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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4:13-21 본문
예수께서 몸을 피하신 곳으로 무리가 찾아오자(13절), 불쌍히 여기시고 병자를 고쳐주셨다(14절).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식사를 걱정했고(15절) 예수께서는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다(16절).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다고 답했고(17절) 예수께서는 그것을 가져오라 하셔서(18절) 축사하시고 나눠주셨다(19절). 그러자 오천 명 이상의 무리가(21절) 전부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를 거두었다(20절).
사복음서에 두루 나오는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특히 마태, 마가, 누가는 매우 유사한 기사를 남기고 있고, 이 앞뒤에 실린 기사도 네 복음서가 비슷하다(마/막/눅은 앞의 기사가 동일, 마/막/요는 뒤의 기사가 동일). 이는 모든 복음서 기자가 이 사건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았음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마태의 관점에서 이 기적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무엇보다 "무리"에 대한 예수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태는 흥미롭게도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를 "무리"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 바로 다음에 배치했다. 13장에서 예수께서 무리를 일부러 비유로 가르치시고 그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고자 하신다(마 13:13)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보면 예수께서 무리를 배척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나, 오늘 본문은 바로 이를 정정한다. 예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14절).
마태복음이 "무리"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사뭇 흥미롭다. 무리는 예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리고 천국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되지 않았지만(마 13:11) 그럼에도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그들 중의 병자를 고치신다. 예수께서 하시는 사역을 보고 무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마 15:31 등). 하지만 제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정해진 그룹을 이루지 않았다(마 15:39).
나는 이 "무리"가 "세상"의 한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아직 교회의 일부가 되지 않은 "세상" 중에는 복음에 마음이 열려 있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호기심을 갖고 복음을 듣지만, 온전히 그것을 깨닫지는 못한다. 교회가 행하는 기적을 보고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심을 알지만, 온전히 교회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교회 또한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16절) 이 명령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굶는 자들을 보고 예수께서는 "마을에 돌아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지 말고(15절) 우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다. 그래서 교회는 구휼 사업을 국가에 맡기고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먹이고 병자를 고치는 사역은 예수의 핵심적인 사역 중의 하나였다. 교회 또한 그것을 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