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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들의 기도 마지막 부분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했고(23-24절) 그 안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렸다(25절).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반역하기에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대적을 보내셨다(26-28절).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등한시했고(29절)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열방에 붙이셨다(30절). 그럼에도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에 그들을 완전 멸하지 않으셨다(31절). 이제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는 동시에(33-35절) 탄원한다(32, 36-37절).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부터 사사기, 그리고 왕정 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하나님의 긍휼/축복과 이스라엘의 배역이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먼저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23절..
느헤미야는 총독 부임 이후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다고 고백한다(14절). 그는 이전 총독들의 가렴주구를 이야기하며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한다(15절). 그는 성벽 공사에 집중했고, 부하들까지 전부 그 일에 투입하였다(16절). 그는 식객들을 대접하기 위해 식료품을 소진했지만 그 외에는 불의를 행하지 않았다(17-18절). 그는 하나님께 이 일을 탄원한다(19절). 오늘 본문은 다소 특이한 자전적 어조로 기록되어 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청원하는 형태를 빌어(19절)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한다. 이는 어쩌면 느헤미야가 부정한 총독이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전임자들의 행태를 고발하며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15절)...
백성들은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며(1절) 먹을 것이 없어(2절) 모든 것을 팔아야 할 지경임을 토로했다(3-5절).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분노하여(6절)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었다(7-8절). 그리고 모든 이자를 없애자고 제안하였다(9-11절). 그들은 제사장들 앞에서 그렇게 행하기로 맹세했다(12-13절).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가 부딪힌 두 번째 난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백성 간의 빈부 격차로,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사이다. 본문 1절은 흥미롭게도 "백성들"과 "유다 사람들"을 구분한다. 8절에서 유다 사람들이 "도로 찾"은 대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 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의 점령 이후 그 땅에 남아 살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호야다는 130세에 세상을 떴고(15절) 유다 왕들의 묘실에 함께 묻혔다(16절). 그 이후 요아스는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다(17-18절).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요아스는 듣지 않았고(19절), 심지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성전 안에서 돌로 쳐 죽이기까지 했다(20-22절). 그 이후 하나님의 섭리대로(24절) 아람 군대가 쳐들어 와 큰 피해를 입혔고(23절), 반란이 일어나 요아스는 목숨을 잃는다(25-26절). 그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오른다(27절). 오늘 본문은 역대기에만 전하는 내용이다. 여호야다는 장수했고(15절), 왕의 묘실에 함께 묻혔는데(16절), 본문은 그 이유로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을 제시한다(16절). 여호야다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여호람은 산당을 세워 우상숭배를 조장하였고(11절), 결국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그의 악행을 꾸짖고(12-13절) 그의 죽음을 예언한다(14-15절). 이윽고 유다 주위 민족들이 유다를 공격했고(16절) 여호람의 재물과 가족을 전부 탈취하였다(17절). 여호람은 창자병으로 인해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18-20절). 본문은 열왕기에는 기록되지 않은 여호람 치세를 다루고 있다. 특히 본문에 엘리야가 등장하는데, 열왕기의 연대표에 따르면 디셉 사람 엘리야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요람)의 치세 전에 승천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왕하 2장), 여호람(요람)은 유다 왕 여호사밧 때 왕이 되었으므로(왕하 3:1; 왕상 22:51을 보면 왕하 1:17은 실수로 보인다) 이 엘리야를 디셉 사람 엘리야와 동치시..
모압, 암몬, 마온이 여호사밧을 공격하러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1-2절). 여호사밧은 유다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3절) 간구하였다(4절). 특별히 여호사밧은 성전(8-9절)과 역사(10-11절)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했다(5-12절). 모든 백성이 그 자리에 함께 했다(13절). 모압, 암몬, 마온 자손들이 연합하여 여호사밧을 공격하기로 했다(1절). 여기서 주석에는 "마온"을 "암몬"이라 하였는데, 히브리어 원문에 암몬이 두 번 기록되었기 때문에 두 번째 암몬 사람을 마온 사람으로 해석한 것 같다. 이들이 정확히 어떤 민족인지는 성경에서 읽어내기 힘들지만, 이스라엘 근처에 있던 가나안 민족 중 하나였던 듯 하다(삿 10:12, 대하 26:7). 다윗이 있던 "엔게디"(삼상 23:29; 24:1)가 ..
여호사밧은 온 이스라엘을 다니며 여호와 신앙을 회복시켰고(4절) 각 성읍마다 재판관을 세워(5절) 하나님 앞의 공평한 판결을 주문하였다(6-7절). 또한 예루살렘엗 사람을 세워 재판을 맡게 한 후(8절) 그들에게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하였다(9-10절). 그리고 조직을 정비하였다(11절). 열왕기에 평행 본문이 따로 등장하지 않는 오늘 본문은 재판 개혁을 그 핵심으로 한다. 4절만은 여호사밧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했다는, 조금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기자는 이 내용과 그 이후 내용이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즉,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공의로운 재판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유다 각지의 재판관들에게(6-7절), 그리고 예루살렘의 재판관들..
