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진노 (11)
Lovos credit
오늘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살펴 본다. 아닥사스다가 조서를 내렸다는 말이 따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맥락상 에스라의 요청에 따라(스 7:6) 아닥사스다가 성전 공사를 돕기 위해 쓴 것으로 보인다(11절). 조서는 먼저 발신인과 수신인을 밝히고 있는데, 발신인은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요, 수신인은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이다(12절). 수신인을 이처럼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이는 에스라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준다. 아닥사스다는 페르시아에 잡혀온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에스라와 함께 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함께 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한편(13절), 페르시아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에스라의 임무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는 것으로 규정한다(14절). 그런데 그 형편을..
헌금함에서 무리는 율법책을 발견하고(14절) 사반을 통해(15-17절) 왕에게 전달하였다(18절). 왕은 옷을 찢고(19절) 선지자에게 물으라는 명을 내린다(20-21절). 무리는 여선지자 훌다에게 가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22절) 훌다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재앙(23-25절)과 더불어 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26-28절)을 선포한다. 요시야는 장로들을 모아(29절) 성전에 올라간 뒤 율법을 백성 앞에서 선포하고 함께 지킬 것을 서약했다(30-33절).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왕하 22:8-23:3과 거의 문자적으로 겹친다. 약간의 편집은 보이지만, 역대기 기자의 특별한 의도가 보일 만큼 그 의도가 분명하지는 않다. 따라서 본문의 내용에 좀 더 집중하여 묵상을 하고자 한다. 힐기야는 "모세가 전한 ..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자 하나님께 기도했고 응답을 받았다(24절). 그 이후 그가 교만해져서 은혜를 보답하지 않자 하나님께서 진노를 내리려 하셨으나(25절) 그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회개하자 그의 생전에는 진노가 내리지 않았다(26절). 히스기야는 많은 부를 누렸고(27-29절), 큰 공사를 벌였다(30절).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를 방문했을 때는 하나님이 그를 시험하셨다(31절). 히스기야는 세상을 떠나고(32-33절), 므낫세가 그 뒤를 이어 왕이 된다(33절). 오늘 본문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24절은 왕하 20:1-11과 사 38장을 한 절에 요약했고, 31절은 왕하 20:12-19와 사 39장을 한 절에 요약한다. 그리고 열왕기와 이사야의 내러티브에 비해 상당히 횡설수설하는 느낌이..
25세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1절)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2절). 그는 먼저 성전 문들을 수리하고(3절) 레위인들을 모았다(4절).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자신과 성전을 성결하게 하라고 명한다(5-11절). 레위인들(12-14절)은 왕의 명을 따라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였다(15-19절). 본문 1-2절이 왕하 18:2-3와 겹치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본문은 역대기에만 전한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2절)으로, 오늘 본문은 그 중 성전 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모아(3절) 그들에게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성전을 성결하게 하라고 명한다(5절). 그는 하나님을 버린 조상들(6절)이 성전과 제사를 멸시한 결과(7절) 하나님의 ..
왕위에 오른 아하스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다(1절). 그는 우상을 섬기면서 악행을 저질렀다(2-4절). 하나님은 그를 아람과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셔서 패하게 하셨다(5-7절). 이스라엘은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 사마리아로 데려갔는데(8절) 선지자 오뎃이 그것을 꾸짖자(9-11절) 몇몇 우두머리가 그 말에 순종하여 포로를 풀어 주었다(12-15절). 본문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부분(1-7절)은 아하스의 치세를 기록한 부분이고, 두 번째 부분(8-15절)은 이스라엘이 유다에 승리를 거두고 행한 일을 기록한 부분이다. 1-4절은 왕하 16:2-4에 대응하고, 5절은 왕하 16:5에 대응하는데, 역대기 기자가 옮기면서 강조한 것들이 눈에 띈다. 우선 아하스의 악행은, 분명 열왕기..
