지 묵상하고 지나갈 점이 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그저 자신의 환상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
오늘 본문은 다니엘의 환상을 해석해준다. 가브리엘(16절)이 다니엘에게 직접 와서 환상의 뜻을 알려준다(17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the appointed time of the end)"에 관한 것(19절)으로, 세상 나라들의 명멸을 묘사한다(20-25절). 나는 그 중 마지막으로 묘사된 "한 왕"에게 관심이 간다(23절). 본문은 그 교만한 자가 갖고 있는 강한 권세가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24절). 또한 그의 멸망 역시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이루어질 것이다(25절). 이는 세상의 일들이 사실 영적 전쟁의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건들을 만난다. 그들이 표면적으로는 인간 세상의 문제일지라도, 그 심층에는..
본문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상징하는 "작은 뿔"(9절)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하늘 군대"를 공격하고 일부를 정복했고(10절) 하나님을 대적하여 제사를 없애고 성소를 헐었으며(11절)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다(12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통탄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순간,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참혹한 상황은 "이천삼백 주야" 동안만 지속될 것이고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될 것이다(14절). 15-17절은 내일 큐티에서 다루는 것이 나아 보인다. 비록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일지라도, 이를 확장하여 생각해 보면 세상 권세 전반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 권세는 스스로 커지면 교만해져서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