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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1-10 본문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셨고, 제자들이 따라오자(1절) 그들을 가르치셨다(2절). 가장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3절), 애통하는 자(4절), 온유한 자(5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6절), 긍휼히 여기는 자(7절), 마음이 청결한 자(8절), 화평하게 하는 자(9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10절)가 받을 복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본문은 "산상수훈"으로 알려진 마태복음 첫 번째 강화의 머리 부분이다. 1-2절은 이 강화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무리(마 4:25)를 보시고 예수는 산으로 올라가셨다(1절). 그리고 제자들이 나아오자(1절) 이 가르침을 베푸셨다(2절). 보다시피 본문은 "무리"와 "제자"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 "제자"가 반드시 열두 제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무리 중에서 예수를 참되게 따르고 싶어하는 자들이 산 속까지 예수를 쫓아 갔고, 마태가 그들을 "제자"로 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하튼 본문이 "제자"들, 즉 예수를 쫓는 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인 것은 확실하다.
이제 유명한 팔복 본문이다. 이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각 "복"을 떼어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이 전체를 하나로 꿰뚫을 수 있는 원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본문은 "A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B할 것이다"라는 구조를 여덟 번 반복하며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설명한다. 먼저, A 자리에는 세상에서 좋다고 이야기하는 가치, 소위 "복"이라고 일컫는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도리어 (심령이) 가난한 것(3절), 애통하는 것(4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6절), 그리고 박해를 받는 것(10절)과 같이 꺼리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나머지 네 가지도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썩 매력적인 가치들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B는 어떠한가? B의 첫 번째와 마지막은 동일하게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약속이다(3, 10절). 이 수미쌍관 구조로부터, 천국 약속이 결국 다른 보상들을 이해하는 열쇠임을 알 수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가 그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그 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8절)이요, 그 분의 자녀로 칭함을 받을 것(9절)이며, 그 분과 함께 온 땅(whole earth, NLT)을 다스릴 것(5절)이다. 또한 위로를 받을 것(4절)이고, 배부를 것(6절)이며,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7절)이다.
이 모든 것이 완성되는 아름다운 순간을,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그렸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계 22:3-4)
정리해 보자. 예수를 따르는 자라면, 세상의 가치와는 다른 가치 체계를 쫓아야 한다. 심지어 세상이 꺼리고 싫어하는 것을 추구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그 길을 따라갈 때에 우리에게 상급으로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이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이 믿음을 붙들고 우리는 오늘도 세상 가운데서 좁은 길을 찾아 나아간다.
오늘 저녁에 인터뷰를 보기 위해 잠시 출장을 다녀온다. 이름 있는 연구소고, 살기 좋은 도시에 위치해 있기에 많은 이들이 인터뷰를 잘 봐서 꼭 오퍼를 받아내라고 권해주었다. 복에 관한 오늘 본문은 그러한 나에게 더 귀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아무리 내가 세상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한 환경에 있는다 해도, 하나님의 통치가 내게 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되, 세상 가치에 집착하지는 말자. 부르신 그 곳에,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가치들을 붙들고 살아가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