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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의 순교 이후 일어난 박해로 인해 흩어진 자들이 어느새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다(19절). 이들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지만(19절), 그 중 몇 사람이 헬라인들에게 예수를 증거하여(20절) 믿게 하였다(21절). 누가는 여기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라는 표현을 삽입하여 인간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대로 이루어진 일임을 강조한다.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깨달은(행 11:18)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의 헬라인 사역을 위해 바나바를 파송한다(22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으로(24절), 기쁨으로 사역하여(23절) 크게 부흥을 일으켰다. 그는 다소에 가서 사울을 만나(25절) 안디옥으로 데려왔고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마리아로(행 8:5-25), 아소도와 가이사랴로(행 8:40), 룻다와 사론으로(행 9:32-35), 욥바로(행 9:36-42) 퍼져 나갔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내시의 경우(행 8:26-39)를 제외한다면, 이들은 모두 유대인들을 향한 사역이었다. 따라서 이방인 백부장인 고넬료와 그 가족이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행 10:44-48)은 할례자 그리스도인들에게 걸림이 되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오늘 본문은 그에 따른 예루살렘 공의회를 다룬다. 고넬료의 회심 소식을 들은(1절) 예루살렘의 성도들 중 일부는 베드로가 도착하자 그를 비난하였다(2-3절). 베드로는 그들에게 차근차근 일어난 일을 설명한다(4절). 베드로는 먼저 자신이 본 환상을 설명하고(5-10절), 그 때 찾아온..
사울의 회심 과정을 그려낸 사도행전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가 성장하고 있었다는 증언을 덧붙인다(31절). 이어 본문은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에서 펼친 사역을 소개한다. 룻다에서는 중풍으로 8년째 고생하고 있던 애니아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고(32-34절), 이를 본 룻다와 사론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35절). 베드로가 룻다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욥바의 제자들은(38절) 신실한 여제자 다비다(36절)가 죽었음을 베드로에게 알렸다(37절). 베드로는 욥바에 도착하여 이야기를 듣고(39절) 기도하여 다비다를 살려냈다(40, 41절). 이를 본 욥바 사람들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42절). 교회 부흥에 관한 설명 이후 짤막한 에피소드 두 편이 소개되면서 복음이 이스라엘..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파한 빌립(행 8:5-8)에게, "주의 사자"가 유대 남쪽 광야로 향하라는 명을 주신다(26절). 빌립이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27, 28절). 성령께서 빌립에게 수레에 가까이 가라 하셨고(29절), 빌립이 가서 보니 내시가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30절). 내시는 그를 청하여 수레에 함께 앉았다(31절). 내시가 읽고 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32, 33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 있던 청년 사울(행 7:58)은 그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다(1절). 그리고 앞장서서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3절). 박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고(1절) 이들은 도착한 땅에서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다(4절). 이야기의 배경은 이제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옮겨진다. 예수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행 1:8) 가라 하신 말씀의 세 번째 단계가 이른 것이다.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한 사람은 집사 빌립으로(5절), 사마리아 사람들은 축사와 치유 등 표적을 보고 그를 따랐다(6, 7절). 그리고 많은 이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12절). 사마리아에 큰 기쁨이 임했다(8절).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이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
오늘 본문은 집사 제도의 창설과 집사 스데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한 가지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히브리파 유대인들(즉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즉 헬라 문화권에 살던 유대인들)의 차별이 그것이었다(1절). 교회의 구제 사역에서 헬라파 과부들이 수혜를 못 받은 것이다. 열두 사도는 교회 구성원들을 불러 구제를 전담할 사람들을 세우겠다고 선언한다(2-4절). 대신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쓸 것이었다(4절). 그들은 일곱 명의 집사를 세웠고(5절), 사도들은 그들에게 안수한 후 직임을 맡겼다(6절). 교회는 점차 흥왕하였고, 심지어 유대교 제사장들까지 "이 도에 복종"하였다(7절). 일곱 집사 중 하나로 세워진 스데반은 "믿음과 성령..
