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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종들을 향한 권고이다. 바울은 두 가지를 권면한다. 상전을 거스르지 말고 기쁘게 할 것(9절)과 신실하게 일하는 것(10절)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서 동일한 것을 제시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하기 위함이다(10절). 노예제가 폐지된 현대 사회에서 이 본문은 사회에 존재하는 위계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보다 사회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할 때, 그의 권위 아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9절). 일하는 자세 역시 "모든 참된 신실성"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10절). 바울은 노예제를 뒤집어 엎으라고 명하는 대신, 그 권위에 순종하여 복음 전파에 기여하라고 권한다. 이는 디모데전서의 입장과 같..
바울은 이제 디모데를 향한 편지를 마무리한다. 바울은 이 마지막 부분에서 디모데에게 자신의 "명령을 지키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다(14절). 이 명령은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앞"에서 내려지는 진지한 것이다(13절). 이 명령은 언제까지 지켜야 하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지켜야 한다(14절). 바울은 이어 하나님을 찬양한다(15-16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분은 "유일하신 주권자"이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소망을 걸 수 있다. 바울의 찬양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높고 귀하신 통치자 하나님. 그 분의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 맥락에서 바울은 다시금 디모데에게 성도들을 어떻게 교훈할지 가르친다. 특히 "..
오늘 본문은 앞 본문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전 본문의 마지막 절은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을 언급하고 있다(딤전 6:5). 바울은 이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족하는 마음"을 소개한다(6절). 자기 탐욕을 위해 경건을 남용하는 자들에게는 실상 경건이 별 쓸모가 없지만, 자족하는 마음으로 경건에 집중하는 자에게는 큰 이익이 된다는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다. 자족함이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면 만족하고 살라고 말한다(8절). 이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만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7절). 그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부하려 하는" 것이고, 그 길은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길이요 "일만 악의 뿌리"이다(9-10절).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은 탐욕을 피하고 ..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종이 상전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를 가르치는 부분(1-2절)과 "다른 교훈"에 대해 가르치는 부분(3-5절)이 그들이다. 종의 태도를 설명하는 1-2절은 '구체적인 삶의 양태'를 다루고 있고, 이는 앞선 본문들로부터 계속되는 교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종은 그 상전을 공경해야 한다. 종의 불량한 태도는 상전이 하나님을 비방하는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1절). 설사 상전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하여도 소홀히 하지 말고 더욱 진심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2절). 여기서 바울은 우리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 비방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랑을 담아 최선을..
본문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치리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장로들에 대한 교훈(17-19절), 범죄자들에 대한 교훈(20절), 디모데 자신에 대한 교훈(21-23절)을 주고 이 교훈들의 대전제로 깔려 있는 가르침을 준다(24-25절). 교회 치리의 대전제는 무엇인가? 선행이나 악행이나 모든 것은 결국 드러난다는 것이다(24-25절). 그리고 그것이 드러났을 때 교회는 이에 합당한 권징을 내려야 한다. 이것을 기준으로 볼 때, 장로들에 대한 교훈은 선행을 베푼 자들에 대한 예로, 범죄자들에 대한 교훈은 악행을 저지른 자들에 대한 예로 바라볼 수 있다. 장로에 대한 가르침에서 바울은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욱 존경하고(17절)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라고 명한다(18절). 시기 받..
지난 본문에 이어 바울은 다시 한 번 과부를 돕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부에게 도와줄 만한 친척이 있다면, 그 친척이 과부를 돕고 교회는 다른 "참 과부"들을 돕는 것이 옳다(16절; 딤전 5:4). 그렇다면 "참 과부"란 누구인가? 바울은 과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9-10절). 예순 살 이상의 남편을 사별한 여인으로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 이에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젊은 과부"가 소개된다(11절). 젊은이는 정욕을 따라 재혼을 해서 믿음을 저버릴 수 있다(11-12절, 15절). 또한 교회의 지원을 믿고 게을러지고 소문만 퍼뜨리는 존재가 될 수 있다(13-14절). 따라서 젊은 과부는 과부 명부에 올리지 않아야 한다(11절). 나는 본문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공동체에 얼마나 큰 ..
바울은 본문에서 공동체를 가족에 비유하고 있다(1-2절). 이는 가족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본적인 사회 단위이기 때문이다(4, 8절). 따라서 공동체는 가족이 없는 자들을 특별히 가족처럼 챙겨주어야 한다(3절). 나는 공동체 지체들을 가족으로 대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회 생활의 대상으로 대하고 있는가. 누군가의 결점을 보면 함께 아파하는가, 들춰내어 가십거리로 삼는가... 부끄럽다.
