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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

로보스 2017. 11. 15. 13:08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한다(1절). 그는 가이오에게 축복의 말을 전하고(2절) 그가 진리 안에 행함을 듣고 기뻤음을 말한다(3-4절). 가이오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자였고, 요한은 이를 칭찬한다(5-8절). 반면 교회의 지도자 중 하나인 디오드레베는 요한 일행을 비방하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내쫓았다(9-10절). 요한은 그를 본받지 말라고 엄하게 권고하는 한편(11절), 데메드리오를 천거한다(12절). 요한은 편지를 짧게 줄이고 직접 만나 이야기하겠다고 말하며 편지를 맺는다(13-15절).


오늘 본문의 편지를 쓴 사람은 "장로"이고, 수신자는 "가이오"이다(1절). 요한이서와 마찬가지로, "장로"가 누구인지 명확히 나와 있지는 않으나 전통을 따라 요한으로 보겠다. 하지만 요한이서와는 달리 수신인의 이름이 명확히 나와 있는데, 특히 편지의 끝부분을 요한이서와 비교해 볼 때 요한삼서는 좀 더 개인적인 서신으로 보인다. 표현은 매우 비슷하나(13-14절; 요이 1:12) 문안을 전하는 자들이 "네 자매의 자녀들"(요이 1:13)과 "여러 친구"(15절)로 다르기 때문이다.


요한은 편지 전반에 걸쳐 여러 번 반복하여 "사랑하는 자"라는 표현을 쓴다(1, 2, 5, 11절). 이는 비슷한 개인 서신인 빌레몬서와 비교해 볼 때 요한의 독특한 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개인적인 인사를 전하는데(2절), "삼중 축복"의 근거가 되는 이 구절은 사실 문맥상 개인적인 평안을 비는 인사말로 해석해야 할 듯 싶다.


요한이서와 마찬가지로 요한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3절; 요이 1:4). 요한은 이런 소식을 듣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4절). 이어 요한이서의 또 다른 주제 단어인 '사랑'이 6절에서 등장하는데, 요한이서에서는 다소 추상적으로 다뤄진 이 개념이 여기서는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을 전송하고 영접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5-6절). 이들은 복음을 위해 자비량으로 일하는 자들로서(7절), 요한은 이들을 대접하는 것이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까지 가르친다(8절).


이어 요한은 디오드레베에 관한 이야기를 남긴다. 요한이 편지를 보냈지만 교회의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였던 디오드레베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9절). 요한은 그가 자신이 앞서 말한 교훈인 형제들을 맞아들이는 것을 지키지 않을 뿐더러 그걸 따르는 자들을 교회에서 내쫓는다고 고발한다(10절). 요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면한다(11절).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만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다(11절). 이 표현은 요한이서에서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다는 표현(요이 1:9)과 비교할 만 하다. 즉 요한이서의 거짓 가르침은 가현설이지만, 요한삼서의 거짓 가르침은 디오드레베의 가르침으로서 형제들을 대접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요한은 갑자기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을 언급한다. 어쩌면 이 편지를 전달한 사람일 수도 있는 그는 여러 사람들과 요한 일행, "진리"에게서 증거를 받았는데(12절) 이에 따르면 의인화된 "진리"는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다른 서신서에서 성령이 증언하신다는 표현이 사용된 것을 참조하라. 롬 8:16, 히 10:15 등) 즉 요한은 데메드리오를 가이오에게 믿을 만한 사람으로 추천하고 있는 것이다. 데메드리오 역시 "나그네"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정리해 보자면, 나그네 된 형제들을 대접하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자 "선한 것"이지만(5-8절), 디오드레베와 같이 교회 지도자라 하면서도(9절) 그것을 행하지 않는 자(10절)가 있으니 그런 자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11절).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라 하여 모두가 옳은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각 성도는 스스로 깨어 그런 지도자들의 행위를 진리에 따라 분별해야 한다. (근자에 한국의 한 대형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이 문득 떠오른다. 설교를 잘 하고 카리스마 있는 목회자라 하여 그의 행실이 다 옳은 것은 아닌 것이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할 것 없다. 나는 본문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로서 형제들을 합당하게 대접하며 진리, 즉 성령 안에서 행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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