종교 지도자들에게 위협을 당하고 풀려난 사도들은 교회 공동체로 와서 그 말을 전한다(23절). 공동체는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24절). 그들이 드린 기도를 살펴보자면, 먼저 구약의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임을 분명히 하였고(24-26절) 구약의 예언(시 2:1-2)대로 예수(와 그의 제자들)가 핍박을 당함을 고백하였다(27, 28절). 그들은 그 핍박 속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께서 신유와 표적, 기사를 이루어주시도록 기도하였다(29, 30절). 그러자 그 기도가 응답되었고, 그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31절). (29절은 "μετὰ παρρησίας πάσης λαλεῖν τὸν λόγον σου"라고, ..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의 수는 120명 가량이었다(15절). 베드로는 그들에게 한 가지 안건을 제시한다(15절). 가룟 유다의 죽음(16, 18-20절)으로 인해 생긴 그의 공석(17절)을 누군가로 메우자는 것이었다(21-22절). 그는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으로서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어야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을 천거했고(23절), 함께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유다를 대신할 사람으로 선출하였다(24-26절). 여기서 "사도"의 정의가 다시 한 번 등장한다(25절). 사도는 예수를 직접 보고 그를 따랐으며 그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21-22절). 유다는 본래 사도로 참여하였지..
바울은 '먹는 것'의 문제를 계속 다룬다. 이전 본문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들이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강변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남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23-24절). 비록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다 올바른 것은 아니다. 바울은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준다. "시장에서 파는 것"은 묻지 말고 먹으라(25절). 불신자가 차려 놓은 음식은 묻지 말고 먹으라(27절). 이는 음식은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26절). 하지만 누군가 그것이 제물이라는 것을 지적하다면 먹지 말라(28절). 이는 내 양심이 찔려서가 아니고 남의 양심에 걸림이 될까 우려해서이다(29절).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지난 본문에서 말한 "믿음의 말씀"이 무엇인지 선포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9-10절) 믿고 시인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바울은 앞서(롬 9:33) 인용한 사 28:16을 다시 한 번 인용하여(11절) 믿고 시인하기만 하면 누구나 차별 없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한다(12-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3절) 그 구원의 수혜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 이제 바울은 복음 전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전파하고, 그 전파한 것을..
오늘 본문에는 다분히 종말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면서 본문을 시작하고(1절),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질 "그날"을 마지막으로 언급하며 본문이 끝난다(8절). 이 종말론적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본문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오늘의 주제 구절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이다(2절). 바울은 말씀 전파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견한다. "때"를 못 얻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2절). 가르칠 때는 "오래 참음"이 필요할 것이다(2절). 전도자는 "고난을 받"을 것이다(5절). 어째서 그런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욕심을 따라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기 때문이다(3-4절). 말세가 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에만 골..
@ 겨자씨 학교 독서과제. 슈바이처 박사, 아드니람 저드슨, 토마스 선교사, 언더우드 선교사, ……. 어려서부터 참 많은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형성해 왔다. 특히 그 이미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현지 문화의 기독교화(Christianization)이었다. 바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열등한 현지의 문화를 우월한 기독교로 “계몽”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화나 전설 따위를 믿는 사람들에게 서구식 기독교관을 주입하여 그런 미개한 사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활동 말이다.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갈등과 다툼은 선교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필요하다면 강압적으로라도 서구식 기독교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에는 ..
지난 주에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장을 강해하시면서 제자들이 자신의 친구들을 '전도'한 말은 그저 "와서 보라.(Come, and you will see.)"였다는 말씀을 하셨다. 복잡한 논증을 늘어놓거나 자신의 체험담을 열정적으로 떠드는 대신,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해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전도'를 자꾸 '설득'으로 생각한다. "기독교는 XXX해서 옳아. 그러니까 믿어." "내가 믿어보니까 XXX가 좋더라. 그러니까 믿어." 그런데 성경에 나타나는 전도는 그런 게 아니었지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봐. 그럼 알게 될 거야." 이것이 우리의 올바른 전도 방식 아닐까.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