아합과 여호사밧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쳐들어간다(28절). 아람 군대가 아합을 잡고자 했기 때문에(30절) 아합은 변장하고 병사들 사이에 숨었다(29절). 아람 군대는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을 아합으로 오인하여 추격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가게 하셨다(31-32절). 아합은 우연히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고(33절) 결국 전장에서 죽는다(34절). 무사히 돌아온 여호사밧에게(1절) 선견자 예후가 찾아와 그의 악행을 꾸짖는 한편 선행을 칭찬하였다(2-3절). 아합은 아람 군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30절) 꾀를 내어 변장하고 병사들 사이에 숨었다(29절). 그리고 그가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으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합은 아람 군대가 여호사밧을 쫓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31절)...
오늘 본문은 성전을 앞에 두고 솔로몬이 올린 기도의 전반부를 수록한다. 평행 구절은 왕상 8:22-36이며, 13절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고는 일부 사소한 수정 외에는 큰 편집이 없다. 13절은, 역시 성전의 구조와 관련된 구절로,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의 비교를 위함으로 보인다.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먼저 솔로몬은 하나님을 찬양하고(14절), 하나님과 다윗이 맺은 언약을 확인한다(15-17절). 15절에서 가리키는 "허락하신 말씀"이 성전을 짓는 것인지 아니면 다윗 자손을 왕으로 세우시는 것인지 조금 모호하나, 성전 이야기는 18절부터 따로 다뤄지는 것을 볼 때 16-17절과 연관지어 솔로몬을 다윗의 뒤를 잇는 왕으로 세우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 같다. 즉 솔로몬은 ..
오늘 본문은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받은 후 다윗이 이스라엘을 평안하게 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먼저 그는 블레셋을 공격했고(1절) 모압을 정복했으며(2절),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 승리를 거두었고(3-4, 7-8절),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 다메섹 아람 사람마저 전부 무찔렀다(5-6절). 이를 지켜본 하맛 왕 도우는 다윗과 화친하였다(9-11절). 또한 에돔 역시 공격하여 정복하였다(12-13절). 다윗은 그를 섬기는 자들과 함께(15-17절) 올바른 통치를 행했다(14절). 먼저 평행 본문인 삼하 8장과 비교해보자. 지명과 인명의 차이를 제외하고 생각하면, 다윗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이 삭제되었고(2절, 삼하 8:2), 전리품인 놋에 대해 추가된 설명이 있다(8절, 삼하 8:8). 그리고 ..
지난 본문에서 이방 나라들이 받을 심판을 선포한 선지자는, 이어 예루살렘이 받을 심판을 선포한다. 언뜻 보면 "그 성읍"(1절)이 니느웨(습 2:13)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하나님"(2절),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5절) 등의 표현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택하신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가리켜 "패역하고 더러운 곳"이자 "포학한" 성읍으로 묘사한다(1절).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2절). 한두 명의 문제가 아니고, "방백들", "재판장들", "선지자들", "제사장들"이 전부 공모하여 하나님을 배반해 버렸다(3-4절). 이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으로 "불의를 행..
지난 본문에서 유다의 우상 숭배를 통렬히 꾸짖으시고 심판을 선포하신 하나님은 이제 "여호와의 날"을 말씀하신다(14절). 그 날은 용사들조차 다 우는 날(14절)이요, 온갖 환난과 어두움이 임하는 날(15-16절)이다. 그 날, 모든 사람들은 고통 당할 것이며(17절) 어떠한 수단으로도 자신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18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주민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포하신다(18절).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하나님은 희망의 가닥을 남겨두신다.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임하기 전에(2절) 모이라(1절). 여기서 "모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기 위한 모임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에게 하나님을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할 때 심판을 면할 수 ..
헤롯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1절) 세례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여겼다(2절). 요한은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질책했는데(4절), 그 때문에 투옥되었다(3절). 헤롯은 무리를 두려워하여 요한을 죽이지 못하고 있었다(5절). 헤롯의 생일 때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고(6절) 그 상으로(7절)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자(8절) 그제서야 요한을 죽였다(9-11절).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께 아뢰었고(12절) 예수께서는 몸을 피하셨다(13절).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과 예수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헤롯은 예수가 행한 일을 듣고 세례 요한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믿었다(1-2절). 그리고 요한이 죽고 난 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께로 왔다(12절). 병행 구절인 막 6:14-29에는 그런 기록이 없음을 생각해보면 흥미로..
