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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24-30, 36-43 본문
오늘은 비유와 그 해석을 묶어 보았다. 예수께서는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을 비유로 드신다(24절). 원수가 가라지를 뿌려(25절) 둘이 섞여서 자라는데(26절) 주인은 그것을 뽑지 않고(27-29절) 추수 때 둘을 분리하겠다고 말한다(30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에 이 비유를 해석해주시는데(36절), 세상 가운데 천국의 자녀와 악한 자의 자녀가 섞여서 자라지만(37-39절) 세상 끝에 둘이 구분되어 전자는 영광에, 후자는 멸망에 들어갈 것이라는 뜻이었다(40-43절).
오늘 본문 역시 무리와 제자를 구분한다.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비유를 주셨고(24절), "무리를 떠"나 "제자들"에게만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36절). 흥미로운 것은, 그 설명의 끝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43절)라는 메시지를 덧붙이셨다는 점이다. 이 메시지는 지난 번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는 비유의 끝에 붙어 있었다. 즉, 주의를 촉구하는 이 말은 비유나 해설 중 하나에만 덧붙는 말이 아니고, 전반적인 예수의 메시지, 즉 말씀과 천국에 대한 메시지 전체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비유의 내용 역시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을 대조한다(38절). "천국의 아들들"은 "의인들"로 칭해지며(43절), "악한 자의 아들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 나타난다(41절). 확실히 드러나는 메시지 하나는, "세상 끝"이 있다는 것이고(40절), 그 때 인자가 주도적으로 두 무리의 사람들을 구분하여 상벌을 내리리라는 것이다(41-42절). 이를 뒤집어 말하면, "세상 끝"이 오기 전에는 세상 속에서 둘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26-29절).
이 말씀은 섬뜩한 경고와 함께 위로를 준다. 내가 "악한 자의 아들들"에 속한다면 이 말씀은 경고로 다가올 것이다. 심판자가 엄존하고, 미래의 어느 날 나는 그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천국의 아들들"이라면 위로를 받는다.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41절)이 횡행하는 것을 보면서 탄식하는 그들에게, 세상 끝에 이들이 모두 심판을 받으리라는 메시지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이 비신자보다는 신앙 공동체를 위해 쓰여졌음을 감안할 때, 본 메시지의 주된 목적은 경고보다 위로로 보인다.
천국(24절), 즉 하나님의 통치는 두 가지 측면을 담고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는 좋은 씨와 가라지가 섞여 자라는 것처럼 의인과 악인이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를 바라보면, 언젠가 의인과 악인이 구별되고 각자 자신에게 합당한 심판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의를 보고 부정을 볼 때 탄식하며 그 심판을 주께 맡기자. 주께서는 들으시고 언젠가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나는 "천국의 아들들"로서 그에 합당한 모습을 보이며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