디모데는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 당했던 모양이다. 바울은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12절)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15절)고 명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신앙의 성숙도이다. 나는 외적 조건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의 잣대에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귀신의 가르침"(1절)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7절)가 많이 있다. 이 시대의 신화는 역시 돈과 명예와 권세일 것이다. 이 악한 시대에 어떻게 경건을 지킬 수 있을까? 경건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이다(16절). 하나님 그 분이었지만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신" 그 분 하나만 바라보면서, 경건에 이르도록 매일 연단하자.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바울이 이 모든 명령을 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다(15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에(15절) 섬길 사람들을 뽑을 때도 신중하여야 했다. 나는 교회를 섬기는 자로서 "책망할 것이 없"이(10절) "모든 일에 충성된 자"(11절)인가?
바울은 "책망할 것"이 없는 감독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학교와 같은 공식 커리큘럼이 없던 시절, 감독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비록 교단에서 인정하는 목회자는 아니지만 나 역시 직분을 맡아 교회를 섬기고 있다. 바울의 리스트에 스스로를 비추어보며 내가 올바로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본문은 남자들의 문제로 "분노"와 "다툼"을 꼽고 있고(8절) 여자들의 문제로 허영과 월권을 제시하고 있다(9-15절). 당시 교회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이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모든 죄악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외적으로 꾸미는 것 대신,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고(8절) "선행"으로 자신을 치장하라고 권한다(10절). 나는 무엇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지 고민해 본다.
어째서 날샘이 서로 무관해 보이는 두 본문을 묶어서 오늘 본문으로 삼았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날샘의 구분에 따라 오늘 본문을 묵상한다. 오늘 본문은 디모데에 대한 명령(18-20절)과 기도에 관한 가르침(1-7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디모데에게 주는 명령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명령의 권위이다.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18절) "이 교훈"은 앞선 본문들(딤전 1:5, 11)에서 나왔던 교훈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의 복음을 따르는, 사랑을 목적으로 하는 교훈이다. 이 교훈에 근거하여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 다음으로 바울은 무엇에 기반하여 행할 것인지 말하고 있는데,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18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에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고..
오늘 본문은 지난 본문 11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에서 "내게 맡기신 바"라는 표현을 부연 설명하는 부분이다. 하나님은 왜 바울에게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맡기셨는가? 바울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 먼저 설명한다. 그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13절). 그는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 괴수"라고 칭한다(15절). 이는 바울이 과거에 교회를 심히 핍박했던 것을 가리킨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행 9:1-2)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율법의 가치에 관하여 가르침을 베푼다. 이는 이전 본문에서 율법을 부정적으로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딤전 1:6-7) 과연 율법의 선생이 되는 것은 나쁜 일인가? 바울은 8절에서 율법은 선한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붙는다.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8절) 즉 이 문장 안에는 앞서 언급한 헛된 말에 빠진 사람들이 율법을 적법하게 쓰고 있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율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다(9절). 율법은 악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바울은 악한 사람의 목록을 쭉 열거하고 맨 끝에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언급하는데(10절), 이..
오늘 본문은 서두(1-2절)와 본론(3-7절)으로 나눌 수 있다. 서두에서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각각 바울(1절)과 디모데(2절)로 밝히고 있으며, 디모데를 향한 축복 기도(2절)가 등장한다. 본론에서는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잘못된 교훈을 중단시키려는 것이었다(3절). 바울은 "다른 교훈"(3절)과 "이 교훈"(5절)을 대조하여 올바른 교훈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다른 교훈"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는 변론 뿐이었다(4절). 반면 올바른 교훈은 사랑을 그 목적으로 한다(5절). 바울은 다른 교훈을 "헛된 말"이라고 공격하며(6절) 알지 못하는 자들이 율법의 선생을 자처한다고 고발한다(7절). 여기서 4절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내 입장과는 별개로, 생각해 볼 만한 좋은 강연인 것 같아서 여기 소개한다. 아래의 한글 요약은 내가 한 것이며, 인용하는 성경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하였다. 이에 대한 내 코멘트는 별도의 글로 달도록 하겠다. 1. 전통적인 성경 해석에 따르면 동성애자들은 문제 있는 사람들이고, 죄를 범한 자들이며,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해석에 기반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들을 억압하고 박해한다. (최소한 심정적으로 이질감을 갖는다.) 2. 하지만 전통적인 성경 해석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2-1. 마태복음 7장(산상수훈 일부)에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