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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본문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롬 5:20)고 표현한 바울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되묻는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1절) 죄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은혜를 누린다면, 우리는 더 큰 죄를 지으러 다녀야 하는가? "그럴 수 없느니라!"(2절) 바울은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에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 없다(2절).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3-4절). 이제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장사되었고, 우리는 죄 안에 더 이상 거하지 않는다. 예수와의 연합된 죽음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으로 이어진다(4절). 나는 침례 받은 순간에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 나의 죄악된 본성은 이미 죽었..
본문에서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는 주장(롬 5:14)을 부연하고 있다. 본문은 이전 본문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이전 본문에 대한 묵상을 참고하여 함께 살펴보길 원한다. 우선 바울은 18-19절에서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사성을 문학적 반복으로 표현한다. 한 범죄로 많은 이들이 정죄에 이르렀고 한 의로운 행위로 많은 이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점(18절)과,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들이 죄인이 되었고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들이 의인이 되었다는 점(19절)이다. 지난 본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건대 아담의 범죄로 많은 이들이 정죄를 받게 되었다는 것은, 아담의 후손들이 선조의 죄악 때문에 정죄를 받았다는 의미보다 아담이 최초로 죄..
지난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논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아담, 모세와 비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적 의미를 설명한다. 이 부분은 조직신학의 죄론과 구원론을 따지는 데 중요한 부분이므로 조금 자세히 살펴볼까 한다. 우선 아담은 어떤 존재인가? 죄를 세상에 들여온 존재이다(12절). 그가 죄를 지었기에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고(12절), 이 사망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지배하였다(14절). 이를 죄의 유전 개념으로 쉽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바울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바울이 본문에서 죄의 유전 개념을 옹호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12절). 차라리 14절은 율법과의 관계에서 이해하는 것이 ..
본문은 칭의의 결과에 대해서 설명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다(1절). 그렇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주어지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1절). 또한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되었다(2절). 이 모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1절).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순간,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본래 원수였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이 선포된다(롬 5:10, 골 1:21-22). 저주에 빠져있던 우리가 은혜로 옮겨지고, 천박한 우리가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은 우리가 받은 축복이 세상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게 된다..
지난 본문에서 율법과 칭의에 대해, 그리고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해 논한 바울은, 이제 조상 아브라함을 언급하며 자신의 논지를 보강한다. 아브라함은 "육신으로" 무엇을 얻었는가(1절)? 그가 행위로 얻은 것이 있는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있는가? 없다(2절)!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3절) 바울은 아브라함의 경우도 믿음을 통해 칭의를 얻었음을 역설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바울은 동일한 구절을 갈라디아서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언급한다(갈 3:6). 흥미로운 것은 로마서와 반대되는 논지를 펼치는 것으로 종종 인용되는 야고보서에서도 동일한 구절을 언급한다는 것이다(약 2:23). 이 두 컨텍스트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수 ..
복음의 요체를 설명한 바울은,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아무런 자랑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역설한다.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 없느니라"(27절) 그 누구도 자신이 착한 사람이어서, 자신이 선한 행동을 해서 의로워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바울의 예상 독자는 유대인으로 보인다. 바울은 복음을 다시 설명하면서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라 하여 무조건 더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칭의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28절). 이 믿음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29-30절). 31절은 이후 로마서 4장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독자들의 반박을 예상하여 그에 대한 답을 하는 부분이다. 믿음이 칭의의 전제 조건이라면, 이제 율법은 "파기"된 것인가..
이 애 이 애 걱정 마라 나도 같이 쓸어주마 나 위해 쓸자는 그 방 내가 쓸어 너를 주고 닦다가 닳아질 네 맘 내 닦아주마 쓸지 닦지 하던 마음 그것조차 맘뿐이고 님이 손수 쓸으시고 나까지도 앉으라시니 내 자랑이라곤 없소이다 참 없소이다 함석헌 선생의 시 의 일부. 김기석 목사님의 를 읽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위 시를 마주하게 되었다. 쿵,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귀하디 귀한 님을 맞이하려고 쓸고 닦고 하지만, 채비를 채 차리기도 전에 님이 오셨다. 준비 안 된 어수선한 광경을 보시며 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친히 비를 드신다. 난 곁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님은 청소를 마치시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시며 내게 앉으라고 권하신다. 부끄럽다. ..
