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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4 묵상 본문

성경

요 1:14 묵상

로보스 2010. 6. 18. 00:32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최근 이 구절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한 구 한 구가 정말 기독교 신앙의 정수라는 느낌이 든다. 이 구절을 한 구씩 읽어나가며 묵상한 것을 나누고자 한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위대한 "성육신"을 담고 있는 구절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같은 분(요 1:1)이었으나 스스로를 낮춰 "육신"이 되셨다. 이를 신학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빌립보서>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신 이유는 자신을 낮추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17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 2:17-18)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우리와 같이 고난을 당하신 분이다. "신"이신 그 분이 우리 인간의 위치로 낮아지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얼마나 큰 감사인가!

2)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분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은 계속해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다(창 28:15, 출 4:12, 신 31:23, 삿 4:9, 삿 6:16, 삼상 3:19, 삼상 10:7, 왕상 1:37, 왕하 18:7 외). 그리고 그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써 "임마누엘"이 완성되었다.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1-23)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 분께서는 영원히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20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b)
찬양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그 빛난 영광 온 하늘 덮고 그 찬송 온 땅 가득해

영광의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 내 곁에 항상 계시는 주님,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3)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우리는 그의 영광을 그저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요한은 자신의 편지 서두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1)
우리는 그 분을 들었고 보았고 만졌다. 기독교 신앙은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것이다. 내 삶 가운데 함께 하시는 그 분, 그 분을 우리는 실재로서 만난다. 2000년 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성인(聖人)이 아니라 "지금 여기 계시는" 그 분으로서.

지금 여기 계시며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
내 삶에 역사하시는 신실한 나의 하나님을 찬양해

- <날 향한 계획> 中 -

4)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영광. 성경에서 참 많이 나오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영광은 어떠한 것인가? 우리는 구약성경의 묘사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영광"이라고 하면 밝은 구름 같은 것이 휘감는 성스러운 장면을 떠올리지만,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신다.
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3-24)
그리스도의 영광은 "십자가의 영광"이었다. <요한복음>은 "영광"이라는 단어를 십자가를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한다(요 7:39, 요 12:16, 요 13:31). 심지어 베드로의 순교에 대해서도 "영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요 21:19). 모순처럼 보이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참혹하게 죽는 것,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늘 보좌 앞에서 그리스도께서 많은 천사들의 경배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도 십자가와 영광은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로 등장한다.
11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 5:11-12)
이 영광의 자리에서, 예수께서는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신다(계 5:6). 그리스도께서는 죽임을 당하셨고, 이로 인해 영광을 받으신다. 그 분의 영광은 인간을 위한 희생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분의 영광을 찬양한다. 그 분의 십자가를 찬양한다.

5)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영광 속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은혜"와 "진리"는 이 구절 바로 뒤에서도 반복된다.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7)
그렇다면 이 은혜는 무엇이고 진리는 무엇인가?

첫째,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바로 은혜다.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여기에선 <로마서>를 인용했지만, 이 "은혜"는 비단 바울 서신 뿐 아니라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인용한 요 1:16에서 이야기하듯, 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 예수 이외에는 이 은혜를 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진리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셨다.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하나님은 진리이시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 인간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따라서 이 진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 예수 이외에는 하나님께로 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그 분의 영광. 그저 엎드려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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