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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자(눅 16:13),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비웃었다(14절). 이들은 아마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오늘날도 비슷한 종교 장사꾼들이 있다. 예수께서 친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건만, 재물을 추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라는 식으로 사기를 치는 자들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꾸짖으신다. 그들은 사람 앞에서 의로운 척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바 그들의 마음은 타락해 있었다(15절). 예수께서 이어 율법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는 아마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집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례 요한 때까지는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성경이 유일한 권위였지만, "그 후부터는..
누가복음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확실히 청자를 구분한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1절). 먼저 나오는 이야기는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이다. 그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 것이 들통나(1절) 곧 해직 당할 위기에 처했다(2절). 그는 잔꾀를 부려(3-4절)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모았다(5절). 그리고 그들의 차용 증서를 조작하여 빚을 줄여 주었다(6-7절). 주인은 이 일을 두고 칭찬하였다(8절). 예수께서는 이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시고(9절),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된 법이니(10절)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는 자가 참된 것에 충성할 것이고(11절) 남의 것에 충성하는 자가 더 큰 것에 충성할 것(12절)이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하지만 중요한..
이제 장면이 전환된다.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가는 길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도를 가르치신다(25절). 굳이 수많은 무리가 함께 했음을 언급한 것은, 흔히 하는 해석대로 제자와 무리를 분리해서 보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참된 제자가 많지 않기에,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르치신 것이다. 먼저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욕망들을 버려야 했다. 예수께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는 물론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26절), 이를 두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삶으로 다시 표현하신다(27절). 그리고 33절에서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제자가 될 수 있다고까지 하신다. 이는 결국 세상적인 욕망..
예수께서는 이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22절). 오늘 본문은 앞서 재물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신 설교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 동일한 설교가 마태복음 6장에도 나오지만, 다소 맥락이 다르다. 누가는 동일한 설교에 다른 맥락을 부여하여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22절). 이는 생명이 그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23절). 예수께서는 까마귀(25절)와 백합화(27-28절)의 비유를 들어 고민하지 않는 피조물들도 하나님께서 다 먹이고 입히신다고 말씀하신다. 고민한다고 키가 늘어나는가(25절)? 그조차 못하면서 무엇을 염려하는가(26절)?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바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 말라는 교훈을 ..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예수께 유산을 나누는 문제를 여쭈었다(13절). 예수께서는 당신이 재판장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14절)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다(15절).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지난 본문과는 달리 본문은 "그들", 즉 무리에게 이르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달려있지 않다고 하시는데, 이는 즉 소유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으로 볼 수 있다. 이 가르침을 조금 더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비유를 하나 드신다. 풍성한 수확을 거둔 부자가(16절) 곡식을 쌓을 곳이 없자(17절)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짓겠다고 계획한다(18절). 그러면서 영혼에게 재물이 많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고 한다(19절).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그 ..
사도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선언한다(14절). 따라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직 사망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14절), 심지어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것과 같다(15절). 살인자 안에서 영생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14절은 다소 해석이 필요한데, 요한일서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cf. 요일 5:13). 도리어 이 구절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자가 나타낼 모습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 하다. 즉,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는 자연스레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인용하여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아는 자라면 마찬가지로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게 된다고까지 말한다(16절). 이는 요 15..
오늘 본문은 짤막하게 제사에서 돌아온 솔로몬(13절)이 누린 영화를 소개한다. 솔로몬은 많은 수의 병거와 마병을 거느렸고(14절), 각종 귀한 재료를 예루살렘에 널리 융통하였으며(15절) 최고급 말과 최고급 병거를 사용하였다(16-17절). 본문의 평행 구절은 왕상 10:26-29이다. 앞선 본문의 평행 구절이 왕상 3장임을 고려하면, 역대기 기자가 의도적으로 순서를 편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후 역대기는 다시 왕상 5장부터 시작하여 왕상 11장까지 거의 순서대로 따라간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왕상 3장 후반부터 4장까지의 내용을 대체하는 내용으로 선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왕상 3장 후반부터 4장에는 유명한 두 과부 재판 에피소드(왕상 3:16-28), 솔로몬의 신하 명단(왕상 4:1-..
