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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복음의 요체가 드러난다. 지난 본문까지 율법으로 의로워질 수 없음을 역설한 바울은, 율법 외에 새로운 "의"가 나타났다고 말한다(21절). 이 의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다(22절). 바울은 여기서 죄와 의의 무차별성을 논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율법으로는 의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23절). 하지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분 없이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24절). 하나님은 예수를 "화목제물"로 삼아 인간들의 죄를 간과하셨다(25절). 이는 자신이 길이 참으시고 의로우신 분임을 나타내시는 동시에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게 여기심을 보여주는 것이다(26절). 바울이 여기..
오늘 본문은 다니엘서의 마지막 부분으로, 계시를 받은 다니엘이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결론을 묻고 그 답을 듣는다.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할 것인가(8절)? 이 마지막 때에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사람들도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10절). "지혜 있는 자"는 깨달을 것이고 "악한 자"는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10절). 그리고 본문은 '기다릴 것'을 권면한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12절). 다니엘 역시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명을 받는다(13절). 본문에 따르면, 말세에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고난을 묵묵히 감내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는 것이고, 또다른 한 가지는 고난을 견디지 못해 악의 편에 서는 ..
계속해서 세상사에 대한 예언이 주어지나, 이번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에 조금 더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다. "북방 왕"은 "거룩한 언약"을 거스른다(28절). 그는 자신의 패배(29-30절)를 "거룩한 언약"의 탓으로 돌리며(30절)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31절)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킬 것이다(32절). 비록 이 본문이 역사적으로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가리킬지라도, 악을 따르는 이 세상의 권력자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미워할 것이다. 예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
다니엘이 두려움에 질려 잠이 든 이후, "한 손"이 와서 그를 어루만지고 일으켰다(10-11절). 이 존재가 지난 본문에 나왔던 존재와 동일한 존재인지는 알 수 없다. (날샘은 다른 존재로 보는 듯 하다.) 그는 다니엘에게 말을 시작한다. 그가 온 이유는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되었기 때문이다(12절). 또한 그는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라고 말한다(14절). 이로부터 다니엘의 기도는 9장의 기도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운명을 두고 드렸던 기도였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응답이 지연되었다는 것이다.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한 그 날로 기도는 응답되었다(12절). 하지만 이 존재가 오는 동안 "바사 왕국의 군주"가 그를 막았고,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
본문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상징하는 "작은 뿔"(9절)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하늘 군대"를 공격하고 일부를 정복했고(10절) 하나님을 대적하여 제사를 없애고 성소를 헐었으며(11절)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다(12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통탄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순간,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참혹한 상황은 "이천삼백 주야" 동안만 지속될 것이고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될 것이다(14절). 15-17절은 내일 큐티에서 다루는 것이 나아 보인다. 비록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일지라도, 이를 확장하여 생각해 보면 세상 권세 전반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 권세는 스스로 커지면 교만해져서 하나..
왕의 명령을 거역한 자들에 대한 처벌이 시작된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으로 던져졌다(23절). 얼마나 불이 뜨거웠는지 그들을 붙들고 있던 사람들마저 타죽을 정도였다(22절).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본문은 느부갓네살의 입을 통해 일어난 일을 전한다. 분명 세 사람은 "결박된 채" 불에 떨어졌는데(23절), 이들의 결박이 전부 풀려서 "불 가운데로 다니"고 있었고 아무런 상해를 입지도 않았다(25절). 또한 세 사람을 던졌는데(24절) 네 사람이 불 가운데 거닐고 있었다(25절). 심지어 마지막 사람은 "신들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25절)! 느부갓네살은 그를 천사라고 부른다(단 3:28). 두려워진 느부갓네살은 공손한 태도로 세 친구를 부른다. "지극히..
오늘 본문에는 다분히 종말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면서 본문을 시작하고(1절),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질 "그날"을 마지막으로 언급하며 본문이 끝난다(8절). 이 종말론적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본문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오늘의 주제 구절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이다(2절). 바울은 말씀 전파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견한다. "때"를 못 얻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2절). 가르칠 때는 "오래 참음"이 필요할 것이다(2절). 전도자는 "고난을 받"을 것이다(5절). 어째서 그런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욕심을 따라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기 때문이다(3-4절). 말세가 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에만 골..
지난 본문에 이어 바울은 다시 한 번 고난에 대해 동기 부여를 해주려 한다. 특히 지난 본문에 등장한 비유를 풀 수 있는 핵심 구절이 오늘 본문 가운데 등장한다.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10절) 바울이 고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택함 받은 자들이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한편 8-9절에서는 복음의 능력을 이야기한다. 바울이 믿고 있는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다(8절).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소망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오늘 본문도 1-2절과 3-7절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2절은 어려움 속에 있는 디모데를 격려해주는 부분이고, 3-7절은 "고난"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해주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의 말처럼, 주께서 주신 총명으로 바울이 말하는 의미를 잘 파악하게 되길 기도한다(7절). 우선 전반부를 살펴보자면, 사도 바울은 어려움을 헤치고 나갈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는 개인적인 신앙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고 주문한다(1절). 그냥 강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은혜를 받아 강하게 살라는 것이다. 즉, 개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혜를 받아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공동체의 힘을 빌리는 것이..
어째서 날샘이 본문 구분을 이렇게 해놓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12절은 이전 본문에 붙여 놓는 것이 좀 더 해석을 용이하게 해준다. 따라서 12절은 이전 본문의 맥락에서 해석하도록 하겠다. 12절은 이전 본문에서 논의된 "고난"과 "부끄러움"의 문제를 계속 다룬다. 이전 본문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자면, 복음은 그 자체가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설사 그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처럼 보여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12절에서 바울은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뢰를 이야기한다. 바울은 자신이 누구를 믿는지 알고 있고, 그 분이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신뢰를 지켜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고난 앞에서 당당할 수 있..
디모데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어쩌면 디모데의 영적 아버지인 바울에 대해 사람들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어째서 옥고를 치르고 있는가? 어려움에 처해 있던 디모데에게, 본문의 바울은 용기를 북돋아 준다. 먼저 바울은 자신의 안수가 디모데 안의 하나님의 은사에 불을 붙였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한다(6절). 과거에 디모데가 올바른 신앙 안에 있었을 때 어떠했는가를 돌이켜 보라는 것이다. 그 때를 보면 두려움 대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 있었다(7절).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천명하면서 디모데를 초청한다. 바울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11절).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소명으로 부르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최근 이 구절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한 구 한 구가 정말 기독교 신앙의 정수라는 느낌이 든다. 이 구절을 한 구씩 읽어나가며 묵상한 것을 나누고자 한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위대한 "성육신"을 담고 있는 구절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같은 분(요 1:1)이었으나 스스로를 낮춰 "육신"이 되셨다. 이를 신학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
설교자: 박희원 목사 설교 본문: 다니엘 6:5 5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공격받지 않는다면, 우리가 세상과 같은 편이라고 여겨진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우리 잘못으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세상의 공격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공격은 어떤 것인가? 6장을 보면, 세 명의 총리 중 한 명이었던 다니엘(2절)이 워낙 유능하니 왕이 그에게 모든 국무를 맡기려 한다(3절). 그러자 이를 시기한 주위 신하들이 다니엘을 실각시키려고 한다(4절). 문제는, 다니엘의 행실에는 "아무 그릇됨"도 "아무 허물"도 없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