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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은 아합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는다(1절).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함께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자고 권하고, 여호사밧은 그 제의를 받아들인다(2-3절). 여호사밧은 먼저 아합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자고 권유한다(4절). 아합은 400명의 선지자를 모아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이들은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한다(5절).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다른 선지자를 구하고(6절) 아합은 마뜩찮게 여기면서 미가야를 불러온다(7-8절). 오늘 본문은 오랜만에 열왕기에 평행 구절이 존재하는 본문이다. 오늘 본문에 해당하는 내용은 왕상 22:2-9이고, 엄밀히 말하자면 아합의 전기 중에 수록된 내용이다. 그래서 부드러운 전환을 위해 아합 가문과의 인척 관계를 설명하는 1절이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열왕기에서도 두 가문이 혼인 관..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다(13절). 오직 하나님만이 미래를 아시기에, 형통을 즐거워하고 곤고 가운데 반성하는 것이 옳다(14절). 항상 의인이 성공하고 악인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15절). 사람은 지혜와 공의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더라도 망하고(16절), 지혜와 공의를 완전히 무시해도 망한다(17절). 그저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지혜다(18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인간의 유한함에 초점이 맞춰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항할 수 없고(13절), 하나님은 다 아시는 미래도 알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14절). 따라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루하루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옳다. 만약 오늘이 형통하다면 그에 감사하며 기뻐할 것이요, 오늘이 곤고하다면 혹 ..
오늘 본문은 격언 모음집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본문 연구를 해야 할까 생각해 보았는데, 짤막짤막한 경구들이라 하나씩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먼저 전도자는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낫다고 한다(8절). 이 구절은 지난 본문 1절과 대응시켜 보면 좋다. 거기서 전도자는 명성을 얻는 삶이 좋고, 그보다 더 이상 괴로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죽음이 낫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모든 일이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더 이상 불확실성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시작하는 시점보다 낫다. 참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은 1절의 "좋은 이름"과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이름을 내기 위해서는 교만하게 구는 것보다 참는 것이 낫다. 이어 전도자는 분노에 관한 격언을 준다(9절). 개역개정은 9..
계속해서 구체적인 정치 상황들이 예언된다. 세상 권세끼리 서로 세력을 더 얻고자 하여 벌이는 전투와 계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날샘의 바람과는 달리, 본문이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도리어 본문은 그저 담담하게 일어날 일들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단순한 뉴스와는 달리, 본문은 이 역사가 그저 인간의 욕망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문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꾸민 일이 실패하는 이유로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27절). 이는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인간의 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나의 계획을 겸손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내가 되길 소원한다. 사람의 마..
14장 전반부에는 예수가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공격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중에 다음과 같은 "비유"가 등장한다. 7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 14:7-11) 별로 어려운..
24장 10-23절에는 율법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된다. 어떤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그 처분을 묻는다(10-12절). 여호와는 그에 대한 처분을 명령하고(14절), 이스라엘 백성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행하였다(23절). 여기서 내 주목을 끌었던 것은 여호와의 명령과 그 이행 사이에 삽입된 "율법 명령"이다(15-22절). 전문을 살펴보자. 15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16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17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18짐승을 쳐죽인 자는..
우리 교회에는 예배 중에 통성으로 회개하는 시간이 있다. 어제 그 시간에 기도를 하다가 한 단어가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INCORRIGIBLE 단어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교정(矯正)할 수 없는, 구제[선도]할 수 없는 2 다루기 힘든, 제멋대로 구는 3 고쳐지지 않는, 뿌리깊은 고집불통. 구제불능. 잘못한 것을 깨닫고도 다시 돌아가 죄를 범하는 나의 모습이 정말 이 단어에 정확히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11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잠 26:11)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 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 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