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육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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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태어나신 날 밤, 그 지역 목자들이 밖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8절). 그 순간 천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환하게 드러났다(9절). 목자들은 두려워 했지만, 천사는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며 "좋은 소식"을 전한다(10절). 바로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이었다(11절). 그리고 천사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운 아기가 그 표적이라고 전한다(12절). 많은 내용이 들어 있지만, 우선 "좋은 소식"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본문은 '좋은 소식을 전하다'라는 헬라어 동사(εὐαγγελίζω)를 쓰고 있는데, 동일한 표현이 성경의 다른 곳(눅 4:43; 8:1; 9:6, 행 8:25, 롬 1:15, 갈 1:8 등)에서는 '복음을 전하다'로 번역되었다. 본문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소..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6개월이 지난 시점(cf. 36절),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으로 파송된다(26절). 본문은 그 파송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명시하고 있다. 가브리엘은 나사렛에서 "다윗의 자손"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를 만난다(27절). 흥미롭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요셉의 피를 전혀 받지 않았음에도 성경은 그의 혈통을 중요하게 여긴다(cf. 눅 3:23-31). 다윗의 자손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인사한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28절) 마리아는 이 인사를 듣고 놀라는데(29절) 아마도 "은혜를 받은 자"라는 표현 때문일 것이다. 가브리엘은 그 부분을 부연한다. 마리아는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입었는데(30절), 바..
오늘부터 요한일서를 묵상한다. 요한은 생명의 말씀을 직접 경험했다고 말한다(1절). 그리고 그는 그 드러난 생명을 보고 증언하여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했다고 말한다(2절). 이는 결국 그들이 함께 성부, 성자와 사귐을 누리기 위함이었고(3절), 요한은 이를 씀으로써 자신의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한다(4절). 요한일서의 서두는 다른 서신서들의 서두와 사뭇 다르다. 보통 발신인과 수신인을 밝혀 쓰는데(cf. 요이 1, 요삼 1), 요한일서는 그런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서신이 어디로 보내졌는지는 알 수 없고, 발신인이 요한이라는 것도 내적 증거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요한복음, 요한이서와 메시지가 유사한 부분이 있고, 교회의 전승에서 본 서신서의 저작권을 요한에게 돌리고 있으므로 나 역시 그렇..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과정을 그리고 있다(18절).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약혼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한다(18절). 약혼자 요셉은 이를 문제시하지 않고 파혼을 결심한다(19절). 그 때 천사가 나타나서 이 임신이 성령으로 인한 것임을 알려주고(20절) '예수'라는 이름을 계시한다(21절). 처녀가 잉태한 것은 구약 예언의 성취이다(22-23절).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왔지만(24절) 출산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고, 태어난 아들에게 계시를 따라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25절). 마태는 명백하게 동정녀 탄생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예수께서 처녀에게 나신 것은 구약 예언의 성취였다(22-23절). 마태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고(9-15절), 이어 그것에 기반하여 육체의 규율을 따르는 것이 무의미함을 논증한다(16-23절).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그는 하나님의 성육신이요(9절), 모든 권세의 원천이시다(10절). 우리는 그로 인하여 새로워졌다. 의식적인 할례가 아니라(11절) 세례를 통해 새 삶을 얻었고(12절), 죄사함을 입었다(13-14절). 이제 악한 권세는 무력해졌다(15절). 따라서 더 이상 율법 규정이 우리를 옭아매지 못한다(16-18절). 율법 규정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18-19절).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을 때(12절) 세상의 초등학문 또한 같이 죽었다(20-22절). 이 규정들은 마치 유익..
이제 하나님과의 언약이 체결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을 대표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뵈었다(9-10절). 여기서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칭하는 것에 주목하자.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여기시고,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다(11절).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 사이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한계의 차이가 있었다.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와 장로들과 함께 "멀리서 경배"하고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고 하셨다(출 24:1-2). 본문은 그들이 그 명령을 어떻게 준행하였는지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과정에 하나님과 함께 식사하는 것(11절)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성찬식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다(12절). 모세는 여호수아와 함..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최근 이 구절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한 구 한 구가 정말 기독교 신앙의 정수라는 느낌이 든다. 이 구절을 한 구씩 읽어나가며 묵상한 것을 나누고자 한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위대한 "성육신"을 담고 있는 구절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같은 분(요 1:1)이었으나 스스로를 낮춰 "육신"이 되셨다. 이를 신학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