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유 11-25 본문
유다는 이어서 구약의 예를 들어 그들을 저주하며(11절) 그들의 비참한 결국을 예견한다(12-13절). 그는 에녹을 인용하여 주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선언하며(14-15절) 병치를 통해 그들이 심판을 받을 것을 암시한다(16절). 그는 수신자들에게 말세에 관한 사도들의 말을 상기시키는데(17-18절), 그들은 그 예언대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다(19절). 유다는 수신자들을 격려하는 한편(20-21절)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권고한다(22-23절). 마지막으로 그는 송영을 올리며 편지를 맺는다(24-25절).
지난 본문에 이어 유다는 강한 어조로 대적자들을 성토한다. 그는 다양한 문헌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유다는 대적자들이 구약의 대표적인 악인들인 가인과 발람, 고라의 뒤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비난한다(11절). 또한 12절에서는 그들의 행태를 고발하는데, "애찬"에 걸림돌이 된다는 표현과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는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은 성찬식 때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다는 화려한 수사로 그들을 규탄한다(12-13절). 주목할 것은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는 표현이다. 그들은 지도자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이어 그는 에녹의 예언을 제시하는데(14-15절), 그 예언은 예수께서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인용에도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라는 말을 붙여(14절) 그들이 바로 "경건하지 않은 자"들임을 드러낸다. 다시 16절에서는 그들의 악행을 규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다는 사도들의 예언을 이야기한다(17절). 말세에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인데(18절), 바로 그들이 이 예언에 등장하는 악인이라는 것이다(19절).
여기서 갑자기 유다는 어조를 바꾸어 수신자들에게 권면을 내린다.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고(20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긍휼을 기다리라는 것이다(21절). 두 개씩 짝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면, 스스로 해야 하는 부분과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부분이 분리되어 있다고 분석할 수 있겠다. 즉, 성도는 스스로 믿음 안에 자신을 세우고 기도해야 하지만, 한편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그리스도의 긍휼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유다는 "의심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라고 권고한다(22절). 심지어 불에서 끌어내어 건지라는 말과, 육체로 더럽힌 옷을 미워하라는 말까지 등장한다(23절). 이 권면이 앞의 내용과 연관된 내용이라고 본다면,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유 4)들로 인해 의심이 생긴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할 수 있다면 그를 그 무리에서 꺼내되 과거의 행실을 그저 없던 일로 치부하지는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송영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축복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한 찬양을 함께 담고 있다(24-25절).
오늘 본문에서 드러난 대적자들의 특징은 이렇다. 그들은 성찬식 때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도 교회의 지도자 노릇을 했다(12절). 그들은 "경건하지 않은 자"로 심판을 앞두고 있으며(15절), "원망하는 자"요 "불만을 토하는 자"요 "정욕대로 행하는 자"이자 "자랑"하고 "아첨"하는 자들이었다(16절). 이들은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었으며(18절) "분열을 일으키"고 육에 속해 성령이 없는 자들이었다(19절).
지난 본문과 합쳐 생각해 본다면, 이들은 아마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조롱할 뿐 아니라 스스로 추종자들을 모아 교회를 분열시키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라고 행세하며 성찬식 때는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했고(평범한 식사인 것처럼 먹기에 급급했던 것이 아닐까?), 이들의 행습에 성적 문란이 결부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은데, 성적 타락에 관한 고발은 실제 성적인 문제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영적인 문란함을 가리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어 맞서 성도들이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를 의지하는 동시에(21, 24절) 스스로 믿음 안에 거하도록 기도해야 하고(20절), 악한 무리에 현혹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끝까지 그들을 구원해 내야 한다(22-23절). 이 부분은 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상종하지 말라는 현대 한국 교회의 모습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들과 쓸데없는 논쟁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은 무익하지만, 그들을 아예 차단하는 것은 유다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다.
바른 가르침을 단단히 붙들고 잘못된 가르침을 경계하되, 거기 빠진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라. 오늘 유다서의 교훈은 묵직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