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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4:1-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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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4:1-13

로보스 2016. 9. 16. 21:35

헤롯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1절) 세례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여겼다(2절). 요한은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질책했는데(4절), 그 때문에 투옥되었다(3절). 헤롯은 무리를 두려워하여 요한을 죽이지 못하고 있었다(5절). 헤롯의 생일 때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고(6절) 그 상으로(7절)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자(8절) 그제서야 요한을 죽였다(9-11절).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께 아뢰었고(12절) 예수께서는 몸을 피하셨다(13절).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과 예수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헤롯은 예수가 행한 일을 듣고 세례 요한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믿었다(1-2절). 그리고 요한이 죽고 난 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께로 왔다(12절). 병행 구절인 막 6:14-29에는 그런 기록이 없음을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점이다. 그 함의를 생각해 보자면, 요한의 사역이 예수에게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태는 세례 요한을 예수의 선구자로 그리고 있고(마 3:3, 11-12), 요한이 투옥되었을 때 예수께서 피신하셨음을 기록하고 있다(마 4:12).


예수께서는 요한의 사망 소식 혹은 헤롯의 평가를 "들으시고"(13절) 그 곳, 즉 "고향"(마 13:54) 갈릴리를 떠나셨다. (헤롯 안디바는 갈릴리의 분봉왕이었다.) 이 기록 역시 요한과 예수의 사역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한 번 흥미로운 것은, 마가 역시 동일하게 세례 요한의 사형 기사와 오병이어의 기적 기사를 연속해서 기록했지만 이런 식으로 두 기사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이 사도들을 쉬게 하기 위함이라고 쓰고 있다(막 6:30-31).


마태가 이런 식의 입장을 갖는 것은, 마태복음의 잠재적 독자들이 세례 요한의 사역에 익숙한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세례 요한과 예수의 사역이 서로 경쟁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마태는 이를 부인하며 두 사역은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고 요한의 사역은 예수의 사역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였던 세례 요한의 마지막은 허무했다. 한낱 "소녀"(11절)가 춤을 잘 춘 대가(6-8절)로 그는 목숨을 잃었다(10-11절). 하지만 그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가와 비교할 때) 마태는 헤롯 안디바를 완전한 악인으로 그리고 있는데, 그 악인 앞에서도 하나님의 의를 선포했던 것이다(4절).


세례 요한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 사명은 예수의 사역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그의 사명에 충실한 결과, 그는 예수께 칭찬을 들었다(마 11:7-15; 17:10-13; 21:22-32).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사람 앞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할 수 있는가. 주여, 이 연약한 자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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