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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교만한 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베푸신 비유이다(9절).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서서 기도하고 있었다(10절). 바리새인은 자신이 죄인이 아님에 감사하며(11절)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자랑했다(12절). 반면 세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다(13절). 예수께서는 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14절).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임이 드러난다. 바리새인은 겉으로 보이는 행위로는 흠 잡을 데 없는 신실한 종교인(12절)이었지만, 그 행위는 그에게 의로움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14절). 반면 세리는 다른 이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지만(cf. 11절), 그가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
지난 본문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 것을 강조한 야고보는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말로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함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14, 17, 20, 26절). 야고보는 여기서 가난한 형제자매를 돌보지 않는 것을 예로 든다(15-16절). 그는 이어 행함 없는 믿음이 얼마나 헛된지 설명하기 위해 신학적인 논증(18-19절)과 아브라함(21-24절) 및 라합(25절)의 예를 제시한다. 야고보는 반복적으로 행함 없는 믿음의 무가치함을 역설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행함 없는 믿음"이 바울의 이신칭의 신학에 꼭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바울이 율법주의를 배격하지만, 동시에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권면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를 떠나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를 들러(13절)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렀다(14절).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 들어간 그들에게 회당장들이 말씀을 청하자(15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론하였다(16-41절). 오늘은 이 바울의 설교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우리가 점하는 위치를 되돌아 보고자 한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대상으로 설교를 전한다(16, 26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17절) 광야를 거쳐(18절) 가나안으로 이끌어 주셨다(19절). 사사의 통치 기간이 지나고(20절) 사울(21절)과 다윗(22절)이 왕이 되었다. 특별히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고(22절),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에서 구세주 예수가 나게..
지난 본문에서 육신의 사람과 영의 사람을 구분하여 영의 사람이 받아야 하는 "고난"에 관해 이야기한 바울은, 이번 본문에서 그 고난의 이유와 보상을 설명하려고 한다. 바울은 먼저 고난과 영광을 대비시켜 선포한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18절) 고난의 이유는 무엇인가? 알 수 없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이 허락하셨기에 우리에게 고난이 주어졌다고 확신한다(20절). 모든 피조물 역시 다 고통을 겪으며(22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19절)까지 허무한 데 굴복하고 있다(20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그 날 모두 피조물도 영광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21절). 뿐만 아니라 영의 사람..
본문은 지난 본문에서처럼, "죄가 클수록 은혜가 크다면, 우리는 더 큰 죄를 지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루고 있다. 지난 본문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세례 받을 때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 그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오늘 본문이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은 "죄의 몸이 죽"은 것을 의미한다(6절).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칭의를 받은 존재이다(6-7절). 지난 본문의 마지막 부분(롬 6:4)에서 부활을 언급한 바울은, 그와 함께 연합하여 죽은 자는 그와 함께 연합하여 부활할 것이라고 선포한다(5, 8절). 여기서 바울은 예수를 우리의 모범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자 더 이상 사망이 그를 지배할 수 없었다(9절). 그는 죄에 ..
본문에서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는 주장(롬 5:14)을 부연하고 있다. 본문은 이전 본문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이전 본문에 대한 묵상을 참고하여 함께 살펴보길 원한다. 우선 바울은 18-19절에서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사성을 문학적 반복으로 표현한다. 한 범죄로 많은 이들이 정죄에 이르렀고 한 의로운 행위로 많은 이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점(18절)과,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들이 죄인이 되었고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들이 의인이 되었다는 점(19절)이다. 지난 본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건대 아담의 범죄로 많은 이들이 정죄를 받게 되었다는 것은, 아담의 후손들이 선조의 죄악 때문에 정죄를 받았다는 의미보다 아담이 최초로 죄..
