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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율법교사가 예수께 질문을 드린다. 누가는 그 이유를 예수를 시험하기 위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25절). 그의 질문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느냐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에 기록된 바를 되물으셨고(26절), 율법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되어 있다고 답한다(27절). 예수께서는 그렇게 행하면 살 수 있다고 답하신다(28절).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영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누가복음에는 이 "영생"이라는 단어가 단 두 번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과 눅 18:18-30이 그것이다. 두 본문 모두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흔히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동일시하는데, 최소한 누가복음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은 듯 하다. (특히 눅 18장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각 동네에서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씀을 증거하셨다(4절). 첫 번째 말씀은 유명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다(5-15절). 이 비유와 해석은 초대 교회에서 꽤나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는지, 마태복음(마 13:3-23)과 마가복음(막 4:2-20)에도 거의 동일하게 실려있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는데, 길가에 떨어진 씨는 밟히거나 새에게 먹혔고(5절), 바위 위에 떨어진 씨는 습기가 없어 말랐고(6절),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가시에 막혀서 자라지 못했고(7절),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결실을 맺었다는 말씀이다(8절). 예수께서는 비유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제자들에게만 알리고 다른 이들은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비유를 풀어주신다(10절).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
평지 설교의 마지막 부분이다. 먼저 39-40절에서 예수께서는 인도자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듯(39절) 거짓 선생이 제자를 인도하면 둘 다 멸망할 뿐이다. 따라서 제자는 그 스승을 본받는 것이고, 스승이 가는 방향대로 따라간다(40절). 이 말씀에는 예수의 가르침이 "맹인"들의 가르침과 다르며 그 가르침을 따를 때 최소한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이 암시되어 있다. 그리고 41-42절은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눈 안에 들보를 넣어둔 채 다른 이의 티를 지적함을 말씀하신다(41절). 즉 자신의 행실이 크게 그릇되어 있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 다른 이의 작은 잘못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지난 본문까지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응당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한다는 권면을 썼다. 이제 요한은 이어 사랑은 심판 날의 "담대함"을 준다는 근거를 제시한다(17절). 앞서 요일 2:28과 3:21에서도 요한은 동일한 표현(παρρησίαν)을 썼는데, 특히 2:28의 경우에는 맥락도 비슷하다. 오늘 본문은 이제 이 말을 부연한다. 우리가 주님처럼 담대할 수 있는 것(17절)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18절). 즉 참된 사랑을 안 사람이라면 더이상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심판 날"에도 담대할 수 있다. 요한은 이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재차 던진다(19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자는 명령을 다시 준다(7절).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만(7절)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8절).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드러났는가? 본문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 사랑이 드러났다고 증언한다(9-10절).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그 아들을 희생시키셨다(10절)! 따라서 이 사랑을 받아 아는 자라면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다(11절). 다시 사랑을 독려하기 위해 사도 요한은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된다고 권면한다(12절).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성령을 받은 것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을 실천하자고 권면한 사도 요한(요일 3:18)은 그 이유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때 진리에 속했음이 드러나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굳세게 된다(19절). 즉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됨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20절은 해석이 다소 쉽지 않은데, 내 생각에는 21절과 이어서 볼 때 설사 죄책감이 들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깨끗함을 얻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듯 하다. 다시 말해, 만약 무언가 죄를 범하여 그로 인한 찔림이 있을지라도,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됨이 증명된 사람이라면 담대하게 그 백성답게 행동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cf. 히 4:16). 하나님의 백성은 그 앞에서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되고(21절) 무엇이든 구하는 바를 받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선언한다(14절). 따라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직 사망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14절), 심지어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것과 같다(15절). 살인자 안에서 영생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14절은 다소 해석이 필요한데, 요한일서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cf. 요일 5:13). 도리어 이 구절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자가 나타낼 모습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 하다. 즉,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는 자연스레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인용하여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아는 자라면 마찬가지로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게 된다고까지 말한다(16절). 이는 요 15..
