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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0:34-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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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0:34-11:1

로보스 2016. 6. 17. 23:31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검을 주"는 것으로 설명하신다(34절). 예수로 인하여 가족들이 싸우게 될 것이다(35-36절). 그 때 예수를 택하는 자가 합당한 자이다(37절).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도 예수를 귀하게 여기는 자가 합당한 자이다(38-39절).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기에(40절), 영접하는 자들은 상을 받을 것이다(41-42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주시고 사역을 계속하셨다(1절).


오늘 본문은 맥락에서 따로 떼어서 해석하면 예수가 가정 파괴범이 되는 이상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이 설교의 맥락은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핍박과 시험을 당할 것이라는 맥락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핍박과 시험'이 심지어 가장 가까운 피붙이인 부모나 자식으로부터도 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고 볼 수 있다. 제자들의 신앙은 가족들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35-36절), 제자들은 가족과 신앙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지도 모른다(37절). 그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평화의 왕이신 예수께서 당신이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신 대목(34절) 역시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 예수의 메시지는 세상의 메시지와 필연적으로 부딪치기 때문에, 예수의 메시지가 들어가는 곳이라면 치열한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만약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수의 메시지가 세상의 메시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 아니겠는가? 예수께서는 "바알세불"(마 10:25)의 통치 아래 있는 세상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전쟁을 벌이러 오셨다!


더 나아가 '핍박과 시험'은 자기 목숨까지 걸기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본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38절). 십자가는 죽음의 도구이므로, 이는 결국 목숨까지도 신앙을 위해 내놓아야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이를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신다. 자기 목숨을 아끼는 자는 결국 목숨을 잃을 것이고, 기꺼이 순교하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다(39절).


예수께서는 목숨을 걸고 직접 증거하는 자들 뿐 아니라 그들을 지원하는 자들에 대한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제자들을 섬기는 것은 곧 예수를 섬기는 것과 같고, 예수를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다(40절). 예수께서는 놀랍게도 섬기는 자들이 섬김 받는 일꾼들이 받는 상과 동일한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41절). 심지어 냉수 한 그릇의 사소한 대접조차도 결코 하나님 앞에서 간과되지 않을 것이다(42절).


본문의 마지막 절은 예수께서 명령을 주시고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하던 사역을 계속하셨음을 증언한다(1절). 예수께서는 끊임 없이 당신의 사역을 이어가셨다. 그에게 배운 제자들 역시 끊임 없이 예수의 사역을 이어가야 한다. 그 사역은 무엇인가?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는 것이었다. 제자들의 사역 역시 가르치고 전도하며 천국 도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었다(cf. 마 10:7-8).


예수는 세상과 전쟁을 벌이러 이 땅에 오셨다. 따라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 역시 필연적으로 세상과 갈등을 겪는다. 목숨과 가족을 걸고 최전선에서 싸우는 자들이 있고, 그리고 그들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자들이 있다. 그 모두는 동일한 상급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하시던 사역은 이들을 통하여 계속될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볼 때, 솔직히 내가 최전선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40-42절의 말씀처럼, 선지자를 선지자로서, 의인을 의인으로서, 제자를 제자로서 대접하고 섬기는 역할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예수의 사역이 끊임 없이 이 땅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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