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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베푸신 세 번째 비유는 유명한 '탕자의 비유'이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11절). 둘째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청했고, 아버지는 그 말대로 들어주었다(12절). 그는 그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허랑방탕하게 살다가(13절) 재산을 다 날려 버렸다(14절). 그는 그 나라에서 일할 곳을 구했는데, 다름이 아니라 돼지를 치는 일이었다(15절). 그는 배가 고픈 나머지 돼지 먹이라도 먹으려 했지만 주는 사람이 없었다(16절). 비참한 상황 가운데,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이 풍족했던 것을 깨닫는다(17절). 그는 집으로 돌아가 죄를 자복하고 품꾼으로라도 써달라고 청하겠다고 결심한다(18-19절). 그가 집으로 돌아오자 그 아버지가 그를 멀리서부터 그를 발견하고 뛰어가 그를 ..
지난 묵상을 올린 지 석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새로운 직업도 얻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말씀 묵상을 소홀히 했던 것을 반성하며, 이제 9월 첫째 주부터 다시 말씀 묵상을 정리해서 올려보고자 한다. 우선 오늘 본문은 짤막하게 잡았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음모를 알고 "거기"를 떠나가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따랐다(15절).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치시고(15절)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다(16절).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다(17-21절). 오늘 본문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바리새인과 예수를 따르는 무리이다. 바리새인은 예수를 죽이려 했고(마 12:14), 무리는 예수를 따랐다(15절).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으로부터는 떠나가셨지만, 무리에게는 긍휼을 베푸셔서 병..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먼저 지혜를 예찬한다(1절). 그리고 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권한다(2-5a절). 지혜자는 때와 판단을 잘 분별하여서 화를 피할 수 있다(5b-6절). 일반적으로 사람은 장래 일을 알 수 없고(7절), 당면한 위기를 피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8절). 오늘 본문도 얼핏 보면 온갖 관련 없는 경구들을 다 뒤섞어 만든 잡탕찌개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앞뒤로 나오는 것(1, 5절)을 볼 때, 이것을 열쇠로 삼아 본문의 일관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본문이 왕 앞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 행동할 강령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도자는 반복해서 왕에게 순종하고 그를 노하게 하지 말라고 권한다(2-3절). 이는 왕이 권위 있는 자로서 마음대..
삼손은 딤나의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길을 가던 중에 자신이 죽인 사자의 시체에 꿀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8절)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부모에게까지 나눠준다(9절). 삼손이 결혼 잔치를 벌이자(10절) 30명의 블레셋 사람들이 친구로 함께 했다(11절). 삼손은 그들에게 내기를 걸고 수수께끼를 내었고(12-14절), 풀지 못해 조급해진 그들은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여 답을 알아낸다(15-17절). 답을 맞춰 의기양양한 그들(18절)에게 삼손은 분노하여 내기 약속을 지키고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19-20절). 본문이 그려내는 삼손의 행동은 조심스럽지 않고 다분히 감정적이다. 율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고(8-9절), 교류가 금지되어 있는 이방인들과 흥청거리며 잔치를 베푼다(10절). ..
총독 벨릭스는 부인과 함께 구류되어 있는 바울을 찾아와 "도"를 듣는다(24절). 바울은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설명했고 벨릭스는 두려워했다(25절). 그럼에도 보석금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바울을 불렀다(26절). 2년 후 벨릭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왔지만,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바울을 구류 상태로 두었다(27절). 베스도가 부임 후 예루살렘으로 오자 유대인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호송해 달라고 부탁했다(1-3절). 이는 그 길에 매복해 있다가 바울을 죽이기 위함이었다(3절). 베스도는 그 청을 물리치면서 가이사랴에서 직접 재판을 하겠다고 말한다(4, 5절). 베스도는 가이사랴로 내려와 바울을 친히 재판하였고(6절),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 고발거리를..
어젯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사도 바울이 우리 교회에 와서 직접 설교를 한다면, 과연 나는 무슨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이 참, 저 양반은 무슨 얘기를 저렇게 어렵게 해? 저렇게 얘기해서 사람들이 이해하겠어?"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 6:60, 66) "어째 저리 말이 비리비리하냐. 설교자가 복음에 확신이 없나?"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고후 10:10, 12) 나의 귀..
분쟁이 있던 고린도 교회(고전 11:17-18)는 주의 만찬을 먹을 때에도 문제가 있었다(20절). 식사 자리에서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기다리는 대신, 각자 먹고 싶은 대로 음식을 가져다 먹었기 때문이었다(21절).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행위라고 말하며 엄히 질책한다(22절). 바울은 성찬의 의미를 다시 설명한다. 성찬은 주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것으로(23절), 그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의식(24-25절)이며 주의 죽으심을 기리는 의식(26절)이다. 따라서 그 떡과 잔을 합당하게 받지 않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27절). 성찬은 그만큼 거룩한 의식이다. 따라서 이 거룩한 의식에 임할 때 우리는 자신을 잘 살펴야 한다(28-29절..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판단"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이는 지난 본문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라는 권면(고전 5:12)과 연결된 내용으로 보인다. 성도는 세상(2절)과 천사(3절)를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도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세상 권세를 찾아갔다(1, 4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말한다(5절). 성도들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이 없어서 세상 사람들을 찾아가는가(5-6절)? 바울은 이것 자체가 "뚜렷한 허물"이라고 말한다(7절). 차라리 조금 억울하더라도 참아내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가해자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가해자들에게도 엄중히 경고한다. 형제 자매에게 불의를 행하고 그들을 속이는 악한..
