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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끝에 대해 예언하신다. 예루살렘이 군대에 둘러싸이면(20절)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22절). 어디에 있든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21절). 특히 임산부들과 갓난아기를 데리고 있는 엄마들이 큰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23절). 이스라엘 백성은 죽거나 끌려갈 것이고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이다(24절). 하늘과 바다에 징조가 나타날 것이고(25절) 사람들은 공포에 시달린다(26절). 그 때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27절). 따라서 이런 징조를 보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28절). 오늘 본문은 다소 어렵다. 예루살렘의 멸망(20절)과 주님의 재림(27절)이 동시에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마치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이 예언이 모두 성취..
오랜만의 큐티다. 연말연시에 이리저리 다녀오느라 바빴다. 다시 페이스를 올려 큐티를 재개하려 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 어떤 사람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예수께 아뢰었다(5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셨다(6절). 사람들은 그 때와 징조를 다시 여쭈었고(7절), 예수께서는 미혹 받지 않도록 주의하고(8절) 두려워 하지 말라며(9절) 구체적인 예언을 주신다. 장차 나라들 간의 큰 전쟁이 있을 것이고(10절), 많은 자연재해와 하늘의 "징조"들이 일어날 것이다(11절). 그리고 그 전에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박해를 받을 것이나(12절), 그 박해가 증거가 될 것이다(13절). 어떤 말을 해야할지 미리 고민할 것 없이(14절), 그 때..
예수께서는 삭개오의 구원 사건(눅 19:1-10) 이후에 바로 이어 새로운 비유를 주신다. 본문은 그 비유의 목적이 두 가지임을 밝히고 있다(11절). (1)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 즉, 이제 예수께서 사역을 마치시고 세상을 떠나실 날이 가까웠다는 말이다. (2) 한편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잘못된 이해이므로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향하면서(12절), 열 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 주면서 장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13절). 그리고 그가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 정산을 한다(15절). 첫째는 한 므나로 열 므나를(16절), 둘째는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18절) 만들었기에 주인이 그들을 칭찬하며 고을을 내주었다..
7월 11일에 누가복음을 보기 시작했으니 이제 석 달 되었다. 오늘부로 12장이 끝나니 정확히 절반이다. 앞으로 석 달 후에는 누가복음도 끝난다는 이야기다. 복음서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작업이다. 예수의 말씀이 이어진다. 예수께서는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49절). 이 표현은 세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며, 알곡을 타작하시면서 나온 쭉정이는 불에 태우실 것(눅 3:16-17)이라고 하신 말씀과 유사하다. 따라서 심판을 선포하신다는 의미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께서는 그 불이 아직 붙지 않았다고 하시는데(49절),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예수께서는 당신이 받을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하나님은 심판의 날을 선포하신다(1절). 그 날에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를 전부 태워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1절). 이는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말 3:15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다 사람들은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들이 번성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지 반문했다. 하나님은 그런 유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멸망할 날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반면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치료의 광선이 약속되었다(2절). 그들은 "악인을 밟을 것"인데(3절), 이는 악인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이 말씀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가 등장하는 말 3:16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시고, 그 심판의 ..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유다의 불만을 언급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며(14절) 범죄하는 자들이 번성하는 것을 한탄하였다(15절). 하나님은 이것이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3절). 다시 한 번 말라기 2:17의 주제가 변주되어 등장한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로 보신다. 이는 이 질문 안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전과 동일하다. 그는 마침내 오셔서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하는 말을 들으시고, 그들을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סֵ֣פֶר זִכָּר֤וֹן)"에 기록하셨다(16절..
하나님은 유다가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는 말로 하나님을 괴롭혔다고 하신다(17절). 유다 사람들의 이 질문은 악인들이 번성하고 성공하는 것에 대한 의문으로, 결국 하박국의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합 1:13)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하박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모든 것을 심판하실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의 길을 준비할 것이고, 하나님이 그 성전에 임하실 것이다(1절). 이 예언은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왔다(막 1:2). 즉, 세례 요한은 "길을 준비"했고,..
