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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율법교사가 예수께 질문을 드린다. 누가는 그 이유를 예수를 시험하기 위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25절). 그의 질문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느냐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에 기록된 바를 되물으셨고(26절), 율법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되어 있다고 답한다(27절). 예수께서는 그렇게 행하면 살 수 있다고 답하신다(28절).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영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누가복음에는 이 "영생"이라는 단어가 단 두 번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과 눅 18:18-30이 그것이다. 두 본문 모두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흔히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동일시하는데, 최소한 누가복음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은 듯 하다. (특히 눅 18장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선언한다(14절). 따라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직 사망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14절), 심지어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것과 같다(15절). 살인자 안에서 영생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14절은 다소 해석이 필요한데, 요한일서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cf. 요일 5:13). 도리어 이 구절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자가 나타낼 모습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 하다. 즉,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는 자연스레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인용하여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아는 자라면 마찬가지로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게 된다고까지 말한다(16절). 이는 요 15..
사도 요한은 미혹 당하지 말라고 말하며 새로운 권면을 시작한다(7절). 무슨 미혹을 말하는지가 다소 불분명한데, 다음 구절들을 통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의를 행하는 자는 예수처럼 의롭고(7절) 죄를 짓는 자는 "처음부터 범죄"한 마귀에게 속한다(8절). 요한은 변형해서 반복하는 문학 기법을 즐겨 쓰는데, 다시 한 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인다(9절). 따라서 행실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난다(10절). 의를 행하지 않는 자,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마귀의 자녀요(10절),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11절). 그리고 가인의 예(창 4:1-15)를 들어 마귀에게 속한 자를 보여준다(12절). 가인의 행위는 악하고 아벨의 행위는 의로웠..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푸셨는지 깨달으라고 권고한다(1절). 그 사랑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게 되었다(1절). 그리고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그 분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라는 소망이 있다(2절). 그리고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수를 본받아 스스로 거룩하게 한다(3절). 여기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받은 구원에 걸맞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이 짧은 세 절 안에 구원의 '이미 그러나 아직'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1절). 이는 이미 일어난 구원 사건을 가리킨다. 그리고 예수께서 장차 재림하실 때에,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와 같은 온전한 모습이 ..
삼위일체 교리를 접할 때마다 마음 한 켠에 불편함이 있었다. 성부와 성자의 동일성은 성경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성자와 성령의 동일성은 간접적인 형태 이외에 증거하는 구절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박희원 목사님께 여쭈어 보았을 때는 요한복음 14-16장이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다고 답해 주셨는데, 나에게는 그 본문의 증거가 그리 명백해 보이지 않았다. 오늘 성경을 묵상하던 중에 조금 더 성자와 성령을 일치시킬 수 있는 본문을 찾았다. 24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3:24) 이 본문은 마치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를 주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3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