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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16:17-31 본문
들릴라가 계속해서 조르자 삼손은 결국 이기지 못하고 진실을 알려준다(17절). 들릴라는 블레셋 사람들을 부른 후(18절) 삼손의 머리를 밀고(19절)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겼다(20-21절).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에게 제사를 올리고(23-24절) 삼손의 재주를 구경한다(25-27절). 삼손은 그 때 기둥을 무너뜨려 그들을 몽땅 죽이고 자신도 장렬히 산화한다(28-30절).
삼손은 마지막 사명을 다할 때조차도 사사로서 부적합한 사람이었다.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것은 "[그]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기 위함이었지(28절),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다든지 이스라엘의 원수를 갚는다든지 하는 사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이 개인적인 원한조차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셨고, 삼손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쓰셨다(31절).
머리털을 밀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신 것(20절)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가 나실인의 서원을 어긴 것이 이번 한 번만이 아닐진대, 유독 머리털만을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여기셨던 것일까?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지만, 사도 바울의 범죄론을 빌어 생각해 보자.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음식의 문제를 다루면서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 14:23)라는 말을 남긴다. 이는 고기를 먹는 것이 양심에 거리끼는 사람에게는 고기를 먹는 행위가 죄가 되고, 반면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사람에게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원리를 가리키고 있다. (이 말이 하나님의 계명이 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더 "문화적"인 부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원리를 가지고 삼손의 행동을 해석해 보자면, 앞선 본문들에서 나온, 율법을 범하는 행동들은 삼손이 스스로 죄라고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사사기 기자가 사사 시대의 혼란을 설명하는 한 가지 장치일 것이다.) 반면 머리털을 미는 행위는 삼손 스스로도 나실인의 서원을 깨뜨리는 중대한 범죄라고 여기고 있었다(17절). 그 결과 스스로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한 셈이 되었고, "알고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신 것이 아닐까.
길게 썼지만 결국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죄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머리털 하나에 나실인의 서원이 몽땅 달려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망나니 삼손조차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조차 삼손은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 중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믿음이 없고 의지가 약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준다. 그들이 깨닫기를 위해서 기도하지만,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자리에 두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을 수 있길 원한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 교회를 떠나는 날까지 전혀 깨닫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일하실 것이다. 삼손에게 하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