지난 본문에서 적그리스도를 경계한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붙들라고 권면한다(24절). 즉,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처음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가르침을 견지하라는 의미이다.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이 사람 안에 거하면 그는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4절). 그리고 그것은 곧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이다(25절). 이 언어는 다소 요한복음의 언어를 연상시키는데, 특히 예수의 고별 설교(14-16장)가 떠오른다. 거기서도 예수의 "말"이 제자들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이 구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요 15:7)이 나온다. 요한이 이것을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쓰는 이유는 그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26절). 지난 본문의 "적그리스도"들을 가리킨다. 요한은 "기..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계를 내린다. 여기서 "적그리스도"는 흔히 생각하는 마왕이 아니라 잘못된 가르침을 베푸는 교사들을 가리킨다. 18절은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다고 말하고, 이들이 발흥하는 것을 보면 마지막 때가 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19절은 그 적그리스도들이 결국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임을 증언한다. 사도 요한은 이들이 나간 것을 보면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21절에 걸쳐 사도 요한은 독자들을 권면한다. 독자들은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알게 된 자들로서(20절), 진리를 알고 있다(21절). 이 "기름 부음"은 요일 2:27를 참조할 때,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댜는 지난 본문까지 에돔이 이스라엘의 곤경을 보고 즐거워 한 죄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증거했다. 오늘 본문은 그에 대응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한다. 에돔의 철저한 파괴(옵 1:16)에 이어, "시온 산"에서는 피할 자가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선포된다(17절). 그 거룩한 산에서 야곱 족속, 즉 이스라엘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다(17절). 하지만 이스라엘이 누릴 축복은 "자기 기업", 즉 전통적인 이스라엘 나라의 국경 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18절은 흥미로운 비유를 사용한다. 지푸라기 같은 에서 족속 위에, 야곱 족속이 "불"이 되어 그들을 살라 버릴 것이라는 비유이다(18절). 이스라엘은 에돔을 정복할 뿐 아니라 블레셋과 가나안의 많은 땅까지 전부 얻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또 다른 천국 비유를 주신다. 설교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유명한 달란트 비유인데, 설교자들이 본문에 등장하지 않는 내용들을 멋대로 추가하는 것을 본다. 따라서 오늘 큐티에서는 우선 본문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주인이 다른 나라로 떠나면서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겼다(14절). 어떤 이는 다섯 달란트, 어떤 이는 두 달란트, 어떤 이는 한 달란트를 받았는데, 그 기준은 "각각 그 재능대로"였다(15절). 흔히 생각하듯 달란트의 양이 재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재능에 따라 다른 자원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달란트는 약 30 kg에 달하는 무게였으므로 한 달란트라 하여 적은 양의 자원도 아니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그 자본금을 기반으로 다섯 달란..
오늘 본문은 또 다른 천국 비유인 열 처녀 비유(1절)로, 그 맥락이 마지막 때에 관한 강론 중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살펴보자면, 예수께서 오실 날을 성도들이 알 수 없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는 것이 이 비유를 통한 메시지이다(13절). 이는 지난 본문인 마 24:36-51의 중심 메시지와 일치한다. 비유의 내용을 살펴보자. 이 비유에서는 결혼식 들러리로 서는 열 명의 처녀가 등장한다. 이들은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1절), 미련한 자 다섯은 기름 없이 등만 준비했고(3절), 슬기 있는 자 다섯은 기름과 등을 모두 준비해 왔다(4절). 그런데 그들이 예상하지 못하던 시기에 신랑이 나타났고(5-6절), 부랴부랴 등을 준비했지만 미련한 자들의 등은 다 꺼져갔다(7-8절). 이들은 ..
예수의 종말 예언이 계속된다. 예수께서는 큰 환난에 대한 언급(15-22절)을 하신 후,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일어날 것에 대해 경고를 주신다(23-27절). 오늘은 이 두 가지 가르침에 집중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15-22절은 70년의 예루살렘 함락 사건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하지만 오늘 묵상에서는 그 견해를 택하지 않고, 좀 더 보편적인 종말론으로 해석하도록 하겠다.) 큰 환난의 전조로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이다(15절). 이는 다니엘의 묵시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페르시아와 그리스 제국이 무너지고 "북방 왕"과 "남방 왕"이 싸우는 대목에서 등장한다. "군대는 [북방 왕]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두고 그 멸망을 예언하셨고(37-39절), 성전 또한 완전히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다(1-2절). 놀란 제자들이 언제 그런 일이 있을지 여쭙자(3절) 예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의 발호(4-5, 11-12절)와 전쟁과 자연재해(6-8절), 그리고 믿는 자들에 대한 핍박(9-10절)을 예언하셨다.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견디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고(13절),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때 마침내 끝이 올 것이다(14절). 드디어 종말에 대한 가르침이 시작된다. 37절은 선지자들에 대한 박해를 이야기하는 앞 구절과 자연스럽게 예루살렘을 연결시킨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부르셨지만, 예루살렘은 그 부르심을 거부했다(37절). 그리고 그 결과로서 예루살렘은 황폐해질 것이고(..