오늘 본문부터는 구조가 조금 불명확하다. 그래서 조금 길게 끊어서 묵상해보려 한다. 우선 본문의 주제문은 19-20절로 보인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이다. 이는 내가 마음을 두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21절). 예수께서는 땅에 마음을 둘 필요가 없음을 한참 설명하시고(25-32절), 하늘에 마음을 두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간단하게 요약하신다(33절). 본문을 관통하는 한 가지 사상은 하늘과 땅의 강렬한 대비이다. 땅의 보물은 상하거나 도둑 맞을 염려가 있지만(19절) 하늘의 보물은 누구도 훔쳐갈 수 없다(20절). 땅의 삶은 재물을 섬기는 것이요, 하늘의 삶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 둘은 양립 불가능하다(24절).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결국 의식주를..
전도자는 행복과 불행에 관해 가르친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 중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권한다(18절). 재물과 부요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부터 누리는 행복이 하나님의 선물이다(19-20절). 반대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1절). 재물이 많더라도(2절), 장수를 누리더라도(3-6절), 그 가운데서 만족하지 못한다면 불행하다. 전도서의 중심 주제가 다시 등장한다. 매일매일 먹고 마시며 일하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라(18절). 이미 헛되다고 평가한 재물조차도, 그것을 누릴 줄 알고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줄 안다면 "하나님의 선물"이 될 수 있다(19절). 즉, 행복이 목적이 된다면 다른 모든 것들(부귀, 명예, 권세 등)은 도구로..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뉜다. 불의한 세상에 대한 잠언(8-9절)과 물욕에 대한 가르침(10-17절)이다. 불의한 세상에 대해, 전도자는 불의한 자들을 판단하는 분이 계시다며(8절) 최종적인 심판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인간이 먹을 것 앞에서 평등하다(9절)는 주제를 징검다리 삼아 물욕 이야기로 넘어간다. 물욕을 가진 자는 자족하지 못한다(10-13절).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하는 재물로 인해 평생 고생만 하게 될 것이다(14-17절). 전반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지난 본문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인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세상의 불의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다. "빈민을 학대"하고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자들은 결국 그들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기 때..
전도자는 즐거움와 웃음 역시 헛된 것임을 고백한다(1-2절). 그는 지혜롭고 풍요롭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사업을 크게 벌이기도 했고(3-8절), 그 결과로 자신의 욕망을 원하는 대로 충족시켰지만(9-10절), 그 역시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다(11절). 오늘 본문은 '행복'의 헛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의 행복이 최고로 추구할 가치라는 세상의 메시지 앞에서, 전도자는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되묻는다(2절). 이는 결과적으로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기 때문이다(11절). 그는 행복하기 위해 사업을 크게 해보았다(3-4절). 그 결과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싶어하는 부를 누릴 수 있었다(9절). 본문의 구체적인 묘사(4-8절)는 그 '부'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4장 마지막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의 공동 생활에 대해 언급한 본문은, 이어 벌어진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소유를 팔아 일부를 감추고 일부를 공동체에 헌납했다(1, 2절). 베드로는 아나니아를 꾸짖었고(3, 4절) 그는 베드로 앞에서 그대로 쓰러져 죽어버렸다(5, 6절). 그 아내 삽비라 역시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7, 8절) 즉시 저주를 받아 죽었다(9, 10절).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11절).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왜 죽었을까? 본문에서 굳이 그들의 죄를 찾아본다면, 우선 (그 형벌이 합당한지의 문제는 차치하고) 삽비라는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하다(8절). 그래서 "주의 영을 시험"했다는 정죄를 받는다(9절). 하지만 아나니아가 죽은 이유는 분명..
오늘 본문은 도둑질에 대한 규례를 다루고 있다. 이는 여덟째 계명 "도둑질하지 말라"(출 20:15)의 시행 세칙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원칙은 도둑질한 물건은 그에 몇 배를 더해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다(1, 4절). 만약 갚을 방법이 없다면 자기 몸을 종으로 팔아서라도 갚아야 했다(3절). 도둑을 죽이는 행위는 정당방위로 인정되었으나(2절) 해가 난 이후에는 살인죄가 적용되었다(3절). 이는 억울하게 도둑의 누명을 쓰고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를 죽이려고 기회를 엿보다가 죽인 후에 피살자가 도둑질을 하려 했다고 주장하는 악인들이 있지 않았을까?) 도둑질은 아니지만 이웃의 재산에 의도적으로 손해를 끼친 사람, 즉 자기 가축을 남의 밭에서 먹게 한 사람(5절)이나 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