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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21:8-15

로보스 2015. 10. 30. 06:26

이스라엘은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한 명도 총회에 오지 않은 것을 보고(8-9절) 그들을 공격하여 죽이고(10-11절) 처녀 400명을 얻었다(12절). 이어 베냐민 지파에게 평화를 공포하고(13절) 그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지만 여전히 여자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14-15절).


이스라엘이 야베스 길르앗을 공격한 것은 자신들의 맹세에 따른 것이었다(삿 21:5). 베냐민과 통혼하지 않기로 잘못 맹세하여 후회한 이스라엘(삿 21:1)은 다시 한 번 잘못된 맹세를 한다. 이 두 사건은 흥미로운 병행 구조를 이루는데, 둘 다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가 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 맹세를 통해 베냐민 지파가 무너지게 되었다면, 두 번째 맹세는 므낫세 지파에 속한 한 도시(민 32장)를 멸망시켰다.


두 경우 모두 무너진 자들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베냐민은 범죄자들을 제대로 솎아내지 않았고, 야베스 길르앗은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본문은 그에 따라 일어난 첫 번째 비극이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증언한다(15절).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하려다가 과잉 대응하였고, 또다른 비극이 일어나게 되었다. (본문이 야베스 길르앗의 멸망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는 사실 분명치 않다. 비약이 있을 수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어제와 오늘 두 번에 걸쳐 맹세가 불러온 비극을 읽으면서 지혜가 필요함을 느낀다. 죄를 범한 공동체의 일원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들을 징계하여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그들이 공동체의 일원임을 잊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줄 필요도 있다.


요새 교회 공동체 내에 자신이 문제의 근원이면서 다른 이들을 비난하고 나서는 어떤 사람이 있다. 문제는 그가 리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가 하는 행동이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옳지 않음이 명약관화하지만, 그런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를 찾아가서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그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그를 참아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 전자는 내 속이 시원하기 위해, 후자는 내 일신이 평안하기 위해 하나님을 파는 기분이 들어 혼란스럽다. 주여, 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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