오늘은 비유와 그 해석을 묶어 보았다. 예수께서는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을 비유로 드신다(24절). 원수가 가라지를 뿌려(25절) 둘이 섞여서 자라는데(26절) 주인은 그것을 뽑지 않고(27-29절) 추수 때 둘을 분리하겠다고 말한다(30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에 이 비유를 해석해주시는데(36절), 세상 가운데 천국의 자녀와 악한 자의 자녀가 섞여서 자라지만(37-39절) 세상 끝에 둘이 구분되어 전자는 영광에, 후자는 멸망에 들어갈 것이라는 뜻이었다(40-43절). 오늘 본문 역시 무리와 제자를 구분한다.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비유를 주셨고(24절), "무리를 떠"나 "제자들"에게만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36절). 흥미로운 것은, 그 설명의 끝에 "귀 있는..
수련회로 인해 3일간 큐티를 못했다. 해당 본문인 9장을 가볍게 살펴보자면, 8장 말미에서 스스로의 권리 포기를 선포한 바울이 "먹고 마실 권리"(고전 9:4)를 포기하는 이유를 좀 더 부연하는 대목이다. 그는 복음 전파가 자신의 사명이자 상급이며, 그저 복음이 증거되기만 한다면 자신은 모든 것을 참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10장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짚는다. "조상들"은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1-2절). 또한 광야에서 "신령한 음식"을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3-4절). 이는 애굽을 나와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에서 있었던 일들을 신약 교회의 용어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옛 사람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새 사람을 상징하는 가나안으로 향하면서 홍해를 지났고, 거기서 하나..
이제 아홉 번째 재앙, '흑암 재앙'이 시작된다. 이번 재앙도 재앙 직전 경고의 말씀이 없이 바로 재앙이 시작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어 흑암이 임하게 하라고 명하시고(21절),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더듬을 만한 흑암"이 애굽 전역에 임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곳에만 빛이 있었다(22-23절). 바로는 모세를 불러 떠나도록 명한다(24절). 하지만 단서가 있었으니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갈 것을 약속해야 했다(24절). 모세는 우양을 제물로 바쳐야 하므로 다 데려가겠다고 말한다(25-26절). 바로는 이에 기분이 상해(27절) 당장 떠나가라고 명한다. 심지어 다시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협박까지 덧붙인다(28절). 모세는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
결국 밀려서 로마서 13장 전체를 묵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네. 그 동안의 맥락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면,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방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거룩한 산 제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롬 12:1)? 12장에서는 교회 내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설명하였고, 이어 "원수"를 대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어쩌면 바울은 "박해하는 자"(롬 12:14), "원수"(롬 12:20)를 언급하면서 "위에 있는 권세들"(1절)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로마 제국에 대하여 "복종하라"고 권면하고 있다(1절). 이는 하나님의 통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1절..
오늘 본문은 다니엘서의 마지막 부분으로, 계시를 받은 다니엘이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결론을 묻고 그 답을 듣는다.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할 것인가(8절)? 이 마지막 때에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사람들도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10절). "지혜 있는 자"는 깨달을 것이고 "악한 자"는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10절). 그리고 본문은 '기다릴 것'을 권면한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12절). 다니엘 역시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명을 받는다(13절). 본문에 따르면, 말세에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고난을 묵묵히 감내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는 것이고, 또다른 한 가지는 고난을 견디지 못해 악의 편에 서는 ..
본문에서는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이 다루어진다(40절). 하지만 이 본문은 어떠한 교훈을 주기보다는 때를 읽을 수 있는 지식을 주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북방 왕이 장막 궁전을 세우면 그의 종말이 이를 것이다(45절)! 하나님께서 장래 일에 대한 계시를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때를 알고 그에 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도 이 같이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막 13:28-29) 우리는 '말세'를 살아가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신호는 이미 우리 곁에 찾아왔다. 언제 세상 끝이 도래할지 모른다. 종말론적 신앙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