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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6:6-11 본문
본문은 "게으른 자"에게 주는 교훈이다(6, 9절). 기자는 먼저 개미의 예를 들어 부지런함이 무엇인지 가르치고(6-8절), 좀 더 직접적인 경고를 게으른 자에게 내린다(9-11절). 게으름을 피우다간 갑작스레 파멸할 수 있다는 것이 그 경고이다(11절).
개미의 부지런함은 어떠한 것인가? 개미는 누가 감독하지 않지만 자발적으로 일한다(7절). 또한 겨울을 나기 위한 양식을 미리 모아둔다(8절). 즉 본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남이 시키지 않더라도 너의 미래를 위해 지금 몸을 움직여 일하라.
하지만 일견 이는 지난 본문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는데 어째서 미래를 대비하는가? 예수께서도 창고에 식량을 쌓아두고 죽은 부자에 대한 이야기(눅 12:16-21)를 하지 않으셨던가? 나는 여기에서 성경이 미래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는 미래의 불확실성이다. 성경은 분명히 미래가 우리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따라서 나의 대비가 미래를 완전히 보장한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 앞의 교만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실 때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치의 만나를 주셔서 그 다음날을 대비하게 하셨다(출 16:22-30).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자는 극단적 숙명론의 입장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주의할 점은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앞의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 4:15)
그렇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 우리는 "개미처럼" 우리의 힘과 지혜가 닿는대로 미래를 대비한다. 하지만 항상 겸손한 태도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아래 복종해야 한다. 잠언은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 16:1) 나는 이것저것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