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호세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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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는 종족별로 족장을 세워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은 사람을 조사하게 했고(16절), 석 달이 걸려 이 일은 모두 마무리되었다(17절). 본문은 대부분 그 사람들의 명단으로 이루어져 있다(18-44절). 명단에서 인상적인 것은 "제사장의 무리"(18절), "레위 사람"(23절), "노래하는 자", "문지기"(24절)와 같이 성전을 섬기는 직무를 맡은 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24절까지의 명단은 스 2:36-41의 명단과 동일한 순서(예수아 자손, 임멜 자손, 바스훌 자손, 하림 자손, 레위 사람, 노래하는 자, 문지기)로 이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가문이 빼놓지 않고 죄를 범했으면 보여주는 장치가 아닐까 싶다. 25절부터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백성들의 명단을 소개한다...
예언을 들은 아사 왕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하나님의 제단을 재건했다(8절).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9절)를 예루살렘에 모아(10절) 함께 하나님께 제사하고(11절) 하나님을 찾기로 언약하였다(12-13절). 무리가 함께 맹세하자(14절)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 주셨다(15절). 아사의 어머니가 아세라 상을 만들자 태후 자리에서 폐하고 우상을 파괴할 정도로(16절) 아사는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다(17-18절). 하나님은 유다에 평화를 허락하셨다(19절). 오늘 본문은 아사의 개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선지자 아사랴의 예언에서 비롯되었는데(대하 15:1-7; 8절은 "오뎃의 예언"이라고 잘못 인용한다),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이 만나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아사는 유다 사람들과 하나님을 찾는 ..
안식일에 예수의 제자들이 밀밭에서 이삭을 잘라 먹자(1절) 바리새인들이 이를 지적하였다(2절). 예수께서는 다윗의 이야기(3-4절)와 율법 규정(5절)을 들어 이들을 반박하시고(7절)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셨다(6, 8절). 이후 회당에서(9절) 손 마른 사람을 만난 예수께 사람들은 안식일의 치료 행위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10절). 예수께서는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시면서(11-12절) 그를 치유하셨고(13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죽일 모의를 시작했다(14절). 오늘 본문은 안식일 규정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 중 마지막 안식을 기념하며 모두가 안식을 취하는 날이었다(출 20:8-11; 신 5:12-15). 그런데 제자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
예수께서는 마태를 부르셨고(9절),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10절). 바리새인들이 그 광경을 보고 제자들에게 시비를 걸자(11절)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명이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임을 천명하셨다(12-13절). 이어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금식을 두고 물었다(14절). 예수께서는 지금은 금식할 때가 아님을 말씀하시고(15절) 새로운 때가 왔음을 밝히셨다(16-17절).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마태를 부르시고 그 친구들과 식사하실 때 예수께서 겪으신 논쟁(9-13절)과 요한의 제자들과 금식을 두고 벌이신 논쟁(14-17절)이다. 두 이야기는 예수의 가르침이 얼마나 새로운 것이었는가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앞뒤에 연속적으로..
헤롯은 "유대인의 왕" 아기 예수를 죽일 작정이었고, 하나님은 천사를 요셉에게 보내 미리 그 계획을 알려주신다(13절). 요셉은 계시에 순종하여 마리아와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한다(14-15절).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깨닫고 베들레헴 지경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인다(16-17절). 그 헤롯이 죽자 하나님은 다시 요셉 가족을 이스라엘로 부르셨고(19-21절), 요셉 가족은 헤롯의 아들이 왕의 자리를 잇자 계시를 따라 나사렛으로 가서 산다(22-23절). 세상의 왕 헤롯은 갓난아기에 불과한 예수를 두려워한다. 그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던지, 그는 베들레헴 지경에 있는 모든 사내아이를 몰살시켜 버렸다(16절). 하지만 세상 왕의 몸부림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요셉 가..
지난 본문에서 하나님이 그 뜻대로 선택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 뜻대로 선택한 자를 완악하게 만드신다는 것을 논한 바울은, 예상되는 반론을 제시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19절) 하나님이 그 뜻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면, 악역을 맡은 사람의 죄 역시 하나님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어려운 질문에 직면한 바울은 그 답을 하나님의 주권에서 찾는다. 토기장이가 마음대로 그릇을 만들듯이(21절), 하나님 역시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을 마음대로 지으실 권한이 있다(20, 22-23절).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어라 항변하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이런 논변을 전개하는 이유를 잘 살펴야 한다. 바울은 진노의 그릇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48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 1:48) 대학부 9/13 설교에서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더불어 평안함의 상징으로,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멸망한 조국을 보며 (정치적인) 메시야가 도래해 조국에 평화를 가져다 주리라 믿으며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였다. (포도나무는 그 아래에서 기도하기에 불편하였기 때문에 주로 무화과나무가 기도처로 선택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본문은 나다나엘이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리는 경건한 유대인이었음을 나타내며, 예수님이 그의 기도를 보셨다는 것..
그루뎀은 자신의 조직신학 책 19장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천사' 중에는 성자 예수님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천사가 종종 자신을 하나님으로 칭하였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피조물에 불과한 천사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칭할 수는 없기에,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셨던 예수님을 그 자리에 끼워 넣은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증은 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속성과 천사의 속성을 '먼저' 정의하고 그로부터 이성을 사용하여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철학적 신학 논증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중세 신학의 잔재일지도?) 우선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유명한 장면을 살펴보자.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에서가 기..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호 6:1-2) 본문에 나오는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예언으로 봐도 괜찮을까? 문맥은 이렇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자 분노한 하나님이 그들을 갈기갈기 찢으셨다(호 5장). 그러자 깨달은 자들이 본문과 같은 말을 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물론 『호세아』의 저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을리가 없으므로,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짧은 기간" 안에 복구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