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느 1장 본문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본디 히브리 성경에서 한 권의 책이다. 우리가 쓰는 성경에서는 나뉘어 있지만, 주제를 비롯해 통하는 면이 많으므로 계속해서 느헤미야를 묵상하고자 한다.
왕의 술 관원(11절)이던 느헤미야는 수산 궁에서 일했는데(1절), 유다에서 온 하나니로부터(2절) 예루살렘이 허물어지고 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는다(3절).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울며 기도했다(4절). 그는 기도에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회개하며(5-7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했다(8-11절).
본문에는 에스라서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시점이 기록되어 있다. 아닥사스다 20년이다(1절). 에스라의 귀환이 아닥사스다 7년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스 7:8), 그 이후 13년이 흐른 것이다. 그는 친동생 하나니(느 7:2)의 보고로 예루살렘의 근황을 듣는다(2-3절). 흥미로운 것은 느헤미야가 관심을 갖고 있는 자들은 귀환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2절).
이는 에스라서와 대조를 이루기에 조금 더 깊이 살펴본다. 스룹바벨과 에스라는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스 8:35)을 대상으로 사역했다(스 2:1; 3:8; 4:1; 6:19 등).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표현은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함께 첫 유월절을 지켰다는 기사(스 6:21)인데, 마치 두 집단이 분리되어 존재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느헤미야는 포로로 잡혀가지 않았던 사람들의 근황을 궁금해 했고, 하나니의 제보에 따르면 그들은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었다(3절). 그리고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탄 것이었다(3절). 느헤미야는 이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아 울며 기도했다(4절).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시작되며(5절), 그는 먼저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지 않은 자신과 조상들의 죄를 회개한다(6-7절).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8-9절)과 이스라엘의 역사(10절)에 의존하여 자신을 도와달라고 기도한다(11절).
바벨론으로 끌려 갔던 포로들은 70년이 지나 세스바살의 인도 하에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주도로 성전 재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한동안 방해로 진행되지 못하던 공사는 학개와 스가랴의 격려로 결국 마칠 수 있었다. 시간이 더 흐른 후, 율법 학자 에스라를 필두로 페르시아의 예물을 가지고 한 무리의 포로들이 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이방인과 통혼하던 풍습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에스라서의 중심 장소는 오직 "성전"이었다.
이제 느헤미야는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백성들, 즉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비천한 자"(왕하 25:12)에게 관심을 갖는다. 이들에게는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성벽이 필요했다. 성벽과 성문이 없었기에(3절) 이들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느헤미야는 왕의 술 관원으로서(11절) 수산 궁(1절)에서 편히 살 수 있었을텐데, 그 소식을 듣고 애끊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했다(4-11절). 에스라는 성전과 (성전을 근거로 삼는) 지도자들의 회복을 다루고 있다면, 느헤미야는 도시와 (그 도시에 사는) 백성들의 회복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느헤미야가 일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그 동포들의 처지를 안타까워 했던 모습을 보며, 나는 한국 교회의 고통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비록 이스라엘의 고난은 그들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였지만(6-8절),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한다(5절). 한국 교회가 당하고 있는 고난도 일부 우리의 욕심과 죄악에서 기인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이니, 그 언약에 의지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