난 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받고 갑니다 눈물 닦아주러 왔을 뿐인데 내 눈물만 흘리고 갑니다 씻어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씻겨졌습니다 고쳐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치료되어 갑니다 전하러 왔는데 이미 이곳에 계신 예수를 보고 갑니다 꿈을 가지고 와 꿈을 보고 돌아갑니다 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다만 다함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죠 사랑하러 왔는데 더 큰 사랑을 받고 돌아갑니다 죽은 영혼 살리러 와 내가 살아서 갑니다 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더 주를 사랑하지 못하니 미안합니다 유은성 새 앨범의 타이틀 곡. 이번 여름 연인팀과 함께 하면서 느낀 점들이 잘 녹아 담긴 곡이다. 특히 "전하러 왔는데 이미 이곳에 계신 예수를 보고 갑니다" 가사를 들으면서 눈물이 왈칵 났다. 그래, 그 땅에는 이미..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최근 이 구절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한 구 한 구가 정말 기독교 신앙의 정수라는 느낌이 든다. 이 구절을 한 구씩 읽어나가며 묵상한 것을 나누고자 한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위대한 "성육신"을 담고 있는 구절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같은 분(요 1:1)이었으나 스스로를 낮춰 "육신"이 되셨다. 이를 신학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
나의 믿음 주께 있네 십자가 능력이 내 영광 되었네 주께서 우리를 승리케 하시니 나의 능력 나의 소망 주께 있네 오늘 대학부 예배 시간에 부른 곡. "십자가 능력이 내 영광"이라는 가사가 마음을 울린다. 이 찬양을 하기 직전에 나의 믿음이 부족하다며 한탄하고 있었기에 더욱 깊이 가슴에 새겨졌다. "주께서 우리를 승리케 하셨다." 아무리 내가 부족하다 해도 주님이 이미 승리하셨기에 그걸 믿고 나아간다. 사실 이거 꽤 오래된 곡이다. 전하세 예수 11집에 실렸던 곡이고,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In Christ Alone"이라는 곡의 일부를 떼어내서 번역한 곡이다. In Christ alone will I glory Though I could pride myself in battles won For I..
어제는 추수감사절이었다. 대예배에서 기도를 하는데, 문득 나는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왜 이렇게 무능한 건지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확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 고생 없이 편하게 신앙생활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생은 좀 해도 신비한 체험을 하며 주님을 만나는데, 나는 왜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저 고생만 하고 있는 걸까 싶더라. 그런데 그 순간 마음에 떠오른 말씀이 있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이 말씀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내가 절망적인 죄인일 때에 나를 위해 죽으셨고(롬 5:8),..
어찌하여야 그 크신 은혜 갚으리 무슨 말로써 그 사랑 참 감사하리요 하늘의 천군 천사라도 나의 마음 모르리라 나 이제 새 소망이 있음은 주님의 은혜라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께 영광 날 사랑하신 주 그 피로 날 구했네 죄에서 건지셨네 하나님께 영광 날 사랑하신 주 바치리라 모두 나의 일생을 당신께 세상 영광 명예도 갈보리로 돌려보내리 그 피로 날 구했네 죄에서 건지셨네 하나님께 영광 날 사랑하신 주 이번 주 대예배에서 헌금송으로 나온 곡. 부르시는 분이 정말 마음을 다해 부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세 번 반복하는 부분에서는, 참 별거 아닌 가사인데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이 쓰신 에 보면, '찬양'은 어떤 업적에 대해 돌리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