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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8:24-36 본문
에스라는 제사장의 우두머리들을 따로 세워(24절) 예물로 받은 물품들을 맡긴다(25, 30절). 이는 매우 귀한 것들로(26-27절), 에스라는 그들에게 이 물품들을 예루살렘까지 무사히 가지고 올 것을 명한다(28-29절). 이제 에스라와 그를 따르는 무리는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했고(31절) 무사히 도착했다(32절). 예물 역시 잘 도착하였다(33-34절). 이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35절) 조서를 유다 땅의 총독들에게 전달했다(36절).
지난 본문까지 유다로 돌아갈 채비를 차리던 에스라는 이제 본격적으로 귀향길에 오른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일에 종사하던 "거룩한" 사람들(28절)인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30절) 하나님의 일에 사용될 것들을 맡긴다(25, 30절). 이는 페르시아 조정과 페르시아 땅에 남은 유다 사람들이 바친 예물로서(25절), 본문의 숫자는 그 양과 무게가 상당했음을 보여준다(26-27절). 이들의 임무는 이 예물을 "삼가 지"켜 예루살렘까지 운송하는 것이었다(29절).
아닥사스다 7년(스 7:7), 첫째 달 1일에 바벨론을 떠나(스 7:9) 아하와 강에 모인 에스라와 유다 사람들은, 여기서 가시뱌의 레위 사람들을 충원하였고(스 8:15-20) 첫째 달 12일에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하였다(31절). 출발하기 전, 이들은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를 염려하여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고(스 8:21-23),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행로를 지키셨다(31절). 그리고 마침내 다섯째 달 1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스 7:9). 그들을 도착하여 3일간 쉰 뒤(32절) 가져온 예물을 성전을 담당하는 자들에게 넘겼다(33-34절).
이들은 하나님 앞에 모여 번제를 드렸다(35절). 제물의 숫자가 흥미로운데, 수송아지 12마리, 숫양 96마리(= 12 x 8), 어린 양 77마리, 숫염소가 12마리이다. 여기서 수송아지, 숫양, 숫염소는 모두 12와 관련된 숫자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 드렸다는 말처럼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린 양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수인 7과 관련되어 있다. 그 후에 그들은 그 땅을 다스리는 자들에게 왕의 조서를 전달하였고, 총독들은 유다 사람들의 사역에 협조하였다(36절).
오늘 본문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에스라의 귀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구체적인 날짜(31, 32절)가 적시되고 있고, 가지고 간 예물의 양 또한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26-27절). 이는 그 역사성을 증언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그런 구체성에도 불구하고 약 넉 달간의 행로 자체는 다뤄지지 않는데, 이로써 그 행로에서는 하나님이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셨다는 메시지만이 남게 된다(31절). 이렇게 무사히 귀환한 에스라와 유다 사람들은, 행정적인 일(36절)을 처리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35절). 이는 감사제보다는 속죄제의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방에서 돌아와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본문은 순탄하게 모든 것이 진행되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에스라와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고, 그 어떤 예물도 분실하거나 도둑 맞지 않고 다 잘 가져왔으며, 귀환 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는 제사를 드렸고, 현지 관료들의 호의도 얻을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에스라는 이 모든 과정에 주어로 자신 대신 "우리" 등의 복수형을 쓰고 있다(31, 35, 36절). 또한, 예물을 수송하는 일은 제사장의 우두머리들이 맡았었다(24절). 즉, 이 모든 과정이 에스라 개인의 성취라기보다는 귀환하는 무리가 함께 연합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스라는 귀한 예물을 지키는 일을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맡겼고(24-30절), 돌아와서도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으로서 다른 이들과 함께 제사를 드리고(35절) 관료들을 만났다(36절). 그가 혼자 그런 일들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본다.