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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에 누가복음을 보기 시작했으니 이제 석 달 되었다. 오늘부로 12장이 끝나니 정확히 절반이다. 앞으로 석 달 후에는 누가복음도 끝난다는 이야기다. 복음서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작업이다. 예수의 말씀이 이어진다. 예수께서는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49절). 이 표현은 세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며, 알곡을 타작하시면서 나온 쭉정이는 불에 태우실 것(눅 3:16-17)이라고 하신 말씀과 유사하다. 따라서 심판을 선포하신다는 의미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께서는 그 불이 아직 붙지 않았다고 하시는데(49절),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예수께서는 당신이 받을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백성들은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닐까 기대했다(15절). 요한은 그들에게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 오신다고 말했다(16절). 요한이 직접적으로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맥락상 그리스도는 따로 오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요한은 그 분에 대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요(16절)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는 분(17절)이라고 묘사하였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주재이심을 드러낸다. 요한은 복음을 증거(εὐηγγελίζετο)하였다(18절). 앞의 본문을 살펴보건대, 이 "복음"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고 그리스도께서 그 심판을 대행하실 것이라는 내용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봉 왕 헤롯은 요한의 책망을 견디지 못하고(19절) 요한을 하옥하였다(20절). 헤..
티베리우스 15년(1절), 즉 서기 29년경에 세례 요한이 활동을 시작했다(2절). 누가복음의 한 가지 특징은 기사에 구체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오늘 본문에도, 그 당시 유대와 갈릴리 지방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누구였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1-2절). 흥미로운 것 하나는 안나스와 가야바가 둘 다 대제사장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인데, 이들은 장인-사위 관계로(요 18:13) 율법상 한 명만 존재해야 하는 대제사장 자리를 번갈아가며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요한은 요단 강에 와서 "세례"를 전파하였다(3절). 누가는 요한을 이사야에 나오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 예언의 성취로 보고 있다(4-6절). 즉 요한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오실 길이 예비되며 그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요일 5:1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 증언한 요한은,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세상을 이긴다고 선포한다(4절). 그리고 그 승리의 원천은 우리 믿음이다(4절). 사도 요한은 요일 5:1을 적용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고 재차 표현한다(5절). 즉, 예수께서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요, 세상을 이기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사도 요한은 그를 "물과 피로 임하신 이"라고 칭한다(6절). 단순히 물이 아니라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재차 말하는 것으로 보아, 물과 피가 각각 지칭하는 대상이 있는 듯 하다. 요한복음을 참고하여 보면, "물"은 세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요 1:29-3..
경비병들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보고했고(11절), 그들은 거짓 소문을 꾸며내어 퍼뜨리게 했다(12-14절). 그래서 유대인들 사이에는 예수의 제자들이 부활 사건을 꾸며냈다는 소문이 돌았다(15절). 한편, 제자들은 지시대로 갈릴리에 가서 예수를 만났다(16-17절).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지상 명령을 내리신다(18-20절). 이제 마태복음의 대단원이다. 먼저 마태는 유대인 독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헛소문을 바로잡고자 했다. 왜 예수의 제자들이 부활 사건을 꾸며냈다는 소문이 났는가? 이는 경비병들이 사건을 그대로 보고했고(11절), 부활을 감추고자 했던(마 27:63-64) 종교 지도자들이 그들을 매수해(12절) 헛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다(13절). 이들은 심지어 총독의 의심에서 보호해 주겠다는..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요단 강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세례를 받으려 하셨다(13절). 요한은 말렸지만(14절), 의를 이루자는 예수의 말씀에 허락하였다(15절). 그 때 물에서 올라오시는 예수 위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신다(16절). 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언이 들려왔다(17절). 2장 15절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암시했던 마태는 이제 명백하게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기록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17절)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시 2장 15절을 참고하면, 거기서 마태는 호 11:1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을 예수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이 결국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데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고(9-15절), 이어 그것에 기반하여 육체의 규율을 따르는 것이 무의미함을 논증한다(16-23절).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그는 하나님의 성육신이요(9절), 모든 권세의 원천이시다(10절). 우리는 그로 인하여 새로워졌다. 의식적인 할례가 아니라(11절) 세례를 통해 새 삶을 얻었고(12절), 죄사함을 입었다(13-14절). 이제 악한 권세는 무력해졌다(15절). 따라서 더 이상 율법 규정이 우리를 옭아매지 못한다(16-18절). 율법 규정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18-19절).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을 때(12절) 세상의 초등학문 또한 같이 죽었다(20-22절). 이 규정들은 마치 유익..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베푼다. 먼저 그는 하나님께서 외모와 상관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전부 받으시는 분임을 고백한다(34-35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화평의 복음"을 허락하셨는데, 이는 요한의 세례 이후로 온 유대에 퍼진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다(36-37절).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과 능력"이 임하여 유대 각지에서 선한 일을 행하셨고, 이는 제자들이 다 목도한 바였다(38-39절).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고(39절), 하나님은 그를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다(40절). 그는 "미리 택하신 증인" 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셨고(41절), 예수께서 바로 최후의 심판자임을 증언하도록 명하셨다(42절). 이는 선지자들..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파한 빌립(행 8:5-8)에게, "주의 사자"가 유대 남쪽 광야로 향하라는 명을 주신다(26절). 빌립이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27, 28절). 성령께서 빌립에게 수레에 가까이 가라 하셨고(29절), 빌립이 가서 보니 내시가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30절). 내시는 그를 청하여 수레에 함께 앉았다(31절). 내시가 읽고 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32, 33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에 찔려" 회심한다(37절).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구원을 받으라고 권면한다(38-40절). 이 구원의 이치가 적용되는 대상은 유대인들 뿐 아니라 "모든 먼 데 사람"까지이다(39절). 이들은 권면을 받아 세례를 받았고, 3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다(41절). 이어 본문은 초기 교회 공동체의 (이상화된) 모습을 그린다. 공동체는 (1)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2) 교제하며 (3) 떡을 떼었고 (4) 기도했다(42절). 사도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냈고(43절), 교회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공동 생활을 했다(44, 45절). 이들은 주기적으로 성전에서 모임을 가졌고, 집에서는 성찬식/식사 교제를 나눴다(46절)...