지난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논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아담, 모세와 비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적 의미를 설명한다. 이 부분은 조직신학의 죄론과 구원론을 따지는 데 중요한 부분이므로 조금 자세히 살펴볼까 한다. 우선 아담은 어떤 존재인가? 죄를 세상에 들여온 존재이다(12절). 그가 죄를 지었기에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고(12절), 이 사망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지배하였다(14절). 이를 죄의 유전 개념으로 쉽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바울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바울이 본문에서 죄의 유전 개념을 옹호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12절). 차라리 14절은 율법과의 관계에서 이해하는 것이 ..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의 부연 설명을 담당한다. 어제 본문의 주제문은 1-2절로, 칭의를 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은혜에 들어가 영광 속에서 즐거움을 누릴 것을 선포한다. 동일한 표현들이 오늘 본문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우선 본문 7-8절은 5-6절에서 이야기하는 바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드러났다는 것을 보강한다. 남을 위하여 죽는 것은 쉽지 않다. 설사 의인이나 선인을 위하여 죽는 것이라 해도 그렇다(7절).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다(8절).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무엇보다 십자가를 통해 가장 확실하게 증명된다. 예수의 죽으심 덕분에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그 결과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9절). 이제..
본문은 칭의의 결과에 대해서 설명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다(1절). 그렇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주어지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1절). 또한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되었다(2절). 이 모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1절).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순간,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본래 원수였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이 선포된다(롬 5:10, 골 1:21-22). 저주에 빠져있던 우리가 은혜로 옮겨지고, 천박한 우리가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은 우리가 받은 축복이 세상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게 된다..
바울은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본문의 17절을 읽어야 한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롬 4:16). 이는 그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거라는 예언의 성취였다. 그 예언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였다. 오늘 본문은 이 문장을 부연한다. 아브라함은 그 예언을 믿었다(18절). 하지만 당시 상황은 그 예언의 성취를 "바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18절). 그는 "백..
바울은 할례 여부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칭의를 얻는 복은 할례로 인한 것인가, 아닌가?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9절)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다시 끌고 온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지 않은 시점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10절). 창세기에 따르면 '칭의' 구절은 창 15:6에 나오는 반면 할례 명령은 창 17:10-11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할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다(11절). 즉 할례가 칭의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칭의의 징표로서 주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이를 근거로 할례와 세례가 같은 의식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법 하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지만.) 따라서 아브라함은 "할례자의 조상"(..
지난 본문에서 율법과 칭의에 대해, 그리고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해 논한 바울은, 이제 조상 아브라함을 언급하며 자신의 논지를 보강한다. 아브라함은 "육신으로" 무엇을 얻었는가(1절)? 그가 행위로 얻은 것이 있는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있는가? 없다(2절)!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3절) 바울은 아브라함의 경우도 믿음을 통해 칭의를 얻었음을 역설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바울은 동일한 구절을 갈라디아서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언급한다(갈 3:6). 흥미로운 것은 로마서와 반대되는 논지를 펼치는 것으로 종종 인용되는 야고보서에서도 동일한 구절을 언급한다는 것이다(약 2:23). 이 두 컨텍스트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수 ..
복음의 요체를 설명한 바울은,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아무런 자랑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역설한다.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 없느니라"(27절) 그 누구도 자신이 착한 사람이어서, 자신이 선한 행동을 해서 의로워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바울의 예상 독자는 유대인으로 보인다. 바울은 복음을 다시 설명하면서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라 하여 무조건 더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칭의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28절). 이 믿음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29-30절). 31절은 이후 로마서 4장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독자들의 반박을 예상하여 그에 대한 답을 하는 부분이다. 믿음이 칭의의 전제 조건이라면, 이제 율법은 "파기"된 것인가..
오늘 본문에는 복음의 요체가 드러난다. 지난 본문까지 율법으로 의로워질 수 없음을 역설한 바울은, 율법 외에 새로운 "의"가 나타났다고 말한다(21절). 이 의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다(22절). 바울은 여기서 죄와 의의 무차별성을 논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율법으로는 의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23절). 하지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분 없이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24절). 하나님은 예수를 "화목제물"로 삼아 인간들의 죄를 간과하셨다(25절). 이는 자신이 길이 참으시고 의로우신 분임을 나타내시는 동시에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게 여기심을 보여주는 것이다(26절). 바울이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