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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본문에서 적그리스도를 경계한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붙들라고 권면한다(24절). 즉,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처음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가르침을 견지하라는 의미이다.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이 사람 안에 거하면 그는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4절). 그리고 그것은 곧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이다(25절). 이 언어는 다소 요한복음의 언어를 연상시키는데, 특히 예수의 고별 설교(14-16장)가 떠오른다. 거기서도 예수의 "말"이 제자들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이 구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요 15:7)이 나온다. 요한이 이것을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쓰는 이유는 그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26절). 지난 본문의 "적그리스도"들을 가리킨다. 요한은 "기..
유다는 이어서 구약의 예를 들어 그들을 저주하며(11절) 그들의 비참한 결국을 예견한다(12-13절). 그는 에녹을 인용하여 주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선언하며(14-15절) 병치를 통해 그들이 심판을 받을 것을 암시한다(16절). 그는 수신자들에게 말세에 관한 사도들의 말을 상기시키는데(17-18절), 그들은 그 예언대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다(19절). 유다는 수신자들을 격려하는 한편(20-21절)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권고한다(22-23절). 마지막으로 그는 송영을 올리며 편지를 맺는다(24-25절). 지난 본문에 이어 유다는 강한 어조로 대적자들을 성토한다. 그는 다양한 문헌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유다는 대적자들이 구약의 대표적인 악인들인 가인과 발람, 고라의 뒤를 따르는 자..
긴 역대기 묵상을 마치고, 이번 주에는 잠시 신약의 짧은 서신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이다. 오늘은 요한이서를 살펴본다. 사도 요한은 부녀와 그 자녀에게 편지를 쓴다(1절). 요한은 그들에게 사랑의 인사를 건네고(2-3절), 진리를 행하는 것을 칭찬한다(4절). 그는 서로 사랑할 것을 권면한다(5-6절).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말하며(7, 10-11절), 그와 대비하여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라고 명한다(8-9절). 그는 짤막한 인사로 편지를 마무리한다(12-13절). 편지의 저자가 분명히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전통적으로 사도 요한으로 여겨져 왔고, 요한의 다른 저작들과 비교할 때(특히 서신서들) 비슷한 문체와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비판에 관한 가르침(1-5절)과 무지한 자를 대하는 법(6절)이다. 이 두 가지는 흥미롭게도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타인'을 대하는 두 가지 관점을 소개한다. "형제"와 "개"/"돼지"가 그것이다. "형제"는 비판하지 말고, "개"/"돼지"에게는 접근하지 말라. 맥락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은 6절이 여기 삽입된 이유는 이 두 관점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먼저 비판에 관한 부분은 이해하기 쉽다. 내가 비판을 한다면 동일한 잣대가 나에게도 적용된다(1-2절). 그런데 이 '동일한 잣대'는 동일한 규범이라는 의미라기보다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3-5절을 보면 나와 형제의 잘못이 "들보"와 "티"처럼 다르다고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
지난 본문에서 복음의 요체를 설명한 바울은 디도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할 것을 권하는 한편(8절), 무익한 논쟁(9절)과 이단(10-11절)은 피하라고 명한다. 즉,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집중해야 하는 가르침이 무엇인지, 그리고 버려야 하는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첫째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말씀은 '복음'과 복음으로부터 기인하는 바울의 여러 가르침이다(8절). 바울이 이야기하는 "이 여러 것"(τούτων)은 2장부터 3장 전반에 이르는 가르침을 총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신중하고 경건하여 세상으로부터 비방을 받지 않게 살라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다음으로 우리가 피해야 하는 가르침은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
잠시 캘리포니아에 와있으면서 큐티를 쉬었다. 다시 재개. 사도 바울은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을 상대하여(행 23:35, 24:1) 스스로 변호한다(10절). 그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12일 밖에 안 되었고(11절) 더둘로의 공격(행 24:5)처럼 사람들을 소요하게 한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12절). 그는 자신이 고발 당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 때문이라고 밝히 말한다(14-16절). 그는 자신이 유대 민족을 구제할 재물을 모아 왔음을 밝히고(17절), 율법에 어긋난 것 없이 성전에 있었다고 호소한다(18절). 아시아에서부터 그를 쫓아온 유대인들이 비겁하게 뒤에서 그를 공격하지만 막상 총독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못 할 것이다(18-20절). 바울은 다시 ..
사명에 사로잡힌 바울(행 20:24)은 이제 고별 메시지를 남긴다(25절). 그는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뜻을 다 장로들에게 전달하였다(26-27절). 이제 그는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필 사명을 맡긴다(28절). 바울이 떠나고 거짓 교사들이 일어날 것이다(29-30절). 그럴 때마다 바울이 가르쳤던 것을 기억하라(31절). 바울은 이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한편(32절), 자신의 본을 따라 이익을 바라지 않고 행할 것을 권면한다(33-35절). 본문은 바울이 자신이 사랑했던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25절). 가슴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26절). 그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였고(27절), 사리를 취하는 대신 수고..
바울은 본문에서 "말세의 고통하는 때"(1절)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특별히 이 때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열거하며 디모데에게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5절). 이들은 어떤 자들인가? 수많은 특징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며"(2절)와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4절)라는 구절이다. 이들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2-4절에 기술된 여러 가지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5절을 참고하자면 이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의 사람들이다. 경건한 척 하지만 실상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 이들의 가르침을 따른 자(6절)는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