여호야다는 130세에 세상을 떴고(15절) 유다 왕들의 묘실에 함께 묻혔다(16절). 그 이후 요아스는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다(17-18절).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요아스는 듣지 않았고(19절), 심지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성전 안에서 돌로 쳐 죽이기까지 했다(20-22절). 그 이후 하나님의 섭리대로(24절) 아람 군대가 쳐들어 와 큰 피해를 입혔고(23절), 반란이 일어나 요아스는 목숨을 잃는다(25-26절). 그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오른다(27절). 오늘 본문은 역대기에만 전하는 내용이다. 여호야다는 장수했고(15절), 왕의 묘실에 함께 묻혔는데(16절), 본문은 그 이유로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을 제시한다(16절). 여호야다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지난 본문에서 이방 나라들이 받을 심판을 선포한 선지자는, 이어 예루살렘이 받을 심판을 선포한다. 언뜻 보면 "그 성읍"(1절)이 니느웨(습 2:13)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하나님"(2절),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5절) 등의 표현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택하신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가리켜 "패역하고 더러운 곳"이자 "포학한" 성읍으로 묘사한다(1절).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2절). 한두 명의 문제가 아니고, "방백들", "재판장들", "선지자들", "제사장들"이 전부 공모하여 하나님을 배반해 버렸다(3-4절). 이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으로 "불의를 행..
지난 본문에서 유다의 우상 숭배를 통렬히 꾸짖으시고 심판을 선포하신 하나님은 이제 "여호와의 날"을 말씀하신다(14절). 그 날은 용사들조차 다 우는 날(14절)이요, 온갖 환난과 어두움이 임하는 날(15-16절)이다. 그 날, 모든 사람들은 고통 당할 것이며(17절) 어떠한 수단으로도 자신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18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주민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포하신다(18절).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하나님은 희망의 가닥을 남겨두신다.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임하기 전에(2절) 모이라(1절). 여기서 "모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기 위한 모임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에게 하나님을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할 때 심판을 면할 수 ..
사사는 이스라엘이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세우사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신 자들이었다(18절). 하지만 사사가 죽으면 이스라엘은 바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다(19절).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어긴 자들에게 진노하셔서(20절) 가나안 이방 민족들을 머무르게 두셨다(21, 23절). 이는 이스라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22절). 오늘은 시험의 목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은 여기서 이방 민족들을 남겨두신 것(21, 23절)에 대해 두 가지 의미를 주신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긴 것에 대한 징벌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18절) 계속해서 하나님을 버렸고(19절),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다(20, 21절). 또 한 가지 의미는 이..
전투 준비를 마친 이스라엘은 요단 동쪽 땅에 비느하스를 대표로 하는 사절단을 보낸다(13절). 이 사절단은 각 지파에서 "가문의 수령"을 뽑아 구성한 사절단이었다(14절). 이들은 길르앗 땅에 도착하여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메시지를 전한다(15-20절). 이들이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16, 19절)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하여 "브올의 죄악"(17절)과 아간의 범죄(20절)를 인용한다. 브올의 죄악은 아마 이방 여인들과 음행하면서 이방 신을 섬긴 사건(민 25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땅을 나눠줄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19절).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은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특별히 이들이 제시한 예들은 공동체 내의 일부가 범한 죄악이 공동..
지난 본문에서 하나님이 그 뜻대로 선택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 뜻대로 선택한 자를 완악하게 만드신다는 것을 논한 바울은, 예상되는 반론을 제시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19절) 하나님이 그 뜻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면, 악역을 맡은 사람의 죄 역시 하나님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어려운 질문에 직면한 바울은 그 답을 하나님의 주권에서 찾는다. 토기장이가 마음대로 그릇을 만들듯이(21절), 하나님 역시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을 마음대로 지으실 권한이 있다(20, 22-23절).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어라 항변하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이런 논변을 전개하는 이유를 잘 살펴야 한다. 바울은 진노의 그릇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