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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를 떠나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를 들러(13절)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렀다(14절).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 들어간 그들에게 회당장들이 말씀을 청하자(15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론하였다(16-41절). 오늘은 이 바울의 설교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우리가 점하는 위치를 되돌아 보고자 한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대상으로 설교를 전한다(16, 26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17절) 광야를 거쳐(18절) 가나안으로 이끌어 주셨다(19절). 사사의 통치 기간이 지나고(20절) 사울(21절)과 다윗(22절)이 왕이 되었다. 특별히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고(22절),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에서 구세주 예수가 나게..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베푼다. 먼저 그는 하나님께서 외모와 상관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전부 받으시는 분임을 고백한다(34-35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화평의 복음"을 허락하셨는데, 이는 요한의 세례 이후로 온 유대에 퍼진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다(36-37절).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과 능력"이 임하여 유대 각지에서 선한 일을 행하셨고, 이는 제자들이 다 목도한 바였다(38-39절).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고(39절), 하나님은 그를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다(40절). 그는 "미리 택하신 증인" 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셨고(41절), 예수께서 바로 최후의 심판자임을 증언하도록 명하셨다(42절). 이는 선지자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향하여 이를 갈"았다(54절). 하지만 스데반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그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증언한다(55, 56절). 분노를 참지 못한 유대인들은 그를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인다(57, 58절).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59절)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60절) 두 마디를 남기고 순교한다. 스데반의 순교 장면에서 스데반이 남긴 두 마디는 의미심장하다. 이는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마지막 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차이점이라면 기도..
공회에 끌려나온 사도들은(27절) 대제사장의 힐난(28절)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자신들을 변호한다(29-32절). 공회원들이 분노하고 있을 때(33절) 율법교사 가말리엘이 그들을 진정시켰다(34-39절). 공회원들은 사도들을 채찍질하고 경고한 후 놓아주기로 결정하였고(40절), 사도들은 공회를 나와서도 계속해서 증언을 쉬지 않았다(41, 42절). 분명 유대인들은 예수를 고소하면서 그의 피를 자기에게 돌리라고 말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마 27:25)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대제사장은 자신들이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인다(28절). 그럼에도 사도들은 전혀 개의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는 예수가 죽지 않고 사셨기 때문이며(30절..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교회는 계속해서 부흥한다. 교회의 핵심에는 "주 예수의 부활"에 관한 사도들의 "증언"이 있었고, 거기 뒤따르는 "권능"이 있었다(33절). 이로부터 은혜를 받은 무리는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재산을 공유하였고(32-35절), 그 결과 가난한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다(34절). 본문은 재산을 교회에 헌납한 사람의 예로 바나바를 제시하면서 끝이 난다(36, 37절).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신도의 공동 생활이지만, 그 중심에 사도들의 증언과 권능이 있었음(33절)에 주목해야 한다. 단순히 사람의 힘으로 공동 생활을 하려는 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이 그 핵심에 놓인다면 순수한 의도의 공동 생활이 ..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백성에게 설교하고 있을 때 종교 지도자들이 찾아왔다(1절). 이들은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는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2절) 사도들을 투옥시켰다(3절). 하지만 진리를 들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로 결단했다(4절). 종교 지도자들은 다음날 사도들을 둘러싸고 심문하였고(5-7절),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대답하였다(8절). 병자가 낫게 된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9, 10절).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10절). 베드로는 시 118:22를 인용하여 예수의 부활을 설명하였고(11절), 구원은 오직 예수로부터 온다고 설파하였다(12절). 베드로의 변..
걷지 못하는 자가 온전히 회복되자, 백성들이 놀라며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왔다(11절). 베드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 설교를 베푼다(12절). 베드로는 먼저 이 기적이 자신들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12절). 백성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생명의 주"(13-15절)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났다(13, 15절). 그를 믿는 믿음이 걷지 못하는 자를 일으켜 세웠다(16절). 백성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예수를 죽였지만(17절; 눅 23:34), 이는 사실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것이었다(18절). 따라서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죄를 사해주실 것이다(19절). 그리고 지금 하늘에 있는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만물을 회복"하실 것이다(20, 21절). 모..
이전 본문에서 바울은 옛 사람의 습성대로 살아가는 고린도 교인들을 질책하며(고전 6:8-10)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했다(고전 6:11). 어째서 그런가?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설명한다. 우리의 몸은 이제 성령의 전이다(19절). 예수 그리스도의 "값"으로 산 것이므로 이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20절). 따라서 무엇을 하든 그것은 우리의 자유지만 우리는 그 자유를 스스로 제한한다(12절). 그리고 "주를 위하여" 몸을 사용한다(13절). (바울은 여기서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를 부연하기 위해 14절을 첨언한다. 주가 우리 몸을 위해 계신다는 것은, 우리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께서 먼저 사신 것이 우리의 부활을 예표하는 사건이 된다.) 우리의 몸은 "그..