말의 지혜에 현혹되기 쉬웠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바울은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18절). 이는 이 세상 지혜가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19-20절). 이는 1-2장에서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대조하였던 바울의 메시지와 일치한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강조하는데(21절), 이로부터 고린도 교인들이 각자 자신이 추종하는 전도자를 내세워 자랑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말의 지혜'는 아볼로를 떠올리게 한다. 행 18:24 참조.) 전도자가 누구건 간에 그들은 전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22절). 만물도, 세계도, 생명도, 사망도, 지금 것도, 장래 것도 모두 성도들의 것이다(21-22절).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오늘 본문 역시 사회 정의와 절기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절기법 본문과 그 앞까지의 사회 정의 본문이 정확하게 나누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으로부터, 사회 정의와 절기의 상관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 우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정의는 거짓을 멀리하는 것이요(1절), 다수의 뜻을 맹신하지 않는 것이요(2절),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그가 옳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3, 6절). 정의는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보호하는 것이요(7절), 그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는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이다(8절). 그런데 이 "정의" 본문에서 조금 생뚱맞게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등장한다. 원수가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다면 그걸 돕는 것이 마땅하다(..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온 다음 날, 모세는 백성을 재판하기 위해 앉았다(13절). 이드로는 하루 종일 모세가 재판석에 앉아있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며 묻는다(14절). 모세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아는 사람이 자신 밖에 없으므로 백성들이 자신을 찾아온다고 답한다(15-16절). 이드로는 모세와 백성이 모두 "기력이 쇠하"여질 것이라고 염려한다(17-18절). 날샘은 이것을 우리가 섬기는 모습에 적용시키지만, 난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문을 바라보길 원한다.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 정통한 "선지자"로서 등장한다. 이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신 18:15, 행 3:20-24).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온전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판단에 의존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1절)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로마 교회 안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두고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채소만 먹는 자들과 모든 것을 먹는 자들 사이의 다툼이 있었고(2절),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과 모든 날을 동일하게 보는 자들 사이의 다툼이 있었다(5절). 여기서 바울의 해결책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은 서로 무시하거나 비판하지 말 것을 권면한다. 이는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3-4절). 하나님 앞에 서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행동이 어떻든 다 주를 위하여 하는 것이다.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는 것이고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는 것이다(6절). 따라서 우리는 판단할 수 없다. 각 사람은 하나님..
바울은 본문에서 "신비"를 이야기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일부가 우둔하게 되었고, 결국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다(25-26절).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로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인용한다(26-27절). 인용된 구절은 이사야 59:20로, 바울이 인용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 59:20) 하지만 대의는 같다. 결국 언젠가 이스라엘에 구원이 임할 것이라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방인 독자들에게 유대인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상기시킨다. 복음에 관한 태도만 보면 "원수"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조상 때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
바울은 이스라엘 자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록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게 되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은 아니다(6절). 그 이유는 이스라엘, 즉 야곱의 자손이라고 전부 이스라엘 자손이 아니기 때문이다(6절). 바울은 이를 위해 독자들이 친숙할 만한 예를 든다. 먼저 아브라함을 보라. 그의 후손이라고 전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불리는가? 아니다.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만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7절). 이는 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8-9절). 마찬가지로 이삭을 보라(10절). 그의 자식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 자식들에 대한 약속을 주신다(11-13절). 바울이 이 예를 들어 하고자 하는 말은 명백하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자들은 누가 뭐라..
5절은 지난 본문에서 이어지는 구절이다. 지난 본문에서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롬 2:1) 역시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이야기했다. 회개를 한다 하여도 그것은 내 공로가 아닌데(롬 2:4), 회개조차 하지 않는다면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5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피우며 진노를 쌓고 있다(5절).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려고 함정을 파두신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의로우신 분이다(6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는 각 사람"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설명한다.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생"과 더불어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주어질 것이다(7, 10절).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가 임할 것이요, ..
바울은 스스로를 "빚진 자"로 규정한다(14절). 이는 복음 전파의 의무를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그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대상은 헬라인, 야만인,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등 인간의 분류를 뛰어넘는다(14절). 따라서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15절). 복음은 무엇인가? 복음의 목적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것(16절)으로, 그 내용은 "믿음"과 "의"이다(17절). 바울이 여기서 복음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하자. 지난 큐티와 이어서 생각해 볼 때, 이 본문은 상당히 흥미롭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복음"을 전하고 싶어한다. "교회"가 "복음"을 몰랐던 것인가? 날샘은 로마 교회가 처음엔 복음을 받았지만 핍박 때문에 확신을 잃었기에 다시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