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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os credit
7월 11일에 누가복음을 보기 시작했으니 이제 석 달 되었다. 오늘부로 12장이 끝나니 정확히 절반이다. 앞으로 석 달 후에는 누가복음도 끝난다는 이야기다. 복음서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작업이다. 예수의 말씀이 이어진다. 예수께서는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49절). 이 표현은 세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며, 알곡을 타작하시면서 나온 쭉정이는 불에 태우실 것(눅 3:16-17)이라고 하신 말씀과 유사하다. 따라서 심판을 선포하신다는 의미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께서는 그 불이 아직 붙지 않았다고 하시는데(49절),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예수께서는 당신이 받을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아사가 죽고 그 아들 여호사밧이 왕이 되었다(1절). 그는 나라의 방비를 튼튼히 했다(1-2절). 그리고 하나님을 구하고 그 계명을 지켜 우상을 유다에서 제거하였다(3, 4, 6절).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셨다(5절). 그는 즉위 3년째에 방백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제사장들을 각 고을에 보내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게 했다(7-9절). 오늘 본문은 새로 왕이 된 여호사밧의 종교 개혁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잠시 역대기의 흐름을 살펴 본다면, 다윗과 솔로몬은 (거의) 흠 없이 하나님만을 따른 모범적인 왕들이었고, 그 뒤를 이은 왕들은 때에 따라 하나님을 따르기도, 우상을 따르기도 했다. 르호보암은 하나님을 섬겼지만 말년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버렸고, 아비야는 끝까지 하나님을 따랐으며, 아사는 하..
계시를 받은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를 대접하려 하나(15절) 그는 거절한다(16절). 재차 마노아가 그의 이름을 묻자(17절) 그는 "기묘자"라고 답한다(18절). 마노아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19절) 기적과 함께 사자가 사라지는 것을 본다(20절). 마노아는 하나님을 본 것에 겁을 먹지만(21-22절) 아내가 그를 달랜다(23절). 말씀이 이루어져 삼손이 태어나고(24절)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했다(25절). 오늘 본문에서는 마노아의 어리숙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를 대면하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15-16절), 그저 한 명의 예언자인 것처럼 그를 대했다(17절). 그 사자가 기적과 함께 사라지고 나서야(19-20절) 하나님의 사자였음을 깨달은 그(21절)는 뒤늦게 공포에..
에 보면 다음과 같은 미묘한 표현이 등장한다. 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4-36)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근거로 삼아 불신자 가정 속의 신자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합리화한다. 예컨대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부인이 무신론자 남편과 맨날 싸운다면, 그것은 예수께서 명하신 것이니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저 구절이 정말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일까? 를 읽던 도중, 다음 구절을 읽고 눈이 번뜩 뜨였다. 4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
며칠 전에 를 읽다가 흥미로운 표현을 발견했다. 8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신 12:8) 신명기 12장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대목이다. 문맥을 살펴볼 때, 여기서 "소견대로 하다"라는 말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때 정해진 규법대로 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표현이 흥미로운 이유는 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히브리어 원어를 찾아본 것은 아니므로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만, 번역의 유사성을 볼 때 최소한 유사한 표현이 사용되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6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17:6..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48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 1:48) 대학부 9/13 설교에서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더불어 평안함의 상징으로,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멸망한 조국을 보며 (정치적인) 메시야가 도래해 조국에 평화를 가져다 주리라 믿으며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였다. (포도나무는 그 아래에서 기도하기에 불편하였기 때문에 주로 무화과나무가 기도처로 선택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본문은 나다나엘이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리는 경건한 유대인이었음을 나타내며, 예수님이 그의 기도를 보셨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