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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1-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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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1-23

로보스 2016. 9. 12. 23:14

예수께서는 바닷가에 앉아(1절) 비유를 통해(3절) 모여든 무리를 가르치셨다(2절). 길 가(4절), 돌밭(5-6절), 가시떨기 위(7절), 그리고 좋은 땅(8절)에 떨어진 씨를 비유로 드셨다. 제자들이 예수께 왜 비유로 가르치시는지 묻자(10절)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답하시고(11-17절) 제자들에게만 "씨 뿌리는 비유"(18절)를 풀어 설명해 주셨다(19-23절).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묵상할 수 있다. "씨 뿌리는 비유" 자체와, 예수께서 비유로 설명해주셨다는 점이다. 둘은 연결되어 있지만, 먼저 후자부터 살펴보자.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분명히 "너희"와 "그들"을 구분하신다(11절). 문자적으로 "너희"는 제자들을 가리키고(10절), "그들"은 큰 무리를 가리킨다(2절). 예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비유를 통해 "그들"에게 전하시지만, 그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13-15절). 대신 제자들은 그 비밀을 알 수 있었고(11절),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복되다 하신다(16-17절).


그렇다면 제자들과 무리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예수의 말씀에 힌트가 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12절) 여기서 "있는 자"는 제자들, "없는 자"는 무리를 가리키는데, 마태복음 13장의 컨텍스트를 보면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마 12:50)이다. 반면 무리는 "완악"한 백성(15절)으로 나오는데, 어쩌면 예수를 온전히 믿지 않은 당시 세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다(마 12:38-45;13:53-58). 즉 천국의 비밀을 알고자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비밀이 알려지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그 비밀조차 가려진다.


이는 오늘 본문의 비유 그 자체와 좋은 대응을 보인다.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는 "길 가"(4절)와 같은 자로서 악한 자가 그 말씀을 빼앗아간다(19절). 천국 말씀의 가치는 알고 받지만(20절) 말씀으로 인한 환난은 이겨내지 못하는 자는 "돌밭"(5-6절)과 같은 자이다(21절). 말씀이 염려와 유혹에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22절)는 "가시떨기"(7절)와 같은 자이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좋은 땅"(8절)으로서 많은 결실을 맺는다(23절).


여기서 말씀에 대한 반응을 정확하게 네 가지로 나눴다기보다는, 대표적인 것들을 열거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천국 말씀을 "깨닫는 자"(23절)와 "깨닫지 못"하는 자(19절)가 명확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유에 대한 가르침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하여 돌밭과 가시떨기, 즉 말씀을 받았지만 결국 핍박이나 유혹에 굴복하는 자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다루기 어려운 초대 교회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다. 예수를 믿는 것 같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배교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그들에 대한 경고까지 함께 다루고 있는 것이다.)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19절)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23절)의 대비는, 예수의 말씀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9절) 깨닫는 자는 귀 있는 자요, 깨닫지 못하는 자는 귀가 없는 자다. 무리에게 신체기관으로서의 귀가 어찌 없었겠는가?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면, 귀가 있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는 귀가 있는 자인가, 없는 자인가? 천국의 비밀을 알고자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르는 자인가, 아니면 완악한 마음으로 깨닫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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