수련회로 인해 3일간 큐티를 못했다. 해당 본문인 9장을 가볍게 살펴보자면, 8장 말미에서 스스로의 권리 포기를 선포한 바울이 "먹고 마실 권리"(고전 9:4)를 포기하는 이유를 좀 더 부연하는 대목이다. 그는 복음 전파가 자신의 사명이자 상급이며, 그저 복음이 증거되기만 한다면 자신은 모든 것을 참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10장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짚는다. "조상들"은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1-2절). 또한 광야에서 "신령한 음식"을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3-4절). 이는 애굽을 나와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에서 있었던 일들을 신약 교회의 용어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옛 사람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새 사람을 상징하는 가나안으로 향하면서 홍해를 지났고, 거기서 하나..
11월부터는 고린도전서를 묵상한다. 바울 서신의 기본적인 형태를 따라, 고린도전서는 인삿말(1-3절)과 기도(4-9절)로 시작한다. 먼저 인삿말에서는, 편지의 발신인과 수신인이 언급되며, 간단한 축복 인사가 뒤따라온다. 우선 발신인이 단순히 바울이 아니라 바울과 소스데네로 등장하는 것(1절)에 주목하자. 이 소스데네가 행 18:17의 회당장 소스데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고린도의 회당장이었던 그가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자신이 잘 알고 지내던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함께 쓰고 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이어 수신인으로 고린도 교회와 더불어 "각처에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 언급되는 것(2절)을 볼 때, 바울은 자신의 편지가 회람되기를 기대했던 것 ..
애굽을 떠날 차비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유월절 규정을 내려주신다. 본문은 유월절 규정이 "애굽 땅에서" 주어진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1절). 즉 유월절은 사후에 인간들이 만든 절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재앙 이전에 미리 주신 절기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을 떠난 그 달이 "해의 첫 달"이다(2절). 다른 말로 하자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인 것이다. 이어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14절) "여호와의 유월절"(11절)에 관한 규정이 소개된다. 이 달 10일에 "어린 양"을 취한다(3절). 특이할 점은 개인별로 양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별로 양을 취한다는 점이다(3절). 이는 한 가족을 한 공동체로 보는 성경의 시각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것은 기계적으로 적용될 규정이 아..
본문은 지난 본문에서처럼, "죄가 클수록 은혜가 크다면, 우리는 더 큰 죄를 지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루고 있다. 지난 본문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세례 받을 때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 그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오늘 본문이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은 "죄의 몸이 죽"은 것을 의미한다(6절).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칭의를 받은 존재이다(6-7절). 지난 본문의 마지막 부분(롬 6:4)에서 부활을 언급한 바울은, 그와 함께 연합하여 죽은 자는 그와 함께 연합하여 부활할 것이라고 선포한다(5, 8절). 여기서 바울은 예수를 우리의 모범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자 더 이상 사망이 그를 지배할 수 없었다(9절). 그는 죄에 ..
지난 본문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롬 5:20)고 표현한 바울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되묻는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1절) 죄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은혜를 누린다면, 우리는 더 큰 죄를 지으러 다녀야 하는가? "그럴 수 없느니라!"(2절) 바울은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에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 없다(2절).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3-4절). 이제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장사되었고, 우리는 죄 안에 더 이상 거하지 않는다. 예수와의 연합된 죽음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으로 이어진다(4절). 나는 침례 받은 순간에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 나의 죄악된 본성은 이미 죽었..
바울은 할례 여부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칭의를 얻는 복은 할례로 인한 것인가, 아닌가?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9절)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다시 끌고 온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지 않은 시점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10절). 창세기에 따르면 '칭의' 구절은 창 15:6에 나오는 반면 할례 명령은 창 17:10-11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할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다(11절). 즉 할례가 칭의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칭의의 징표로서 주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이를 근거로 할례와 세례가 같은 의식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법 하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지만.) 따라서 아브라함은 "할례자의 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