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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출 10:7-11

로보스 2014. 8. 9. 03:09

메뚜기 재앙을 선포한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을 떠났다(출 10:6). 본문은 그 이후에 있었던 애굽 궁전의 반응을 소개한다. 이전까지 교만한 태도를 보였던 바로의 신하들(출 9:30, 34)이 태도를 바꿔 바로에게 진정한다(7절).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어서 히브리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어 재앙을 피하자는 이야기다.


모세와 아론은 다시 바로의 호출을 받는다(8절). 바로는 그들과 거래를 하고자 한다. 모세에게 누가 떠날 것인지 물은 바로(8절)는 남녀 노소와 우양을 이끌고 떠나겠다는 모세의 말(9절)에 단호히 거절의 뜻을 표한다. 10절에 나온 바로의 말은 조금 난해하지만, 여러 주석을 참고해 볼 때 이런 의미로 보인다. "내가 너희와 너희 소유를 함께 보낸다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여 나를 멸망시키는 것과 같다. 보라, 너희가 악하다." 그는 장정만 가라고 명하고 답을 듣지 않은 채 모세와 아론을 쫓아낸다(11절).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거래하려는 인간의 악한 모습을 본다. 하나님의 명령은 간단했다. "내 백성을 보내라!" 바로는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그 명령을 왜곡해서 해석한다. "백성을 전부 보내라고 하지는 않았으니, 내 사업에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가도록 하라!" 여기서 본회퍼의 통찰력이 떠오른다.


만약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서 자라!"고 말한다면, 어린아이는 아버지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안다. 그러나 신학적 훈련이 잘못된 어린아이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아버지가 "가서 자라!"고 말한 것은 내가 피곤하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내가 피곤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비록 나가서 놀아도, 나는 피곤을 이길 수 있다. 그렇다. 아버지가 "가서 자라!"고 말했지만, 아버지의 진심은 "나가서 놀아라!"인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다 보면,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시민은 관리로부터 매우 분명한 말을 들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처벌을 받을 것이다. 예수의 명령 앞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여기서는 단순한 순종이 왜곡된다. 다시 말하면, 단순한 순종은 불순종으로 왜곡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 <나를 따르라>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내게 유리하도록 왜곡한다. "망한" 상황에서조차 하나님과 거래하고 타협하려 한다. 하지만 순종의 원리는 단순하다. 그 명령 그대로 따르라. 예수께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으니 그 말씀에 순종하라. 악한 본성을 쳐서 복종시키는 제자가 되길 원한다. 주여, 당신의 영으로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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