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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4:18-24 본문
다윗은 드고아 여인에게 배후에 요압이 있었는지 묻고(18-19a), 여인은 그랬다고 실토한다(19b-20절). 다윗은 요압에게 명하여 압살롬을 데려오게 하고(21절), 요압은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려온다(23절).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을 만나 주지 않는다(24절).
본문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요압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이다. 사무엘하 14장에서 다윗은 그저 무기력한 변덕쟁이 왕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고, 요압은 그를 설득하여 행동을 취하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다윗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쩌면 사무엘서 기자는 이를 통해 요압이 다윗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음을 기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다윗이 그를 경계하고 있었음에도(왕상 2:5) 섣불리 제거하지 못했던 것은 그의 세력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요압의 영향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요압의 말에 설득되어 명령을 내렸던 다윗(21절)이 끝내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24절)이다. 요압과 압살롬이 원했던 것은 다윗의 온전한 용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그러한 용서를 보여주지 않았고, 이는 훗날 압살롬의 반역(삼하 15장)을 불러오는 단초가 된다.
나는 참된 용서를 베풀고 있는가? 성경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은 다른 이를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윗이 하나님의 긍휼 안에 잠겨 있었다면, 좀 더 지혜롭게 압살롬에게 처신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도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다른 이들을 용서하며 살기를 원한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