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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히브리인들의 식물관

로보스 2009. 11. 4. 17:22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는 성경의 창조 기사를 일종의 문학적 장치로 본다. 특히 여섯 날의 배치가 다음과 같이 [배경 창조 - 등장 인물 창조]의 도식에 잘 맞는다는 것이 그 강력한 근거이다.

첫째날 - 빛과 어두움 / 넷째날 - 일월성신
둘째날 - 궁창과 물 / 다섯째날 - 바다와 하늘에 사는 생물들
셋째날 - 뭍과 식물 / 여섯째날 - 육지에 사는 생물들


헌데 여기서 현대인의 생각으로는 잘 안 맞는 내용이 있다. 우리는 '식물'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물론 지금 우리는 식물이 당연히 생물이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히브리인들도 식물을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는 문제다. 이를 알기 위해선 성경에 나타난 '식물'의 위치를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 글에선 특히 창세기 초반에 나타난 식물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방금 살펴본 창조 기사를 보자. 창세기의 기자는 식물을 생물로 보고 있는가?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1-12)
이것만으로는 알기 힘들다. 다음 구절을 살펴보자.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창 1:28-29)
흥미롭게도,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식물은 따로 분리되어 있다. 이것만 갖고 물고기와 새는 생물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다만, 20-22절을 살펴보면 기자가 물고기와 새 역시 생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노아의 홍수 기사를 살펴보자. 여기서도 흥미로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3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창 7:13-16)
노아가 방주에 짐승들을 태우는 장면이다. 분명 여기서 하나님은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릴 것(창 7:4)이므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생물들을 방주에 실으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식물은? 만약 현대인이 이해하고 있는대로 '생물'을 이해한다면, 홍수 이후 생물이 전멸된 상태에서 초식동물들은 무얼 먹고 살았단 말인가?

아, 방주에 식물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조금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다.
21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창 6:21)
창세기 기자의 입장에서, 육식은 홍수 이후에나 허락되었기 때문(창 9:3)에 이 시점은 동물이나 인간이나 "식물 밖에"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창 1:29-30). 그렇다면 양식으로 실린 것은 식물들일 것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실으라고 했을 땐 식물을 안 싣고 고작 양식으로만 실었다니. 이건 창세기 기자가 식물을 동물과 대등한 '생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강력한 방증이다.

홍수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21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창 7:21-23)
"모든 생물"을 쓸어버렸는데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가 죽었단다. 아, 식물은 빼먹고 안 적었은 것 뿐이라고?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히브리인들이 식물을 사람-가축-기는 것-공중의 새와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창세기가 기록될 당시의 히브리인들은 식물과 동물이 아예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식물은 거의 엑스트라로만 출연하고 있다. 나는 당시에는 식물을 하나의 '배경'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그렇다면, 처음에 제기한 주장, 즉 창세기 1장의 문학 장치적 해석에 대한 한 가지 반론이 훌륭하게 반박될 수 있다.

@ 한 가지 근거를 더하자면, 창세기 2장에 나타난 '식물'과 '동물'의 위치 차이를 들 수 있다. 여기서도 동물은 일일이 이름을 부여받는 존재지만 식물은 "강" 수준의 배경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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