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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11-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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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11-16

로보스 2016. 3. 29. 00:28

계속해서 산상수훈을 묵상한다. 예수로 말미암아 핍박을 당하는 자들(11절)에게 하늘의 상이 약속되어 있으므로 기뻐하라(12절)고 명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13절)이자 빛(14-16절)으로 칭하신다.


오늘의 본문은 계속해서 명시적으로 "너희"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이는 "제자들"(마 5:1), 더 나아가 이 복음서를 듣거나 읽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예수의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다각도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박해에 관한 부분(11-12절), "소금" 비유(13절), 그리고 "빛" 비유(14-16절)가 그들이다.


우선 11-12절은 핍박에 관한 이야기이다. 핍박의 이유는 '예수'다.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12절) 하늘에서 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μισθός)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 자주 등장하는데, 특별히 같은 산상수훈 본문인 6장에서 '상을 이미 받은 자들'(2, 5, 16절)과 '장차 받을 자들'(1, 4, 18절)을 비교하면서 많이 쓰인다. 또한 동일한 단어가 포도원 주인의 "삯"(마 20:8)에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용례를 참고할 때, '하늘의 상'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이 인간들의 모든 행위를 정산하실 때 받는 것으로 보인다(cf. 마 25:31-46). 따라서 본문은 이 땅의 핍박을 내세의 상급과 대조하며 고난 중의 성도들을 격려하는 역할을 한다.


제자들은 또한 "세상의 소금"이다(13절). 소금의 역할은 맛을 내는 것이다. 만약 맛을 잃는다면 버림 받을 것이다. 여기서도 행위에 따른 '정산'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 맛을 유지한다면 계속 쓰임 받겠지만, 맛을 잃는다면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것이다. 그렇다면 맛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과 같은 맛을 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수의 제자라면 세상과 다른 짠 맛을 내야 한다. (동일한 표현이 마가복음(막 9:50)과 누가복음(눅 14:34-35)에도 등장하는데 각각의 컨텍스트가 약간씩 다르다. 마가복음은 '화목'의 메시지를, 누가복음은 '전적 포기'의 메시지를 결부시켰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은 "세상의 빛"이다(14절). 산 위에 있는 마을은 그 빛으로 인해 존재가 드러난다(14절). 그리고 등불을 켜두는 것은 어둠을 밝히기 위함이다(15절). 예수께서는 명시적으로 그 "빛"을 "너희 착한 행실"이라 설명해 주신다(16절). 여기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가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여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려 하셨다. 어둠에 잠겨 있는 세상에 그들의 빛을 비추어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소금 비유와 마찬가지로 세상과 제자들의 차이가 부각된다.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세상과 구별된 존재로서의 제자들을 이야기한다. 세상은 예수로 인해 제자들을 대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자들은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살아간다. 이로써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제자들은 (이 땅의 즉각적인 보상이 아니라) 하늘의 상급을 약속 받는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위안을 얻었을까. 예수로 인해 핍박 받으면서도,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핍박을 대해야 했던 그들. 마태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설교를 통해 그들은 용기와 위로를 얻고 계속해서 고난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내 삶을 돌아보자. 나는 얼마나 세상과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착한 행실"은 얼마나 그 빛을 발하고 있으며, 나의 "맛"은 얼마나 독특하게 드러나고 있는가? 교회 안에서는 열변을 토하며 성경을 이야기하고, 교회 안에서는 열정을 쏟아 찬양하고, 교회 안에서는 열성적으로 기도하지만, 정작 나를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으로 부르신 그 현장에서는 얼마나 제자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마음이 무겁다.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무엇이 변화되어야 할까. 긍휼을 베푸사 이 죄인에게도 깨달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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