바울은 새로운 비유를 도입한다. '법'과 '간음'의 비유이다. 법은 그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만 그에게 영향력을 미친다(1절). 따라서 결혼한 부부를 관장하는 법은 둘 중 하나가 사망하는 순간 그 효력을 다한다(2절). 둘 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한 쪽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간음'이 되지만, 한 쪽이 사망한 상태에서 그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상관이 없다(3절). 바울은 이 비유를 사용하여 율법과 우리, 그리고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한다. 본래 우리는 율법에 매여있는 상태였다(5절). 6장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그 상태에서는 "사망"의 열매 밖에 맺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예수로 인하여 우리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4절), 더 이상 율법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한다(6절). 이제 우리는 "다른 ..
본문은 지난 본문에서처럼, "죄가 클수록 은혜가 크다면, 우리는 더 큰 죄를 지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루고 있다. 지난 본문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세례 받을 때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 그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오늘 본문이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은 "죄의 몸이 죽"은 것을 의미한다(6절).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칭의를 받은 존재이다(6-7절). 지난 본문의 마지막 부분(롬 6:4)에서 부활을 언급한 바울은, 그와 함께 연합하여 죽은 자는 그와 함께 연합하여 부활할 것이라고 선포한다(5, 8절). 여기서 바울은 예수를 우리의 모범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자 더 이상 사망이 그를 지배할 수 없었다(9절). 그는 죄에 ..
지난 본문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롬 5:20)고 표현한 바울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되묻는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1절) 죄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은혜를 누린다면, 우리는 더 큰 죄를 지으러 다녀야 하는가? "그럴 수 없느니라!"(2절) 바울은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에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 없다(2절).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3-4절). 이제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장사되었고, 우리는 죄 안에 더 이상 거하지 않는다. 예수와의 연합된 죽음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으로 이어진다(4절). 나는 침례 받은 순간에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 나의 죄악된 본성은 이미 죽었..
바울은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본문의 17절을 읽어야 한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롬 4:16). 이는 그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거라는 예언의 성취였다. 그 예언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였다. 오늘 본문은 이 문장을 부연한다. 아브라함은 그 예언을 믿었다(18절). 하지만 당시 상황은 그 예언의 성취를 "바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18절). 그는 "백..
복음의 능력에 대해 강변한 바울은 이제 진리에 대해 다룬다. 본문은 진리를 저버린 "그들"을 등장시켜 진리를 지키며 사는 삶에 대해 가르침을 베푼다. 특히 씨실과 날실처럼 그들을 고발하는 내용과 진리를 따르는 삶을 권고하는 내용이 교차되고 있음에 주목하자. 그들은 어떠한 자들인가?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비롯한(17절) 이들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는 주장을 펼치며 잘못된 교훈을 따랐다(18절). 이 교훈은 "망령되고 헛된 말"이라 점차 경건에서 멀어지게 하며(16절) 아무런 유익이 없는 "말다툼"만 불러 일으킬 뿐이다(14절). 디모데는 그들을 엄히 명하여 이것을 금하는 한편(14절), 스스로 진리를 따라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15절). 바울은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디모데를 격려..
지난 본문에 이어 바울은 다시 한 번 고난에 대해 동기 부여를 해주려 한다. 특히 지난 본문에 등장한 비유를 풀 수 있는 핵심 구절이 오늘 본문 가운데 등장한다.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10절) 바울이 고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택함 받은 자들이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한편 8-9절에서는 복음의 능력을 이야기한다. 바울이 믿고 있는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다(8절).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소망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God sent His son, they called Him Jesus He came to love, heal, and forgive. He lived and died to buy my pardon, An empty grave is there to prove my Savior lives.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Because He lives, All fear is gone. Because I know He holds the future, And life is worth the living just because He lives. How sweet to hold a newborn baby, And feel the pride and joy he gives. Bu..
37장 전반부에는 유명한 "마른 뼈"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 길지 않으니 전문으로 소개한다. 1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
3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 1:3-4) 이 구절에서 두 가지를 발견했기에 메모해둔다. 1) 우선 이 구절은 '부활'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일전에 예수가 메시아임에 대한 증거라는 글에서 예수가 메시아인 것이 어떻게 확증되었는지를 논한 바 있는데, 본문이 그에 대한 대답으로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겠다. 바울이 부활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 사건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면 김세윤 교수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거니까. 2) 또한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웨인 그루뎀의 26장에서 그리스도의 위격을 논하는데, 특히 인성과 신성이..
김세윤 교수의 3장에서 필자는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인 것을 어떻게 믿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선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 제자들이 그를 메시아로 믿었다는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의 입장을 인용하고 그 입장을 반박한다. 구약이나 당시 유대 문서에는 메시아의 부활 사상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한다. 1) 예수는 삶과 메시지를 통해 자신이 '죽기 위한' 메시아임을 드러냈다. 2)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로써 예수는 자기 성취를 이루었으나 그 죽음이 참된 것인지 알 길은 없다. 3) 예수가 부활했다. 부활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이 예수의 말을 확증한 것이다...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호 6:1-2) 본문에 나오는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예언으로 봐도 괜찮을까? 문맥은 이렇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자 분노한 하나님이 그들을 갈기갈기 찢으셨다(호 5장). 그러자 깨달은 자들이 본문과 같은 말을 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물론 『호세아』의 저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을리가 없으므로,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짧은 기간" 안에 복구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