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요한이서 본문
긴 역대기 묵상을 마치고, 이번 주에는 잠시 신약의 짧은 서신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이다. 오늘은 요한이서를 살펴본다.
사도 요한은 부녀와 그 자녀에게 편지를 쓴다(1절). 요한은 그들에게 사랑의 인사를 건네고(2-3절), 진리를 행하는 것을 칭찬한다(4절). 그는 서로 사랑할 것을 권면한다(5-6절).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말하며(7, 10-11절), 그와 대비하여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라고 명한다(8-9절). 그는 짤막한 인사로 편지를 마무리한다(12-13절).
편지의 저자가 분명히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전통적으로 사도 요한으로 여겨져 왔고, 요한의 다른 저작들과 비교할 때(특히 서신서들) 비슷한 문체와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수신자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1절)로 되어 있는데, 특정 가정일 수도 있지만 굳이 인명을 안 밝힌 것(cf. 요삼 1:1)을 볼 때 지역 교회를 의인화하여 쓴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싶다.
그의 인사말을 먼저 살펴보면, 요한은 스스로를 "장로"로 호칭하고 있고, 수신자들을 "참으로 사랑"한다고 표현한다(1절). 이 사랑은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은 아닌 것이, "진리를 아는 모든 자"가 다 그러할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에서 기인한다(2절). 덧붙여 요한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과 예수로부터 와서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함께 할 것이라고 축복한다(3절). 이 진리(ἀλήθεια)와 사랑(ἀγάπη)이라는 두 단어가 요한이서의 주제 단어들인 것 같다.
먼저 요한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보며 기뻐한다(4절).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서 "계명" 준수가 강조되는 것을 생각하면(요 13-15장, 요일 2:3-6 등) 일관성 있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붙여 요한은 수신자에게 "서로 사랑하자"고 권한다(5-6절). 이 권면 역시 요한일서의 한 가지 주제이다(요일 4:7). 사랑과 계명은 같은 말이다(요일 3:23-24).
이어 요한은 "미혹하는 자"를 경계한다(7절).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 즉 가현설을 주장하는 자이다. 이 미혹에 빠지면 "우리가 일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8절). 요한은 급기야 거짓 교훈에 빠진 자에게 인사도 하지 말라는 강경한 명령을 내린다(10절). 인사를 하는 것이 곧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논리이다(11절).
요한은 분명히 거짓 교훈과 "그리스도의 교훈"을 구분하고 있고, 거짓 교훈에 빠진 자는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는 반면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예수를 모신다고 이야기한다(9절). 이 표현은 상당히 흥미로운데, (성령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표현은 바울 서신에서 보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인사에서, 요한은 길게 쓰는 대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12절). 이는 수신자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다(12절). 그리고 그는 "네 자매(your sister)의 자녀들"이 문안한다고 인사를 남기는데(13절), 이는 물론 실존 인물일 수도 있지만 역시 자매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 싶다.
주제 단어들인 진리와 사랑을 가지고 본문을 다시 되돌아 보면, 요한은 진리에 바로 서서 서로 사랑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5-6절). 여기서 적그리스도는 사랑의 대상이 아님에 유념하자. 잘못된 교훈으로 "미혹하는 자"(7절)는 피해야 할 대상(10-11절)이지 사랑으로 교제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며(9절) 온전한 상을 받기 위해서는(8절) 스스로 삼가 참된 교훈 안에 거해야 한다(9절).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진리, 그리고 사랑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자. 진리가 아닌 것과 타협하지 말고, 그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4절) 진리를 행하는 자가 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