보복에 관한 계명도 새롭게 된다.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명령한다(38절). 이 계명을 모세오경에서 찾아보면 총 세 번 등장한다. 그러나 각각의 맥락은 조금씩 다르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은 출애굽기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3-25) 이는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시켰을 때의 배상에 이어 나오는 규정으로, 그 여인이 그 이상의 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규정하고 있다. 다음은 레위기다.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전도자는 인과응보가 세상에서 성립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악인들이 잘 되는 것 같지만(9-12a절),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장수하고 잘 될 것이다(12b-13절). 세상에서는 악인 때문에 벌을 받는 의인이 있고, 의인 때문에 상을 받는 악인이 있다(14절). 따라서 세상을 살 때는 그저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좋다(15절). 하나님의 뜻은 설령 지혜자라 하더라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16-17절). 본문은 전도자가 관찰한 불합리한 사항과 그에 대한 신앙적 대답이 교차하여 등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부분(9-13절)에서, 전도자는 사람을 해롭게 한 악인(9절)의 행위가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는 것에 대해 절망감을 표한다(10절). 결국 그 징벌..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다(13절). 오직 하나님만이 미래를 아시기에, 형통을 즐거워하고 곤고 가운데 반성하는 것이 옳다(14절). 항상 의인이 성공하고 악인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15절). 사람은 지혜와 공의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더라도 망하고(16절), 지혜와 공의를 완전히 무시해도 망한다(17절). 그저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지혜다(18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인간의 유한함에 초점이 맞춰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항할 수 없고(13절), 하나님은 다 아시는 미래도 알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14절). 따라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루하루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옳다. 만약 오늘이 형통하다면 그에 감사하며 기뻐할 것이요, 오늘이 곤고하다면 혹 ..
이제 전도자는 공의와 재주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인간사를 살펴보고 다시 한 번 헛됨을 깨닫는다. 세상의 권세자들은 약자들을 학대하나, 약자들은 위로를 받지 못한다(1절). 그래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고(2절), 죽는 것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3절). 재주가 많은 사람은 이웃의 시기를 받고(4절), 재주가 없는 사람은 혼자 고생하고 만다(5절). 따라서 재주가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6절). 오늘 본문은 다분히 역설적이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고(2절), 죽는 것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은가(3절)? 그렇다면 본문은 자살을 조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재주와 지혜는 정녕 없는 것이 나은가(6절)? 이는 잠언의 가르침과 상충되지 않는가? 이러한 수사법들은 저자의 진의를 표현한다기보다 본래 하려..
기브아 성읍의 불량배들이 레위인이 묵고 있는 집을 둘러싸고 레위인을 요구한다(22절). 집주인인 노인은 이를 만류하였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고(23-24절), 결국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대신 내보내 능욕당하게 한다(25절). 새벽에 풀려난 여인은 레위인이 묵고 있는 집 대문 앞에 쓰려져 죽었고(26절), 아침에 길을 나서려던 레위인에게 발견되었다(27-28절). 그는 여인의 시체를 조각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내며 심판을 촉구한다(29-30절). 아, 이는 정말 비극적인 본문이다. 본문의 내러티브는 천사를 범하려 한 소돔 백성의 이야기(창 19장)과 매우 유사한데, 레위인은 천사에, 노인은 롯에, 그리고 불량배들은 소돔 주민에 대응한다. 이러한 문학 장치를 통해 사사기 기자는 기브아 주민들의 죄가 심히 ..
승승장구하던 아비멜렉은 데베스를 침공한다(50절). 데베스 주민들은 망대로 피신하였고(51절) 과거에 불을 놓아 재미를 본(삿 9:48-49) 아비멜렉은 동일한 방법으로 망대를 불사르려 하였다(52절). 그 순간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던져 아비멜렉의 머리를 깼고(53절), 아비멜렉은 여자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아 자기 조수에게 자신을 찌르라고 명한다(54절). 아비멜렉 군대는 흩어져 버렸다(55절). 성경은 이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해석한다(56-57절). 오늘 본문은 아비멜렉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지혜를 믿었고, 과거에 성공한 적 있는 방법을 다시 써먹으려고 하였다(52절). 하지만 그는 결국 여자의 손에 죽었다(53절). 자신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성경은 ..
아비멜렉이 집권한지 3년이 흐르자(22절),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신한다(23절).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요(23절),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죄를 벌하기 위함이었다(24절). 세겜 사람들은 강도짓을 일삼으며(25절) 가알이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쫓는다(26절). 이들은 아비멜렉을 저주하며(27절) 전쟁을 선포한다(28-29절).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은 모두 무죄한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였고, 양쪽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24절). 그 결과 그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다(23절). 불과 삼년 전에 "그는 우리 형제라"라고 말했던(삿 9:3) 세겜 사람들이 이제는 아비멜렉을 저주한다(27절). 죄를 지은 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