지난 본문에서 적그리스도를 경계한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붙들라고 권면한다(24절). 즉,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처음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가르침을 견지하라는 의미이다.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이 사람 안에 거하면 그는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4절). 그리고 그것은 곧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이다(25절). 이 언어는 다소 요한복음의 언어를 연상시키는데, 특히 예수의 고별 설교(14-16장)가 떠오른다. 거기서도 예수의 "말"이 제자들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이 구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요 15:7)이 나온다. 요한이 이것을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쓰는 이유는 그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26절). 지난 본문의 "적그리스도"들을 가리킨다. 요한은 "기..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이다. 예수께서는 반석 위에 지은 집(24-25절)과 모래 위에 지은 집(26-27절)을 비유로 들어 예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않는 자의 결국을 설명하신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 가운데 권위가 있었기에(29절) 가르치심에 크게 놀랐다(28절). 오늘은 뒤에서부터 살펴보자. 예수의 말씀을 듣던 "무리들"은 예수의 말씀에 놀랐다(28절). 서기관들과 달리 "권위 있는 자"로서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29절). 여기서 말하는 "권위"(ἐξουσία)는 마태복음의 다른 곳에서는 "권능"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는데(9:6; 10:1), 맥락으로부터 볼 때 신적인 권위/권능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당시 서기관들에게는 신적인 권위가 없었지만 예수께는 신적..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느라 큐티를 놓쳤다. 이틀 분을 묶어서 묵상한다. 야고보서는 여러 소주제가 연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소주제 별으로 살펴보는 것이 편하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부의 허망함(9-11절), 시험을 참으라(12절), 시험은 어디에서 오는가(13-18절), 성내지 말라(19-21절), 말씀을 행하라(22-25절), 경건(26-27절). 야고보는 이전 본문에 이어 재차 시험을 참으라고 권면한다. 이는 그 결과가 생명의 면류관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12절). 하지만 시험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13절). 그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베푸시는 분이지 우리를 시험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17절). 시험은 자기 욕심에 미혹되는 것이다(14절). 즉, 유혹이 닥쳐..
모든 땅 분배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계시를 주신다(1절). 율법에 정해진대로,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위해 도피성을 정하라는 말씀이었다(2-3절). 여기로 도피하면 성읍의 장로들이 그를 보호할 책임이 있었다(4-5절). 제대로 재판이 열려 시시비비를 가려진 후, 그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대제사장이 죽게 되면 그 이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6절). (여기서 한 가지, 개역개정은 살인자가 풀려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인 재판과 대제사장의 죽음을 "또는"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히브리어 원문에는 접속사가 아예 존재하지 않고, 영어 번역들은 두 구를 and로 연결하거나(KJV, NIV) 아예 접속사 없이 연결하고 있다(ESV, NASB). 후술할 민수기 35장 규정을 보건대 둘은..
바울은 "거룩한 백성"이 살아가야 하는 방법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9a절, NIV). 이 문장이 오늘 본문을 관통할 수 있는 핵심 문장으로 보인다. 즉, 바울은 거짓이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첫 번째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권면한다(9b절). 이 구절은 주의를 요하는데, '악'과 '선'을 단순히 법적인 개념으로 해석해 버리면 뒷부분 본문과 어울리지 않게 된다. 나는 여기서 '악'과 '선'이 결국 사랑의 실천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선'이요,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 '악'이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바울은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주제들을 교차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모두를 관통하는 ..
오늘 본문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절)가 될 것이다. 시대가 악하기 때문에 진리를 모르는 자들은 서로 속이면서 멸망으로 달음질친다(13절). 이럴 때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더욱 굳건히 붙잡아야 한다. 바울은 "배우고 확신한 일"의 근원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믿음의 선배에게서 배운 것(14절)이고, 둘째는 성경이다(15절). 믿음의 선배에게서 디모데는 무엇을 배웠는가? 바울은 자신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10-11절). 바울은 말로 가르쳤을 뿐 아니라("교훈") 행함으로도 가르쳤다("행실과 의향과 ..."). 바울은 경건한 사람은 박해를 받는다는 가르침을(12절) 말로만 베푼 것이 아니라 몸소 보여주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교육이다. 그리스도인은 말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