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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 잎사귀 본문
6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2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창 8:6-12)
이 기사는 유명한 '노아의 홍수' 기사의 한 부분이다. 여기서 비둘기는 지면에 가득한 물이 다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바로미터로 작용하고 있다. '메신저'로서 까마귀와 비둘기가 갖는 역할의 차이에 대해 연구해보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그보다는 본문에서 일전에 쓴 글 <히브리인들의 식물관>과 연결되는 부분이 발견되어 간략히 적고자 한다.
이 기사에서 "감람나무 새 잎사귀", 즉 올리브 잎사귀는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비둘기가 앉을 곳조차 찾지 못했지만, 7일 후 내보냈을 때는 나무의 잎사귀를 따서 돌아온다. 즉, 이 본문의 의도는 나무들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감소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생각해 볼 때, 만약 몇백 일씩 홍수가 내려 식물이 전부 물에 잠겼다면 그들은 전부 죽었을 것이다. 특히 감람나무와 같은 '고등식물'은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헌데 본문은 7일 만에 드러난 나무의 "새 잎사귀"를 언급한다. 이것이 단순한 "사실"일까?
나는 이를 다시 한 번, <창세기>의 해당 본문이 기록될 때 히브리인들이 가지고 있던 식물관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앞선 글에서 논하였듯, 당시 히브리인들은 식물을 생명체로 보지 않고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배경"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홍수가 나도 식물들은 죽지 않고 원래 심겨진 곳에 꼿꼿이 박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면 위로 그 몸이 드러나자마자 바로 "새 잎사귀"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본문을 통해 기자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물이 급격히 감소했음을 암시한다. (참조: 창 8:1)
성경을 공부함에 따라, 그리고 해석학을 공부함에 따라, 점점 "내러티브"로서의 성경에 주목하게 된다. 노아의 홍수는 "실증주의적" 역사로 밝힐 수 있는 사실(史實)인가, 아닌가? 실증주의 사관의 잣대를 들이대면 당연히 사실로 취급할 수 없다. 성경은 애초에 실증주의 사관 위에 기록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아의 홍수를 실증주의로 증명하려는 노력은, 최소한 내게는, 헛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믿는다. 노아의 홍수는 그 내러티브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역사성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 증명하려고 노력할 것도, 반증하려고 노력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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