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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6-12 본문

큐티

막 3:6-12

로보스 2013. 8. 17. 01:25

날샘의 문단 나누기는 조금 이상하다. 6절은 내용상 지난 본문에 붙었어야 맞는 내용이다. (이것이 개역성경/개역개정의 판단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7-12절에 치중하여 오늘 본문을 묵상해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은 다시금 예수의 사역을 조감한다. 이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예수를 따르던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7절 "큰 무리", 8절 "많은 무리", 10절 "많은 사람"). 이들은 어떻게 예수를 알게 되었는가? 8절은 이에 대해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왔다고 말한다.

이것은 조금 흥미롭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셨다(12절). 물론 본문에서는 이것이 귀신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나와 있지만, 예수께서 나병환자에게도 동일한 명령을 하셨던 걸 돌이켜 보면(막 1:44) 예수께서는 그저 당신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걸로 보인다. (따라서 예수께서 단순히 더러운 귀신들을 통해 당신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는 날샘의 설명은 이런 점에서 조금 부족하다.)

예수께서 당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셨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명성이 "갈릴리"(7절)를 비롯하여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8절), 즉 이스라엘 땅 전역에 퍼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탁월한 가르침 때문이었는가? 아니, 예수께서 하신 "큰 일" 때문이었다.

나는 이것,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고전 4:20)가 마가복음에서 반복적으로 다루는 한 가지 주제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4)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삶이 바로 그런 것 아니었을까. 예수께서 하신 "큰 일"은 "숨겨지지 못할" 밝은 일이었기에, 예수께서 경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고 이스라엘 전역에 선포될 수 밖에 없었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예수 자신인가,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인가? 글쎄, 나는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차라리, "하나님의 아들"(11절)께서 하신 "큰 일"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소문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는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다(요일 1:1). 이 놀라운 일을 나는 감격에 차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가? 내 삶이 그들에게 증거가 되고 있는가?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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